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매일단어

서운함

by 담쟁이

여행 셋째 날이 저물고 처음으로 쓴 돈과 남은 현금을 맞춰보는데 딱 70유로가 정도가 비었다. 한국 돈으로 10만 원 정도 되는 적지 않은 돈이라 어디서 이 차이가 발생한 건지 첫째 날부터 기억을 되짚어 봐도 도무지 생각나는 구멍이 없었다. 웬만한 것들은 다 그때그때 기록을 해 두었고 지금까지 대부분의 지출이 공금에서 나간 거라 큼직한 개인지출도 두 번 뿐이었다. 혼자 고민에 빠져있다가 샤워를 하고 나온 친구에게 ‘우리 공금은 이제까지 300유로씩 낸 거 맞지’라고 말하자 ‘몰라’라는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어떻게 몰라 너는 너 가져온 개인 돈 얼만지 몰라?’ ‘안 세고 있어.’ 지난 여행 때도 특별히 돈을 세거나 쓴 돈을 기록하지 않는다 했던 친구이기에 지금 내 상황을 알렸다. 공금에 혹시 섞여 들어갔는지 확인을 부탁했고 가능하다면 친구 개인 돈도 맞는지 확인해 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돈을 세지 않는다고 딱 자르는 말 앞에 부탁할 게 없어졌다. 내 표정이 점점 울상이 되자 친구는 나름대로 몇몇 순간들을 의심하다가 결국 그제야 공금은 내가 불러 준 잔액이 맞고, 본인 돈도 가져온 돈에서 지출한 금액이 맞는다고 확인해 주었다.


3분이 채 되지 않는 위 대화가 오고 간 사이에, 친구가 실수한 것도 아니고 책임 있는 것도 아닌데 돈이 없어진 걸 알아차렸을 때 보다 더 빠르게 기분이 상했다.


서운함이나 실망 같은 건 애초에 기대가 없으면 생기지 않는다고, 그러니까 나는 친구가 됐든 가족이 됐든 큰 기대 없으니까 그런 감정 같은 건 잘 느끼지 않는다고 쉽게 날 설명하곤 했다.


그렇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적어도 내게 일어난 사건이 그에게도 똑같은 정도의 무게이길 기대했었나 보다. 자기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식으로 무덤덤하게 물어본 말에만 대답하는 친구의 태도가, 우리가 공유하는 것이 생각보다 매우 적다는 것을 실감케 했다. 어쩌면 친구에게는 동행자의 돈이 얼마쯤 비는 것보다는 자신이 촘촘히 계획 해 둔 여행 계획에서 하나가 어그러져 가고 싶었던 곳에 못 가게 되는 게 더 속상한 일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확대 해석을 하면서, 돈 70유로보다 더 큰 것을 잃었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쉽게 잠들 수 없는 밤이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당연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