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매일단어

말버릇

by 담쟁이

1.
A의 말버릇은 팩트와 추측을 구분하지 않는 것이다. 한 참 말을 듣다가 다시 되돌아 확인해 보면 이제까지의 경험이나 자기 생각에 비추어 ‘그랬겠거니’ 한 내용을 사실과 섞어놓은 경우가 많다. 특히 자신이 싫어하는 것에 대해 이런 경향이 두드러지는데 문제는 중립적인 제삼자에게까지 자기 편견을 전파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성향을 파악한 언젠가부터 나는 A가 하는 말에 ‘직접 들은 말인지’ ‘사실로 밝혀진 말인지’를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고, 그가 하는 감정적인 말들을 백 프로 신뢰하기 전에 의심의 여지를 남겨두게 되었다.

2.
B의 말버릇은 상대방이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이 내가 아는 내용일 때 반드시 티를 내고 한 마디 덧붙이는 것이다. 자신이 아는 키워드가 반의 반 토막 정도만 나와도 ‘그거 안다’를 외치며 그에 대한 연관 지식을 말하느라 상대방의 말의 맥을 끊어버리곤 한다. 이미 아는 얘기를 설명하는 수고를 덜어주기 위한 호의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세련된 대화기술로써 쓰이지는 못한다. B의 입에서 나오는 말의 속도나 말할 때의 표정 등의 비언어적 의사소통 방식이 알려주기 때문이다. 지금 하는 행동의 의도는 상대방을 배려하기 위함이 아닌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자신을 어필하기 위함이라고.

3.
C의 말버릇은 무조건 반박하고 보는 것이다. 비판적인 사고를 가지는 것은 의심할 것이 많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의 소양이라고 할 법 하지만 그의 그것은 친한 사람이나 편한 사람에게 유독 드러난다. 물론 감정에 휩쓸린 상대방에게 이제껏 생각하지 못한 관점을 줌으로써 냉정을 되찾게 하는 좋은 효과도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특정 이슈에 대해 본인의 주관과 반대되는 말을 하는 사람에게 자기 의견을 제시하는 논쟁과 본질적으로 다른 것은 그가 하는 비판이 건건이 다른 입장을 취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올바름에 대한 논의가 어느 정도 정리된 사안에 대해서조차 마치 소수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처럼 다르게 생각해 볼 수 있음을 말하지만 결국 그에 대한 논리는 없이 ‘그냥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말하는 그를 보며 어느 정도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것이 습관화된 사람이라는 걸.

4.
D의 말버릇은 논쟁이 되는 사안 앞에서 ‘우린 다르니까’라는 논리를 꺼내고 보는 것이다. 그냥 듣기에는 다양성을 존중하며 갈등을 피하는 만능키와 같은 저 말에 대해서 최근 읽었던 위근우 기자의 책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겁니다’는 말하고 있다. 우리는 사회적 공론의 장으로 가져가야 할 문제 조차 싸우지 않으려고 다양성의 영역에 둠으로써 사회적 변화나 진보가 일어나지 않게 하고 있다고. 인용은 거창했지만 어쨌거나 다르다는 말은 그 어떤 문제제기와 추가적인 의견 제시의 가능성을 일축함으로써 더 나아질 수 있거나 더 나아져야만 하는 사안을 묻어버린다. 특히나 대화 당사자 중 권력관계의 상위에 있는 사람이 저 말을 했을 경우 대부분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면서 골치 아픈 일을 피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착한 사람’들이 많이 쓰곤 하지만, 사실 개처럼 싸움 걸려고 하는 사람들은 그게 ‘착하지만 빡치게 하는 사람’에 대항해 뭔가 바꿀 수 있는 유일하고 절박한 수단인 경우가 많다. (잠깐 눈물 좀 닦고요) 하지만 ‘우린 다르니까’라는 말을 자주 쓰는 사람들은 매우 여유만만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저 말을 듣고도 상대방이 포기하지 않는 경우 ‘몰라, 난 그렇게 생각해’ 따위의 방어로 마침표를 찍곤 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자신이 갈등 없이 문제를 잘 해결했다고 뿌듯해하는 경우도 있다.

5.
그리고 이 모든 말버릇들을 불편하게 인지하고 있지만 당장은 아무 말하지 않는 것이 나의 말버릇이다. 괜찮아서 참는 것은 아니다. 이들이 스스로 개선하게 되리라는 기대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폭발적인 한순간을 위해 분노를 모으는 것이다. 오래 참지만 영원히 참지 못하는, 언제나 끝을 보면서도 아무렇잖게 관계를 유지하는 내가 그래서 가끔 무섭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