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매일단어

위로

by 담쟁이

살면서 정말 위로가 필요한 순간에 적절한 위로의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었는가 생각해 보면, 우리가 얼마나 제대로 된 위로를 할 줄 못하는 사람들인가 알 수 있다.




부모상에 주어지는 특별휴가를 쓰고 정확히 일주일 만에 정상 출근했던 나에게 누군가 위로랍시고 건넸던 말은 ‘쌤, 안 슬퍼요?’였다.


교회 모임에서 몇 년째 리더라는 사람이 자랑스럽게 들려준 에피소드 속에서 그는 인생의 가장 암울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후배 앞에서 자신의 힘든 시절을 어떻게 이겨냈는가 하는 무용담을 늘어놓고 있었다.


전혀 어울리지도 않는 생뚱맞은 말을 던져놓고도 그에 대한 반응을 위로받는 사람이 격하고 예민해진 탓으로 돌리는 경우도 아주 흔하게 봤다. 드물게는 적반하장으로 사과를 받아내는 사람도 있었다.




위로가 필요한 상황에 있는 사람의 마음은 취약하다. 그 깨어지기 쉬운 마음에 던지는 자기중심적인 '위로의 말' 한 마디는 폭력이고 공격이다. 깨어진 유리를 다시 붙인다 해도 금이 간 흉터는 남듯이, 맘먹는다고 한 번 들은 말이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질 수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생의 그 어떤 상황보다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영역이고, '좋은 마음에서' 했든 '생각해서' 하는 말이든 그 동기와는 관계없이 절대 되돌릴 수 없는 결과물이 남는 것이 위로다. 설령 실수라고 해도, 그래서 그 말을 사과하고 그 사과가 받아들여진다 해도 결국 말을 내뱉은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기 위한 조처일 뿐이란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나는 왜 제대로 된 위로를 못하는가’에 대한 고찰을 하거나 위로의 기술을 향상하기 위해 훈련을 받거나 할 필요는 없다. 침묵은 언제나 훌륭한 위로에 버금가는 역할을 해 내니까, 내가 위로의 센스와 재능이 아주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어설픈 노력으로 시행착오를 겪기보다는 아무 말하지 않으면 된다. 침묵은 충분히 위로의 좋은 방편이 될 수 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말이 가장 유용할 때가 바로 위로의 순간이라는 사실이야 말로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오늘 같은 날, 물색없는 위로의 말이 날아들어 내 마음을 깨뜨릴까 두려운 나는 침묵을 지킨다. 남을 위한 침묵도 중요하지만 다른 무엇보다 보호하고 싶은 것은 내 마음이니까, 오늘은 위로의 침묵이 아니라, 위로를 방어하기 위한 침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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