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근대를 품고 있는 상하이 프랑스 조계지
이듬해 여름,
중국어라고는 겨우 서너 마디 하는 K와 나(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식당 어디 있습니까? 맛있습니다)
일정이 맞는 K의 친구와 후배 두 사람과 함께 중국 상하이와 쑤저우 여행길에 나섰다.
한 사람은 중국인보다 중국어를 더 잘하는 중국 사회와 문화 연구자,
한 사람은 공자의 성씨를 가진 중국 역사 연구자.
두 사람은 중국 전문가들이기에, 아무런 걱정 없이 상하이를 유람했다.
상하이에서의 저녁
서울에서 인천으로. 오후 비행기는 여유 있어 좋다.
푸동 공항은 상하이 문화 수준을 미리 예감하게 해주었다.
첫날과 둘째 날은 프랑스 조계지(French租界地, 프렌치조치에디)에 위치한 한 숙소에서 묵었다.
중국 숙소 중엔 'OO빈관'이라는 이름이 붙는 곳이 있는데 한국에서의 어휘 이미지와 매치가 잘 안되어 재미있던 'OO반점'보다는, 호텔에 더 가깝게 들린다. 빈관(宾馆), 귀한 손님이라는 느낌에 기분 좋아지는 명사.
체크인 후 여장을 풀고 일찌감치 중국과 상하이에 진출해 있던 국내 한 기업 상하이 지점에서 근무 중이던 한 분 내외와 같이 상하이의 유명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술을 진흙에 꽁꽁 싸서 내오던 장면이었는데, 진품임을 보증하기 위한 것이라고. 망치로 병의 진흙 외투를 깨고서야 뚜껑을 열 수 있었다. 진흙을 발라 아궁이에 구워낸 후 망치로 깨어서 먹는 중국 오리고기 요리( 영화 '행복의 향기'에서 본 바 있는데)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했나 보다.
조계지와 신천지
식사 후 신톈디(新天地, 신천지)라는 곳엘 갔다.
근대 유럽 열강의 식민지 쟁탈전으로 생겨난, 유럽을 옮겨온 듯한 조계지.
그 조계지를 다시 모방, 재현했다는 신천지.
근대 유럽이 중국의 문화와 함께 재현된 곳이 상하이 조계지라면,
그런 조계지가 다시 현대+상하이의 문화감각으로 재현된 곳이 신천지.
나름의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을 터이다.
조계지 특유의 근대적 아우라는 깃들지 않겠지만,
'신'천지의 새로운' 현대적 아우라가 생겨날 테니까.
신천지는 화려하고 세련된 곳이었다.
공연하는 한 클럽에 갔다.
일행 중 중국 전문가 한 사람은 음악과 오디오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오랫동안 중국의 변화를 지켜봐왔는데 상하이 신천지의 한 클럽에서 목격한 중국의 급격한 대중문화 변화 속도에 거듭 놀라워했다.
상하이의 첫인상은
푸동 공항과 신톈디의 세련됨으로 남았다.
베이징과는 다른 세상이었다.
낭만적인 근대와 유럽 풍경,
프랑스 조계지
다음 날 아침.
숙소 창을 여니 들어오는 풍경.
옥상에도 화분이.
반달 모양 테라스가 이국적이다.
왠지 이 사진이 정겨운데, 윗 집도 재미있고
두 번째 집, 한두 사람 서면 꽉 찰 듯한 작은 공간에도 화분을, 창에도 놓여있는 작은 화분을.
참 풀과 나무 좋아한다.
일본은 반듯하게, 정갈하게, 지저분한 건 치우거나 가린다.
약간 긴장되지만 정돈되어 있고 깨끗해서 상쾌하다.
중국은... 그대로 둔다.
여유롭고 느긋하게 편안하다.
편안함에도 뉘앙스가 여럿.
정갈하고 상쾌한 편안함이 있고
약간 무질서하고 느긋한 편안함이 있고...
질서의 편안함과
무질서의 편안함.
동시에
제어의 긴장감이 주는 편치 않음과
혼돈이 주는 편치 않음.
아래쪽을 내려다 보니
일본제를 취급한다는 표지가 붙어있던 이 가게,
요즘은 한류의 영향으로 좀 다른 표현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기도...
플라타너스와 자전거 미니 수레.
객실에서 나와
숙소를 둘러봤다.
이 빈관은 1925년 영국 상인이 지은 저택.
이후 일본군이 기지로 쓰기도 했다고.
영화 '엽문'에서도 엽문이 일본군에 저택을 빼앗기고 고된 노동을 하며 굶주렸던 장면이 나온다.
언뜻 둘러본 복도와 사무실로 쓰이는 듯했던 방.
건물에서 나와 보니 정원이 아름답다.
매일 산책해도, 언제나 좋을 듯한 정원.
훨씬 높은 새 고층 빌딩이 주위에 들어서고 있지만
오래된 이 건물의 매력은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
동후로 플라타너스 가로수길
숙소에서 나서면 이어지던 이 길이 참 좋았다.
오전 특유의 햇빛과 말쑥함, 한적함.
일본의 쓸쓸한 사비와 분위기가 다른 한적함이다.
사비의 한적함에 쓸쓸함과 결연함이 감돈다면,
중국의 한적함엔 활기와 느긋함이 감돌고 있다고 느꼈다.
이런 고급 악기점이 있는 것을 보면
프랑스 조계지의 동후로 일대는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동네일 듯.
돌로 만든 벽에 있는 쇼윈도... 베이징 이화원 벽 유리창이 생각난다.
근대적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입간판.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걸 강조.
상하이에는 유럽풍 대저택이 호텔이나 큰 식당 등으로 사용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간판에서도 중국 문화가 물씬.
상해는 근대적 양식의 건물이 많이 남아있어 이런 간판들이 어울린다.
낭만적인 기분이 길만 걸어도 지속된다.
자전거는 어디를 봐도...
숙소 담장 밖으로 나오면 이런 가로수길이 시야에 펼쳐진다.
건물이 높지 않고 사람과 택시와 자전거가 나란히 다녀 평화롭게 느껴지는데 너무 사람이 없던 일본의 말쑥한 거리들과 달리 사람들도 꽤 있고 소음도 들려오고 덜 말숙하지만 긴장감 없이 느긋한 분위기.
이 조용한 활기, 기분 좋다.
모바일폰에 밀린 공중전화.
이런 부스라면 곳곳에 있어도 좋을 것 같은데.
어김없이 보이는 자전거.
점심을 먹고 오늘은 프랑스 조계지를 중심으로 상하이 시내를 둘러보고
노신의 묘가 있는 홍구 공원에 가기로 했다.
4박 5일의 일정.
오후 비행기, 첫날 저녁은 신천지에.
둘째 날은 상해 근대 유럽식 건물과 홍구 공원을 둘러보고
셋째 날은 쑤저우로 이동, 수향 유람.
넷째 날은 오전엔 졸정원을 둘러보고 오후에 상하이로 돌아와 와이탄 야경 감상.
마지막 날은 일정 없이 점심을 먹고 푸동 공항으로.
일본 오사카 3박 4일 여행에 1박 2일의 교토 여행을 포함시킨 것처럼
중국 상하이 4박 5일 여행에 1박 2일의 쑤저우 여행을 포함시킨 형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