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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 Oct 07. 2019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는 행복

야근 저녁밥 사러 나가다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난 모 본부장님이 내게 말했다.


“또 춤추러 가니?”
“아뇨, 그러고 싶은데 야근해야 돼서 밥 먹으러 가요.”
“아- 춤을 춰야 되는데 야근해야 되고 말이야, 둘 중 하나 골라.”
“그러게요. 춤도 못 추고 이게 뭐야.”
“엄마한테 물어봐. 뭐 할까.”
“엄마는 제가 좋아하는 거 하라고 하셨을 거예요.”
“그래 그 말이 맞아.”
“아, 그러면 빨리 그만하고 춤을 춰야겠다.”
(옆에 있던 우리 팀 과장님에게) “채용공고 빨리 올려라”


농담같이 지나간 순간이었지만 직전 직장을 그만 둘 당시 쌓였던 괴로움을 터뜨리며 엄마한테 “이렇게 까지 일하면서 살고 싶지 않아. 그럴 필요가 없어.”라고 엉엉 울며 얘기하던 때가 생각났다.


온갖 거지 같은 일 다 겪으며 몇 달 만에 이미 ‘여긴 아니다’ 싶었지만 엄마가 걱정할까 봐 선뜻 때려치우지도 못하고 하소연이나 욕조차 한 마디 못하고 괜찮은 척 꾸역꾸역 다니던 나였다. 더 이상 그럴 수도 없어서 퇴사를 결심했고, 그간의 일이라곤 전혀 모를 엄마가 결과만 듣고 ‘그래도 대책 없이 직장을 관두면 어떡하냐’라고 했을 때 내가 보인 반응은 엄마에게 적잖이 충격이었을 것이다.


하기 싫은 건 억지로 하는 법이 없고, 그런 데 있어서는 누구보다 판단과 행동이 빠른 내가 일 년이나 묵묵히 견딘 것이 엄마를 생각해서였다는 걸, 비록 그 앞에서 그런 말을 꺼내진 않았지만 우리 엄마니까 그 순간에 알아챘을 것이다. 안정적인 직장과 삶의 루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우리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 그렇게 해. 너는 너 생각한 대로 착착하니까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이건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어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기 싫은, 그러나 해야 하는 일의 무게에 눌려 마음과 몸을 축내가며 밤낮으로 일해야 하는 요즘의 나를 엄마가 봤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 봤다. 아마 그때의 반응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안정을 가장 원하는 엄마의 맘도 사실은 그게 나의 행복이라 믿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 안정감을 주는 것은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이라는 걸, 하고 싶은 일은 어떻게든 하고 마니까 결국 하기 싫은 일을 하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 내 삶의 관건이라는 사실을 엄마에게 어떻게든 설명할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다.


엄마는 지금 내가 모르는 내 마음까지 꿰뚫어 보고 있을 테지만, 그래도 내 말로 설명을 할 기회가 있다면 정말 좋겠다.


엄마와 마지막으로 같이 갔던 여행지 괌에서 봤던 노을. 이 여행 중에 지금 다니던 직장으로부터 합격 소식을 전해 들었다. 전 일정 중 엄마가 가장 기뻐했던 순간으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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