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에선 종종 공안을 볼 수 있다.
긴장된 자세로 업무에 임하고 있는 앳된 공안과 달리
느긋한 시민들의 모습이 북경의 대체적인 풍경을 이룬다.
이를테면,
자금성 둘레에는 성 방어를 위한 물길(해자 垓子/垓字 )가 있는데
시민들이 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풍경을 볼 수있다.
도심 한가운데서 낚시라니
신선하지 않은가.
북경 시민들의 낚시 사랑에는
청년, 중년, 노년 구분이 없는 듯.
이렇게 한가한 가운데
분주히 사람들의 이동을 돕는 분들도 보인다.
오토바이를 변형한 이동 수단.
바람 많이 불거나 비 올 때 좋겠다.
어딘가 애틋하게 느껴지는 자전거...
자금성의 노란 유리 기와 지붕. 그 유리 기와를 만들던 곳인 유리창에 가는 길.
천안문 광장은 택시를 타고 지나가면서 보기로 했다.
천안문 가까이 있는 정양문( 정양먼 正阳门 Zhèngyángmén)은 전루(箭楼)와 성루(城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나의 성곽이 도로를 내며 두 개로 분리되었다고 한다.
그 유명한 천안문.
마오쩌뚱의 초상화 좌 우 붉은색의 강렬한 문구의 다소 결연한 분위기와는 달리
북경 시민들의 모습은 한가롭다.
특이한 가로등도 보인다.
자전거와 빨간 택시는 북경을 개성있게 만든다.
수수한 차림의 북경시민들과 자전거가 아름답게 느껴졌다.
북경 건물에서 묵직한 덩어리 같은 느낌을 받는다.
크고 견고한 어떤 덩어리.
그 크고 묵직한 구조물 사이로 자전거와 경쾌한 색의 택시와 버스가 달린다.
북경 시민들.
왠지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해서 내가 좋아하는 사진이다.
천안문은 아래쪽에 아치 모양의 통로 다섯 개가 있어서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거대한 궁전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랜 세월 동안 묵묵히 중국의 역사와 함께한 천안문은 국가에 큰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것이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여러 가지 중요한 조서가 발표된 곳이다.
1900년에 일어났던 의화단운동 때에는 천안문 바로 앞에서 싸움의 불꽃과 연기가 피어올랐다. 1919년 5.4 운동 때에는 이곳에서 북경의 애국적인 학생과 지식인들이 일본이 내민 21개 조항의 요구에 굴복한 군벌정부에 항의하는 행동을 시작했다. 1949년 10월 1일 마오쩌둥이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을 알린 것도 천안문광장에서였다. 1979년 4월 청명절에 일어났던 천안문사건도 이곳이 무대였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천안문은 옛날 위정자가 일반 사람들에게 알리는 조서를 발표하는 무대이기도 했다. 20세기 들어와서 그곳은 봉기를 일으킨 사람들이 자신들의 혁명적인 사상을 전국에 호소하는 장소로 쓰였다. 천안문은 그런 의미에서 중국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힘차게 고동치는 중국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17-18p.
진순신, < 중국기행>, 정태원 옮김, 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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