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매일단어

호기심

by 담쟁이

"혜빈씨는요... 일곱 살 같네요."

스물여섯 살, 첫 소개팅으로 만난 사람이 집에 데려다주는 차 안에서 건넨 말이다. 상대방의 말을 듣고 내 머릿속에서 한번 굴려 볼 만큼의 철딱서니도 없었던 나는 곧바로 머리에 물음표를 띄우며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고, 그는 다시 한 번 웃으며 내가 그와 함께 있던 내내 궁금한 점을 해결하러 온 사람처럼 질문을 쏟아내고 있었음을 알려주었다.

뭐 한 가지 관심 가는 게 생기면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고 성에 찰 만큼 알아 내고야 마는 성격은 때로는 지적인 열정이 되고 대개는 극성스러움이 되며 가끔은 오지랖이 되기도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생의 순간순간 커다란 동인(動因)이 되었음을 부정하긴 어렵다.

'한 가지만 제대로 해라'라는 핀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찔끔찔끔 배워 둔 외국어라든가, 몸 쓰는 건 잘하지도 못하면서 건드려 본 각종 운동과 춤이라든가, 한 작가에게 꽂히면 그 사람이 전 생애에 걸쳐 쓴 저작들을 다 읽어보는 독서습관, 도저히 세밀하게 세울 수 없는 여행 계획, 그리고 관심 가는 사람의 면면을 샅샅이 알아보는 (스토커 같은) 취미까지 꿰뚫어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호기심'이라는 한 단어뿐이다.

그리고 작은 물음표 하나가 틀어버린 진로가 근 십 년째 숱한 질문들을 파생하면서 다행히 호기심으로 밥도 먹고살고 있으니 유용하기까지 한 마음임에 틀림이 없다.

무언가를 하게도 하고 그만두게도 하는 이 유혹적이고 강렬한 힘이 앞으로도 나를 어디로 어떻게 이끌지 짐작조차 못하겠지만 역시 너무나 궁금하니까 생은 꽤 살아볼 만한 것 같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