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매일단어

늦잠

by 담쟁이

남들 다 하는데 나만 못 하는 게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늦잠이다. 나인 투 식스의 회사생활 몇 년이 DNA를 바꿔놨는지 어쨌는지 다음 날 휴일이라고 새벽까지 놀고 나서 맘먹고 늦잠을 자려해도 도무지 잘 되지가 않고 어김없이 출근시간께 저절로 눈이 떠진다. 잡생각과 개꿈에 아무리 잠을 설치고 시달려도 일어나는 시간 오차는 두 시간을 넘기지 않는다.


늦잠을 못 자는 이 꼬박꼬박 한 습관은 놀고 쉬려고 간 휴양지에서도 발휘되기 때문에 아침 햇살 들어올 때부터 하루를 꽉 채워 쓴다는 점이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지만, 정말 신기하고 무서운 점은 시차를 무시한다는 점이다. 한두 시간 차이 나는 아시아 지역은 그렇다 치고, 유럽에 가든지 심지어 낮밤이 정반대로 뒤집어진 미주지역에 가든지 첫날밤 지나고 나서부터 귀신같이 출근시간에 눈이 뜨인다. (물론 그것은 장거리 비행기 안에서 잠을 안 자는 나의 의지적 습관이 낳은 결과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습관일 수도, 장점일 수도, 특기일 수도, 어쩌면 그 셋 다 일수도 있는 늦잠 불능의 상태는 비 오는 공휴일 아침에도 날 가만히 두지 못하고 아침나절에 이것저것 해 내게 만들었다. 혹자는 부지런이라고 칭찬하듯 말하지만 진심으로 게으르고 싶은, 아니 실은 게으름과 부지런을 자유자재로 조절하고 싶은 나로서는 늦잠 불능은 일종의 장애에 가깝다. 그래서 이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훈련이라도 해야 하나 싶지만, 그것을 가만히 내버려두는 것이야말로 부지런이 병인 내가 누리는 유일한 게으름이라는 데 까지 생각이 닿으면 그만 포기 해 버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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