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푸징과 북경 도로 스펙터클

북경 여행 에필로그

by 해달 haedal


북경의 번화한 거리 왕푸징.


현판에 우물 '정'자가 보인다.

명칭은 명나라 시대에 왕족 저택의 우물이 있었던 것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수많은 자전거,

다른 형태의 신호등.

문득문득, 이국에 온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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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 형태가 아닌 세로 형태의 신호등

세로 글쓰기 문화와 관련이 있을까 생각해본다.


신호등과 택시와 버스는 어딜 가나 거의 항상 있기에 눈여겨보는데

흔하면서도 나름 개성이 있어 이국에서의 느낌을 환기시켜준다.


꽃을 매달아 거리를 장식하는 것은 처음 본다.

일본 못지않게 중국 시민들도 꽃을 좋아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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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색과 노란색, 자금성에서 본 황제의 색이

왕푸징 음식 거리에서 시민들이 좋아하는 색으로 자리 잡은 것을 본다.


소수가 특혜를 독점해서 누리던 시대에서,

다수가 많은 것을 공유하고 동시에 개인의 자유는 점차 확대되어 가는 사회 변화를

색의 사용에서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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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쉬타인, 맹수, 베컴, 스파이더맨 T셔츠 그리고 중국 전통의상 치파오...

현대 예술의 설치 작품을 보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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앳된 얼굴의 공안들이 곳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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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음식의 강점은 이동성.


예쁘게 생긴 아가씨가 이런저런 곤충 튀김 꼬치를 먹으며 지나갔다.

참 재미있다 생각했는데 최근 육류 대신 인류의 양질의 단백질 공급원으로 떠오른 곤충.

매우 우수한 식문화임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선량하고 인상 좋은 사람들이나 미인들은

낯선 문화에 느끼는 거리감을 줄여주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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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삭하고 달콤한 과일 설탕과자.

왕푸징에 다시 가게 되면 이 설탕 과일 과자를 다시 먹고 싶다.

촉촉하고 새콤한 과일이 바삭하고 달콤한 투명 설탕 피에 싸여 있다.


뜨겁고 쓴 커피와 달고 찬 아이스크림의 맛을 동시에 맛보는 비엔나커피처럼

다른 두 질감의 음식의 맛과 식감을 동시에 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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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도 이국인데

더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양꼬치를 판매하는 이슬람 권 상인.

유목적인 생활양식에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슬람 문화. 대신 양고기 요리가 발달했나 보다.


양고기는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입맛은 여간해서 바뀌기 힘든데 고기는 특히 그런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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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 방패...

무협 영화 속으로 들어온 듯.

가게 현판 가운데 글자, 도(刀)라고 새겨져 있다.


검(劍)과 도(刀)는 다르다.

검은 양쪽이 날카로운 것으로 서양에서 주로 사용하였고

도는 한쪽만 날카로운 것으로 아시아에서 많이 사용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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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상가에 들어오니 유리 공예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중국은 일찌감치 서쪽 문명과 교류하여 다양한 이국의 문물이 흘러 들어왔는데 그중엔 유리 공예도 포함되었다.


중국 전통 의상을 입은 인형들.

한국, 중국, 일본 모두 전통의상을 입은 이런 인형들이 있다.


저녁을 먹고 카페에 들어가 맥주를 주문.

중국 칭다오, 청도 맥주가 유명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근처 거리에서 중국배를 사 먹었는데 달고 시원.

한국 배보다 크기가 반 정도로 작은데 껍질째 먹어도 맛있어서

이후 중국에 갈 때마다 거리에서 눈에 띄면 사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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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화려한 호텔에 'OO반점(飯店)'

볼 때마다 재미있었다.


중국에서 차를 타고 다니다 보면

종종 마주치는 장면들이 있다.


짐칸에 개의치 않고 사람들이 타고 있고,

도로는 곳곳에 패여 있어 간간이 덜컹대는 가운데

차는 신호를 무시하고 종횡무진 달린다.


덩달아 사진도 덜컹.


북경 스펙터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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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에서는 숙소를 한 곳에 정하고 계속 그곳에서 묵었는데

멀리 이동하지 않는다면 한 곳에 묵는 것이 번거롭지 않고 친숙한 느낌이 들어 좋았다.


오후에 왕푸징 거리에서도 팔던 대나무 잎에 싼 밥이 참 맛있었는데

숙소 호텔 저녁 식사에서도 나와 반가웠다.

두 손 가득히 느낀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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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해외여행의 설렘에 들뜨고

중국의 대륙적 호방함에 매료되었던

북경에서의 여행 마지막 밤이 깊어 갔다.



글과 사진 Copyright(c) by soomook





북경은 역사가 오래된 도시이자 수도라 북경의 역사로 중국 전체의 간략한 시대변화를 그려볼 수 있다.


"북경은 주대(주대) 초기부터 연나라에 속해 있었다. 연나라는 기원전 221년에 진시황에 의해 멸망하기까지 왕조를 이어 왔다. 춘추전국의 난세를 거치면서 연나라는 여러 번 도읍을 옮겼다. 그러나 대부분이 현재의 북경 근처였다. 그런 까닭에 북경을 '연경'이라고도 한다. 연나라는 전국 7웅 가운데 하나였지만, 연의 도읍이란 중국 전체로 볼 때는 한 지방정권의 소재지에 지나지 않았다.


10세기에 들어서면서 북경은 요나라 오경 가운데 하나가 된다. 요는 송과 더불어 천하를 양분하던 세력이었기 때문에 단순한 지방 정권의 성격과는 달랐다. 하지만 이 당시에도 역시 북경은 중국 대륙의 중심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요 시대의 북경은 '남경'이라 했다. 당시 요의 판도로는 북경이 국토의 남쪽에 위치애 있었기 때문이다.

...


12세기 중반에 북경은 흑룡강 유역에서 남하한 여진족이 세운 의 도읍 '중도'가 되었다. 금은 요보다도 큰 나라였지만, 엄밀하게 말해 중국의 통일 정권은 아니었다. 송이 아직까지 남방에 건재했기 때문이다.

1279년에 남송이 멸망하면서 마침내 원나라가 전 중국을 지배하게 되고, 비로소 북경은 처음으로 중국 전체의 도읍으로서 중국의 중심이 된다. 당시 북경은 '대도'라고 불렀다.


태조 주원장은 1368년에 원을 쓰러뜨리고 처음에는 남경을 도읍으로 정했지만, 영락제 때 북경에 자금성을 짓기 시작해 1421년에 정식으로 천도했다. 명 성조 영락제가 수도를 만들 당시에는 원의 대도가 일부 포함되어 있었지만, 대부분 새롭게 건축하려고 시도했다. 그것이 현재 북경의 주요 골격이 되었다. 명을 이은 도 북경을 수도로 삼아 오랫동안 정권을 정권을 지켜왔으나 북경에 근본적인 변혁을 가하지는 않았다. "


진순신, <중국기행>, 정태원 옮김, 예담 13~1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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