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

사랑의 형태

by 해차

사랑의 형태에는 여러 가지 모습이 있습니다.

가족의 사랑, 연인 간의 사랑, 친구 간의 사랑.

저는 그중에서도 애증이라는 것에 대해서 조금 적어볼까 합니다.


애증


사랑과 미움을 아울러 이르는 말. 그리고 어떠한 대상을 향해 애정과 증오를 동시에 가지는 심리 상태를 뜻한다.


애증이란 어려운 사랑의 형태인 듯합니다. 누군가를 깊이도 미워하면서 누군가를 끈질기게도 사랑하는 형태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애정과 증오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쉽게 나오는 형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에게는 애증의 대상이 있나요? 저는 지금까지의 삶동안 세 사람을 지독하게 애정하고 증오했습니다. 한 사람을 가족이고, 한 사람은 연인이라는 관계에 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가족에게 애증을 느낀 경험이 있으신가요? 저는 사춘기 시절을 지독하게 겪을 때 갱년기를 함께 겪었던 엄마에게 한 때 애증의 마음을 품었습니다. 엄마를 너무 사랑하고, 아니 사랑한다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저 '나' 자체였던 엄마를 그렇게 미워하면서도 사랑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애정만 남아있습니다.

애증이 애정으로 바뀐 건 솔직하게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심한 우울증으로 자살시도까지 하였고, 그런 저를 엄마는 이해 못 해준다고 생각했습니다. 엄마와는 평생 맞지 않을 것이고 항상 싸우고 서로 상처만 받는 관계일 거라고 그때는 단정 지었습니다. 한동안 엄마를 피하고 본가에도 가지 않고 거리를 두었습니다. 한동안이라는 말로 정리하기에는 7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네요. 7년 동안 그렇게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애증을 지속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가 생각하는 '엄마니까'하는 희생을 하는 엄마가 싫었나 봅니다. 엄마도 여자고, 엄마도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이고, 엄마는 엄마 혼자만으로도 충분히 멋진 여성인데. '나'라는 족쇄에 묶여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그 모습이 고마우면서도 그리도 미웠습니다. 시간이 지나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가에 대해 꼬리를 물어 생각해 보니 결국은 제 안에서 만들어진 자기혐오에서 비롯된 것이더군요. 엄마에게는 항상 미안하고 감사하고 사랑을 넘어선 사랑을 느낍니다.


두 번째 제 애증의 대상은 전연인입니다. 처음에는 애정이 집착으로, 집착이 원망으로, 원망이 증오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있는 애정과 섞여 애증의 형태로 남았습니다. 이를 극복하고 더는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이 사라지게 된 이유를 찾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왜?'라는 물음이 쉽게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의 전연인은 모순적이고 자기 합리화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남에게도 자신에게도 통제적으로 삶을 살아가며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중요하기도 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그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게 된 것도 애증이라는 감정조차 벗어버릴 때까지 고민하여 내린 결론입니다. 아마 그 사람은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고 절대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니까요.


제가 많이 아플 때 저를 떠난 사람. 평생을 약속하고 모든 것을 내어줄 것처럼 말해놓고 온전한 저를 보여주니 무서워서 도망친 사람. 그렇게 기억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냥 그 사람도 어렸구나 싶습니다. 많이 어렸고 미숙했고 건강한 사랑을 하는 방법을 모르는 우리였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남아있는 애증을 끊어내지 못하고 힘들어하던 어느 날, 그 사람에게 받은 답장으로 그 사람에 대한 모든 감정을 정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떤 내용이었는지 이제는 기억나지 않지만 답장을 준 그 사람에게는 아주 약간은 고마운 다음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애증한 사람은 바로 제 자신입니다. 스스로를 애정하고도 증오합니다. 이 부분에서는 과거형을 사용하기가 아직은 때가 아닌 듯 느껴집니다. 여전히 스스로에게 애증의 감정을 품고 있기에 우울증의 증상들이 나타나는 것이겠죠. 다만, 겉으로 티가 나진 않습니다.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내가 나를 지켜야 하고, 내가 나를 변호해야 하기 때문에. 누구보다 제가 저를 소중히 해야 했습니다. 그래야 무시를 당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주로 혼자 있는 시간을 힘들어합니다. 누구에게도 잘 보이거나 세 보일 필요 없는 그 혼자만의 시간에 애정보다는 증오가 올라와 스스로가 혐오스럽기도 합니다.


추후 언젠가는 저에 대한 증오를 해결했다는 글을 쓰게 되는 날이 왔다고 생각하는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그럼에도 살아냈고 남에 대한 증오를 벗겨냈고, 세상을 조금 덜 예민하게 바라보는 법을 배우는 중이니까요.


사진/핀터레스트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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