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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매일단어

남사친

by 담쟁이

연차상 가장 오래된 친구 A가 여름에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연차상이란 말을 붙인 이유는 우리가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근거가 알고 지낸 세월이기 때문이고, 그런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친구라는 말을 붙이는 이유는 우리가 나쁘지 않은 감정으로 서로의 근황을 확인할 수 있는 물리적이자 심리적인 거리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의 부모님 포함 대부분의 사람이 '모태솔로'라고 알고 있을 정도로 A는 오랜 세월 도 닦듯이 공부만 해 온 친구였다. A가 학위 받은 후 약 5년여간의 해외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그의 근황은 내게 전혀 궁금한 소식이 아니었다. 그동안 결혼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런가 보다 싶었겠지만 귀국한 지 채 1년이 되지 않은 A의 결혼 소식을 이토록 비중 있게 언급하는 이유는 첫째, 그 상대가 나와는 도무지 안 맞는 타입의 인간이라 근 십 년 동안이나 거리를 둬 온 B이기 때문이고, 둘째, 그 둘이 만난 기간이 8년이라는, 그간 내가 한 번도 눈치채거나 의심하지 못했던 사실 때문이다. (두둥) 소문으로도 한 번 들어보지 못한 이 만우절 거짓말 같은 사실이 일주일 채 안 되는 동안 사실이 되어 급기야 당사자 입에서 고백이 되어 나오자, 뭔가 알 수 없는 감정이 생겨났다.

물론 축하도 했고, 서운한 마음도 표현했고, 장난스레 너희 진짜 무서운 놈들이라는 말까지 전했고 그 모든 게 다 진심이지만, 전해진 마음 외에 그 어떤 마음이 남아있는데 그 정체를 알기가 어렵다. 모든 걸 단순화시키고 그 단순한 생각과 감정 너머로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사람은 'A를 좋아했던 거 아니야?' 따위의 말을 하겠지만 그거야말로 대꾸할 가치가 없는 생각이고, 배신감이 아닐까 했지만 그러기엔 A와 나는 주요 신상을 공유할만한 그 어떤 당위가 없는 관계다. 나만 안 알려준 것도 아니고 모두에게, 심지어 가족에게도 비밀이었으니 딱히 나만 서운할 일도 아니고, 내가 별로 안 좋아하는 B라서 그런가도 싶지만 사실 그게 무슨 상관있나. 생각해 보면 미국에서 잠시 귀국했던 A와 둘이서 밥 먹으면서 B에 대해 별로라고 신나게 이야기했던 기억도 있는데, 그 말에 깨알만큼이라도 영향 안 받을 녀석이라는 건 내가 더 잘 안다.

알 수 없어서 털어버릴 수도 없는 이 이상하게 찜찜한 느낌을 그대로 둔 채, 내가 확신하게 된 건, A와 내가 공유한 그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친구'에서 '친한 친구'로 넘어갈 수 없었던 건 이토록 극명한 선호와 안목의 차이가 있어서라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내가 좋아하는 것을 모두 좋아할 필요는 없고, 싫어하는 것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지만, 30년간 그다지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없이 그야말로 무색무취의 삶을 살던 친구가 거의 처음으로 '좋아한다'라고 보여준 취향이 내가 '싫어한다'라고 생각하는 취향일 때, 우리의 관계에 대해 참 근본적인 질문이 생긴다.

우리가 한 번이라도 친구였던 적이 있었나.

어쩌면, 우리는 각자의 첫 번째 친구가 아니라, 첫 번째 친구가 생기기 이전에 '거기 존재하던' 관계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이었는지 모를 옛날에 B는 '언니는 A오빠랑 그렇게 오래 알고 지냈는데 한 번도 이성으로 느껴본 적 없어요?'라고 물었고, 나는 '있겠냐?'라고 대답했었지만, 사실은 그런 질문이 얼마나 수준 낮은 것인지 나는 최근 들어서야 조금 깨달았다.

지난주만 해도 '옛날처럼 밥 한 번 먹자'라며 아주 캐주얼하게 카톡을 보내온, 한 때 정말로 아꼈던 동생의 얘기를 했더니 '남자'동생이 '새벽'에 카톡을 보내오다니 뭔가 의미하는 거라며 꺅꺅 거리는 여자들의 가벼움과 유치함, 그리고 그런 반응에 질색했던 내 감정들이 떠올랐다.

인간관계에 있어 이성으로서의 케미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으로 2단 분류하는 그 단순함에 가끔 할 말을 잃을 때가 있다. 시간도 색깔도 사실 사람이 만들어놓은 개념 외에 분명한 경계란 없음을 다들 알고, 배우고, 가끔은 그런 경계를 일부러 무너뜨려 생각할 때도 있는데, 이성 간의 관계에 있어서만 그런 분명함이 반드시 있고, 있어야만 한다고 믿는 것이 참 모순적인 게 아닐까.

호감이라는 건 수직선 위에 놓여있지 않다. 사람은 사분면이 표현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입체적인 척도로 다른 사람을 느끼고 또 대한다. 그것은 자연에 있는 색채만큼이나 다채롭고, 봄이란 계절이 오고 가는 것만큼이나 모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분명함이라는 게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면 그게 인간 생명과 번식의 근간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필요 이상으로 감각이 분화된 일종의 돌연변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A에게 느끼고, 또 이제껏 느껴온 감정이라는 것이 이성으로서의 케미 그 언저리에 있는 복합체라는 뜻은 아니고, 굳이 따지자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에서 '사실 아무것도 아니지는 않은 사람' 정도의 모호함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A와 나의 결정적인 안목의 차이는 그 모호함을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좀 더 분명하게 옮겨준 게 아닌가 하고, 오늘의 결론을 지어본다.

물론 내일이 되면 달라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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