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취 깃든 거리에서
유리창.
천안문 광장에서 가까운 유리창은
고서, 문구, 골동품 등으로 유명한 거리.
왕실에서 사용했던 유리기와를 굽는 곳이었다고 한다.
자금성에서 보았던, 해가 비치면 황금빛으로 빛난다는 그 지붕의 노란 유리 기와가 생각난다.
필름으로 찍은 이 사진을 참 좋아한다.
베이징 여행에서 찍은 몇몇 사진은 정말 아끼는데 그중 한 장이다.
멋스럽게 낡은 건물, 소박한 사람들, 자전거
1920-3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의 미장센 같은 거리 분위기.
고색창연한 건물들과 옛 시대의 흔적을 느끼게 하는 수공품들로 가득한 운치 있는 거리였다.
유리기와를 더 이상 굽게 되지 않게 된 빈터에 노천시장을 열게 되었는데
서적, 문구류를 파는 노점이 가건물이 되고, 그 가건물이 하나 둘 본격적인 점포로 발전하면서
문향이 깃든 유리창 거리가 생겨났다고 한다.
군데군데 나무가 있고
자전거와 난닝구(런닝셔츠)와 셔츠 바람의 소박한 옷차림들이
옛스러운 공예품과 잘 어울린다.
천으로 만든 가방과 자수, 전통적인 수공예품을 팔고 있다.
중국 한시 자수가 놓여 있는 천가방을 하나 사서
한국에 돌아와서도 오랫동안 사용했다.
시를 즐겼던 중국의 문인들. 그 흔적이 수공예에도 깃들어 있다.
검은색 공단 바탕에 붉은색 자수로 한문이 수 놓아져 있었는데
보는 사람마다 눈을 떼지 못하고 한두 마디씩 하곤 했던 가방.
가볍고 복고적인 멋이 있어 아껴가며 썼지만 아쉽게도 가죽 가방 만큼 튼튼하지는 않았다.
몇 해 동안 잘 썼다.
중국의 한자와 필묵 문화는
한, 중, 일, 베트남 등 동북아시아에서 공유되던 국제적인 문화였다.
시서화(詩書畵)로 일컬어지는 시와 서예, 그리고 수묵화는
오랫동안 중국, 한국, 일본의 왕실, 관리, 문인들로부터 사랑받아왔고
일상적으로 누리던 생활양식이자 예술이었다.
문자향,
서권기,
묵향...
이런 아취 있는 어휘들을 떠오르게 한다.
이렇게 다양한 붓이 현대에도 남아있다는 것은 이전에는 그 문화의 향유가 대단했다는 것을 말한다.
이름도 가을비, 운치 있는 중국의 한 인문학자 위치우위(余秋雨)는 붓 문화에 대해 이렇게 서술한다.
붓 문화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그 옛날에는 문인들의 의복과 발걸음, 주거지의 배치, 교제, 왕래 등등 모든 것들이 서예와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삶 전체에서 잔잔한 묵향이 짙게 배어 나올 수 있었다.
스마트 기기들이 가방의 형태를 바꾸는 것을 보면 충분히 수긍이 된다.
옛날 분들은 서예를 통해 자신의 마음까지 갈고닦았다니
삶의 지혜와 관련되는 자기 수양,
정체성과 관련되는 이미지,
개성을 드러내는 스타일은 예나 지금이나 중요한 듯하다.
고대 문인들은 서예를 익히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이를 통해 자신의 개인적 이미지를 수련했다. 이는 마치 현대 서양 여자들이 평생토록 헬스 운동하는 데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위치우위 , <중국문화 답사기> 420p.
스티브 잡스는 대학을 중퇴하고 인근 대학에서 디자인 수업 중 하나인 서체 강의를 청강했다.
그리고 그 서체 청강이 애플을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 축사 연설에서 고백했다.
애플은 하드웨어 디자인뿐만 아니라 유저 인터페이스를 그래픽 위주로 과감하게 바꾸고 아름다운 서체를 사용해 기계라고 생각되었던 컴퓨터를 아름다운 사물로 재창조했다.
애플 마니아의 충성도를 이끌어 내는 지속적인 힘은
애플의 섬세한 작동 방식에조차 깃든 스타일의 아름다움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옛 문인들도 그랬다.
글의 내용은 말할 것도 없고,
글자의 형태, 서체의 형태에서 스타일을 발견했고, 개성을 표현했다.
소동파(蘇東坡 북송대 시인 문장가 학자 정치가 1037-1101 본명은 소식 蘇軾)와 동기창(董其昌 명대 화가 1555-1636 ) 역시 확연히 다른 성격을 지닌 두 문인이라 할 수 있다. 동기창이 볼 때, 강렬하고 대범하며 집착이 강한 소동파는 먹을 가는 데에서도 지나치게 진한 감이 있었다. 그래서 동기창은 그를 '묵저(墨櫡)'라고 비웃었다. 이에 비해 동기창은 먹물이 잘 번지지 않는 종이를 좋아했으며, 매끄러운 글을 써서 담백하고 떠도는 듯한 느낌이 들게 만든다.
더 나아가 인격까지 담는 그릇이라고 여기는 분위기가 옛날에는 있었지만,
한 사람의 다양한 측면을 글씨 형태로 대응시키기에는 상당한 무리가 있다.
서예는 전체적으로 볼 때 일종의 형식미라고 볼 수 있으며, 그것과 인격과의 관계는 더욱 복잡다단한 것이다. 대응이라는 것도 단지 '보편적인 대응'일 뿐으로 그 보편적인 과정 속에 여러 가지 다른 요소들이 얽혀 있다.
성격이 유약한 수많은 문인들이 매우 힘찬 글씨를 남겼으며, 맹장들이 남긴 글씨라 해서 꼭 살벌한 기운이 들어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때로 인품이 보잘것없고 절개가 없는 문사들이라 할지라도 강건하고 부드러운 글씨를 쓸 수 있다.
한 인간을 완성하고 그것을 드러내는 일은 참으로 복잡하기 그지없다.
위치우위, <중국문화답사기> 422p.
옛 서책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출판물들.
수묵화나 서화 모음집들이 많았는데 수묵화를 좋아하여 한 권 샀다.
한문으로 가득한 그 책을 나는 그림만 볼 수밖에 없었지만
한문 자체도 서체의 스타일이 있어 그림의 일부로 보였다.
옛날분들도 시의 내용뿐 아니라
그 시를 종이에 적어 내린 문자의 형태에서도 분위기와 개성을 읽어냈고
그림과도 연관시켜 감상했다.
한글세대로 한문 독해가 안 되는 나에겐 그 형태가 더 잘 보인다.
시서화 삼절이라 하여, 시와 서예와 회화 모두에 뛰어난 문인들에 대한 칭송을 지칠 줄 모르고 하는 데에는 시와 서예와 그림에 대한 옛 분들의 깊은 사랑이 자리 잡고 있었다.
수묵화와 서예 감상을 좋아하고 시와 그림은 하나다라고 하는 시화 일치 등의 동양 미학에 내가 관심을 갖게 된 데에는 어려서부터 형성된 취향 외에 중국 여행의 여운이 크다.
안에 잠재되어 있던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취향이
여행으로 인해 조금씩 발아한 것 같다.
아마 다른 분들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황량한 사막에서
어떤 이는 아이슬란드의 광활한 땅에서
어떤 이는 파리의 노천카페에서
...
그리고 한자 문화권 사람들이라면
무의식 어딘가에 어느 정도 이 취향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정도는 세대가 이어짐에따라 점점 옅어져 갈 것이다.
"오래된 먹을 가볍게 갈고 있자니 묵향이 가득하고, 벼루를 연지에 새로 닦으니 찬란한 빛이 발한다"라는 시구가 있는데, 이는 삶에 대한 희열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옛말에 "사람이 먹을 가는 것이 아니라 먹이 사람을 간다"는 말이 있는데, 이렇게 먹을 갈고 또 갈면서 진정한 중국의 전통 문인들이 탄생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전체적인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서예를 통해 문화적 인격을 투시하는 데 길들여졌다.
위치우위(余秋雨), <중국문화답사기>, 유소영, 심규호 옮김, 미래 M&B 421p.
커피를 좋아하게 되면, 로스팅 된 원두를 사다 갈아서 직접 내려 마시면서 그 과정을 하나하나 즐기듯이, 또 차를 즐기면 다기에 관심이 가서 하나하나 사서 곁에 두고 사용하듯이
옛 분들은 서예와 서화를 즐기며 네 벗 - 문방사우(文房四友) - 종이와 붓, 벼루와 묵에 깊은 애정을 느꼈을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자니 문득,
스마트 기기들의 매끈한 표면과
잘 마모되어 반질반질한 벼루의 면이 중첩된다.
서양의 애플에는 없는 펜을 굳이 넣은 한국이 만든 스마트폰,
동양 한자문화권의 무의식이 작용한 것 아닐까 생각한다.
유리창에서 나는 한시가 수놓아져 있는 천 가방을 하나 구입해서는
그 안에 수묵화 화집 한 권, 붓 한 자루 사서 넣고 유유자적 걸어 다녔다.
참 멋스러운 오후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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