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 간의 (2010-2019) 기록을 작년 부로 마치고, 다시 5년 다이어리를 한 권 사려고 하다가 몇 년 간이나 내 방 책꽂이에 꽂혀있던 이 일기장의 존재를 기억 해 냈다.
적어도 5년간 치료 일기를 적어 내려 가길 바라며 엄마에게 선물했던 이 5년 일기장은 맨 첫 번째 해 2월까지 드문드문 몇 자 적힌 것 말고는 모두 빈칸으로 남았다.
틈만 나면 글을 쓰고 시를 쓰고 온갖 신파 늘어놓는 내 셀프 신상 털기 기질은 아빠에게서 물려받은 게 분명해서, 간단명료한 (= 쓰는 걸 귀찮아하는) 성향의 우리 엄마는 간직할 만한 편지 한 장 남겨둔 게 없고, 여기저기 적힌 메모도 어느 것 하나 구구절절 읽을 맛 나는 게 없다. 하지만 엄마와 딸의 관계란 참으로 깊고 진한 것이어서, 길지 않은 단 몇 자의 글귀 속에서도 엄마의 감정과, 엄마의 생각과, 엄마의 표정과, 소리 내지도 않은 그 목소리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엄마의 일부가 나를 통해 아직 이 땅에 살아 숨 쉰다는 것이 그대로 느껴진다.
이제는 정말로 기억해 주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은 오늘, 도망가지 않고 일상을 살았다. 일도 하고 농담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보통날을 보냈다.
그리고 이 일기장을 꺼내서 이어 쓰기 시작했다. 미완성의 5년 일기장 이 다 채워졌을 때 과연 나는 인생의 어떠한 새 국면을 맞게 될까. 또 다른 5년을 새로운 나로 채워가고 싶다. 엄마가 살게 해 주고 엄마가 남겨 준 삶의 유산들이 나를 통해 더욱 생생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