늘 우호적인 건 아니었지만 확실히 문 안에 있을 때는 상상할 수 없던 것
친구는 대학교 졸업 직후부터 계속 다녔던 직장에서의 퇴사를 결심했다. 입사 10주년이 되는 구월 모날을 마지막 출근일로 정하고 다음 월요일에 사직원을 낸다고 했다. 혹여나 붙잡혀서 지금 벌려놓은 일을 마무리하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둘러댈 말도 준비해 두었고, 가까운 사람 한 두 명한테는 미리 계획을 흘리기도 했다고 한다.
내가 이미 두 번의 퇴사를 겪어 내고 세 번째 직장을 다니는 동안 친구도 수 없이 많은 고비를 겪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가끔 말했던 ‘너한테는 창피해서 말도 못 하는 일도 너무 많아’라는 대사는 괜한 허풍이나 엄살이 결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직원 낼 날짜를 정한 것만으로도 월경 전 증후군 증상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는 말을 하는 친구 표정에서는 그간의 근심이 전혀 비치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재미있는 일을 꾸미고 있는 장난꾸러기처럼 웃음만 내내 띄울 뿐이었다.
불안하지 않냐고 물어보지는 않았다. 물어보는 순간 그 감정이 튀어나와 지금의 해방감을 잠식해 버릴 수도 있으니까. ‘어떻게 하면 잘 퇴사할 수 있는지’ 꼰대 같은 꿀팁을 주고 싶지도 않다. 내 지난 두 번의 퇴사가 그렇게 모범적인 사례는 아니었으니까.
다만 나의 첫 퇴사 당시, 나이는 나보다 대여섯 살쯤, 경력은 그 두 배쯤 많았던 동료가 내게 해 주었던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첫 퇴사를 하기 전이 젤 두려웠던 것 같아. 내가 여기 나가서 뭘 할 수 있을까 싶고, 지금보다 더 나은 일을 못 하면 어떡하지 불안하기도 하고. 그런데, 딱 그만둬 보지 않으면 몰라. 문을 열고 나가야 알 수 있어. 문 밖의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그 말을 듣고 힘차게 문을 열었고, 문 밖의 세상은 늘 우호적인 건 아니었지만 확실히 문 안에 있을 때는 상상할 수 없던 것이었다.
누구에게나 첫 퇴사는 단 한 번 겪으니까, 점점 식상해져 가는 인생의 경로 중에 아직도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건 그래도 나쁜 일만은 아닐 거라고 하면 너무 내 중심의 발언이겠지? 그래서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월에는 자유의 몸이 된 친구랑 맛있는 거 먹으러나 자주 다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