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의 궁
중국.
장구한 세월 한국 문화에 깊이 스며들어 있고
어려서부터 여러 매체를 통해서 읽고, 보았던 중국의 문화, 문학, 예술, 영화... 사람들...
갑자기 가슴이 뛰었다.
북경.
느린 듯하면서도 활달하고 거친 속도감,
거친 듯하면서도 정교한 화려함이 공존하는 활력 있고 흥미로운 도시,
나의 북경에 대한 첫인상은 그랬다.
중국 북경의 명소,
자금성에 간다.
중국 시민들은 옷차림이 수수하고 어딘가 여유 있어 보인다.
어디를 가도 자전거와 빨간 택시를 볼 수 있다.
자금성의 정문 오문 (우먼 午门 Wǔmén).
자금성(紫禁城) 남면 성벽 정중앙에 위치하는 문으로 세 개의 통로가 있는데, 중간 통로는 황제만 출입할 수 있고 보통 닫아둔다고 한다. 좌우로 마치 새가 날개를 벌린 형상으로 지어졌는데 남향을 상징하는 주작의 형상을 본뜬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름도 주작을 의미하는 오문이라고 한다. 자금성이라는 이름은 황제의 탄생과 관계있는 자미성이라는 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국에도 남대문, 동대문 등이 성벽 없이 남아 있듯이, 남쪽으로 낸 자금성의 정문인 오문도 문만 남아 있다.
옛날의 중국 도시들은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북경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성벽을 쌓아놓으면 그 안에 건물을 짓는 데는 금방 한계가 왔다. 자연히 사람들은 성 바깥에도 집을 짓게 되었다. 그래서 1553년에 이들 민가를 모두 둘러쌀 수 있는 새로운 성벽을 만들게 되었다. 처음에는 이중으로 쌓을 예정이었지만, 엄청난 경비 때문에 이 사업은 남쪽 성벽만 완성한 채 끝나고 말았다. 그 후 원래의 성벽은 '내성'으로, 덧붙여놓은 남쪽의 성벽은 '외성' 혹은 '나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해방 후에 북경의 성벽은 차례차례 철거되었다. 근대 도시로서 살아남으려는 데 성벽은 방해만 될 뿐이었다.
북경을 둘러쌌던 성벽은 동쪽이 5.5km, 서쪽이 4.7km, 남쪽이 7km, 북쪽이 6.8km로 전체가 24km나 되었다. 성벽의 높이는 장소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략 10m가 넘으며, 기층부의 두께는 20m, 상단의 폭이 17m에 이르렀다고 한다.
진순신, < 중국기행>, 정태원 옮김, 예담 15p.
성벽의 두께가 20m라는 것이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 오래전에 찍었던 이 사진을 보고 수긍하게 되었다. 대륙 스케일...
자금성은 명, 청대의 황제가 거하던 궁궐.
성벽을 지나서 보니 규모의 거대함과 화려함은 정말이지 대단했다.
너무 커서 하루 동안 다 돌아보기 힘들다. 999칸으로 설계되었다고 하니... 게다가 고궁 박물관 유물까지 관람하려면 하루로는 턱없이 부족.
성문을 통과하면 끝 간 데 모를 넓은 마당이 펼쳐진다.
이쪽에서 저쪽 건물까지 거리가...
상당한 높이가 있는 건물인데 작아 보일 정도. 그만큼 넓다.
성 안이 아니라 성 밖에 있는 광장 같다고 해야 할까.
돌에서 온기가 느껴질 정도로 완성도가 뛰어나다.
횃불을 형상화한 것일까. 꽃봉오리일까...
푸른 이끼가 자연미를 더해준다.
저 멀리 보이는 노란 지붕.
황실 궁궐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다는 유리 기와. 이 유리 기와를 구운 곳이 유리창.
해가 나면 황금빛으로 반짝인다고 한다. 이 날은 흐려서 그런 장관이 연출되지는 않았다.
상징을 담은 동물들이 지붕 끝에 앉아있다. 건물을 지켜주는 수호 동물들 아닐까.
석조 난간의 조각은 상상력과 사실적인 묘사의 결합
시선이 절로 빼앗긴다.
전설의 동물, 용의 위엄.
구름과 주작은 왕후를 상징한다고 한다. 옛날 분들은 상징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이런 조각의 형태들 하나하나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정교한 석공의 솜씨에 돌이 아닌 듯 느껴진다. 그런데 돌이니까 묘한 느낌을 지속적으로 받게 된다. 초를 만드는 밀랍으로도 이렇게 조각하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 물질을 자연 그대로 두기보다 고도의 조형성을 발휘해서 변형하고 수많은 상징과 이야기를 담는다. 그런데 완성도가 높다 보니 그 자체로 자연의 일부인 듯 자연스럽다. 상상의 동물을 실감 나게 표현하니 상상의 존재가 아니라 실재하는 것이라는 느낌을 준다. 이렇게 중국엔 곳곳에 드라마가 펼쳐지는 것 같다. 이런 표현력은 강제로 발휘되기 어렵지 않을까. 석공이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야 가능하지 않을까.
높은 문.
권위를 드러내기 위해 필요했나 보다. 여닫기도 관리도 쉽지 않겠다.
다른 한편, 전반적으로 광활하니 문이 높아야 적절한 균형감이 생길 수 있겠다.
붉은색에 황금색 장식. 황량한 대륙에 활기를 주는 색으로 느껴진다.
황제의 위엄을 드러내는 높고 붉은 문과 기둥.
아래에는 청회색의 돌계단. 구름과 상징적인 동물들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
높고 붉은 벽. 성벽의 높이는 10m가 넘는다고 했다. 이 벽도 상당히 높다.
자금성처럼 이렇게 넓은 곳은 지금처럼 시민들이 공유하는 것이 훨씬 좋다.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 공항, 공원, 체육 시설들처럼.
이 넓고 화려한 곳을 소유하는 데 얼마나 많은 위협이 도사리고 있었을까. 이 높은 벽이 말해주고 있다.
이렇게 높은 벽도 무협 영화에서는 내공 높은 무사가 가볍게 뛰어넘지만...
옛날 전제 황제는 3중으로 둘러싸인 땅에 궁전을 지었다. 그들의 화려한 생활이나 어마어마한 권위는 일반 백성들을 착취해 이룩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백성들이 반기를 들고 봉기를 일으킬까 봐 이처럼 조심조심 몸을 사리며 자신을 지켰다. 고궁을 둘러싼 황성의 남문이 천안문인데, 고궁 자체의 정문은 '오문'이라 했다.
진순신, < 중국기행> 17p.
붉은 문. 붉은 벽, 붉은 처마.
비극적인 이야기가 이 붉은색에 어려있는 듯 느껴진다.
고궁 안 곳곳에는 지나간 역사의 흔적이 봉해져 있는 셈이다. 고궁은 또한 수많은 궁녀들이 청춘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궁녀들의 한탄이 고궁의 지하에 묻혀 잇는 듯한 기분이 든다. 궁전을 짓던 목수들의 괴로움도 기둥 하나하나, 기왓장 한 장 한 장에 스며들어 있어 이곳을 찾는 현대인들에게 조용히 무언가를 속삭이는 듯하다.
진순신, < 중국기행> 20p.
처마에도 붉은색을 쓴다. 색에 대한 관념이 인접한 국가인데도 이렇게 다를 수가 있다. 신분에 따라 쓸 수 있는 색이 달랐다고 하니 그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붉은색과 황금의 노란색. 중국 최상층 문화의 색인가 보다.
화려한 장식 문양. 연못의 연꽃과도 일체감을 이룬다. 정 중앙에 강력한 힘 - 강력한 중앙 통치 체제의 추구가 장식에도 반영되어 있는 듯했다.
기둥 하나에도 장식을 잊지 않는다.
궁궐이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한국에선 보기 힘든 감각이다.
대나무와 대칭을 이룬 문양화 된 한자에서 중국적인 감각이 느껴진다.
소수가 누리던 것을 시민에게 개방한 이후 자금성은,
비록 건물은 낡아가지만 그 정교한 테크네와 웅장한 대륙 스케일을 자랑하며
전 세계와 중국 각지로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싶어 하는 명소가 되었다.
시민들의 자금성을 향한 애정을 보여주는 기사가 최근에 마침 인터넷에 게재되었다.
어제 서울에 눈이 내렸는데 중국 북경에는 더 일찍 눈이 내렸나 보다.
붉은색 벽에 흰 눈이 내리는 광경과 사람들이 쓰고 있는 각양각색 우산이 예쁘다.
"[인민망 한국어판 11월 23일] 절기 '소설(小雪)'인 지난 22일 베이징에 폭설이 내린 가운데 관광객들은 폭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궁(故宮)에서 줄을 서 표를 사고 자금성(紫禁城)의 설경을 감상한다."
중국발 최근 기사 : 눈 내린 자금성 보기 위해 고궁은 인산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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