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경험하는 전통 공연 문화, 음식 문화
영화 <패왕별희>를 통해 경극의 독특함과 매력을 접한 바 있어
실제 공연으로 보는 경극 관람, 기대가 되었다.
영화가 주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어우러져 주는 감동과는 다른 성격.
배우들이 관객과 한 공간에서, 바로 눈 앞에서 연기하고 호흡한다는 것이 공연의 매력.
매번 공연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것도 공연의 묘미이다.
이야기도, 연기와 노래 및 연주도 있고 기예도 선보였는데
내용을 잘 알고 보고, 또 본 것을 또 보면서 깊이를 더해가면 좋았겠지만
낯선 공연을 그대로 감상하는 것도 나름대로 괜찮았다.
손짓, 분장과 의상, 창법, 악기 등... 한국의 전통 음악이나 극과는 달랐기에.
중국 사람들은 시, 노래, 그리고 연기를 특히 좋아하는 것 같다.
경극을 봐도 배우들의 목소리, 몸짓에 언어로 치면 수사, 유려한 기교나 과장이 들어있다.
중국은 큰 것에 작은 이름을 붙이는 것을 즐기는 것 같다. 소주 졸정원이 그런데, 이름만 졸(拙)이지 규모가 대단한 정원이다. 요즘 감각으로는 정원이라기보다 굉장히 큰 공원. 중국의 이런 레토릭도 문화적 배경이 있는 것 같다.
레토릭 - 기대를 많이 하면 그 기대에 못 미칠 경우 실망하는 경우가 있다. 반대도 작용한다. 그러니 보잘 것 없는 듯 얘기하고는 상대가 큰 규모에 놀라게 만든다. 과시하는 것을 좋아하거나 놀라게 하는 것을 재미있어하고 드라마틱한 것을 좋아하는 유머감각. 더불어 자신이 얼마나 겸손하고 예의를 잘 아는 사람인지도 보여주고.
카잔차키스는 1930년대에 중국을 방문하였는데 자신이 경험한 바를 이렇게 기록해 두었다.
중국인은 고상함에 대한 300가지 규칙과 3,000가지에 이르는 예의범절을 가지고 있다. 중국인과 장기를 두면 졸에 대해 경멸하듯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내 보잘것없는 탑을 움직이는 것을 허락해주십시오! 내 하찮은 졸로 당신의 영예로운 탑을 공격하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다소 믿기 힘든 광경도 연출된다. 어이없지만, 만약 내가 이런 시대에 이런 문화가 당연시되는 곳에서 태어나 살아간다면 이렇게 하지 않는 사람을 무례하다고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시대 감각에 맞지 않아 이런 문화는 조금씩 사라지기도 하지만 중국 영화를 보면 사람들의 몸짓에 그 흔적이 남아 있음을 느낀다.
낯선 사람이 집에 찾아오면 예의상 담배를 내놓는다. 중국인은 담뱃갑이 비어 있다는 것을 알고도 그것을 열어 권한다. 손님 역시 예의를 차리느라 있지도 않은 담배를 집어 코에 갖다 대고, 심지어는 재채기하는 시늉까지 한다! 예의와 의례에 대한 숭배, 물질적인 뭔가를 주는 행위가 뭔가를 주고자 하는 마음만큼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는 확신. 그것은 마음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우회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그리고 그것은 가볍고 섬세한 접촉과 비밀스러움, 그리고 마음과 손의 억제된 규율을 통해 표현된다......
카잔차키스, <천상의 두 나라>, 정영문 옮김, 예담, 85~86
영화 <패왕별희>는 경극 배우의 섬세한 몸짓, 손짓을 잘 보여준다. 장국영의 연기도 훌륭했지만, 기본적으로 중국 경극 배우들이 갖추어야 할 정교한 몸짓과 손짓의 수준을 영화만으로도 짐작하게 한다. 카잔차키스의 텍스트를 읽어보니 배우들만의 과장된 몸짓 이전에 중국 사람들의 삶의 양식 또한 그에 가까웠을 것 같다
태극 모양을 형상화한 큰 알루미늄 냄비가 인상적이었던 화과,
음양의 철학이 음식에도 반영되어 있는 듯했다.
여러 가지 재료를 푸짐하게 쌓아두고, 끓는 육수에 담가서 느긋하게 먹는다.
주문을 도와주는 분들에게서 매번 생기 있는 발랄함, 그리고 꾸미지 않은 친절함을 느꼈다.
여행은 내가 살고 있지 않은 지역의 의, 식, 주와 관련되는 많은 문화를 스치듯 경험하는 시간들,
그 지역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그 한가운데에 자리 잡게 되는듯하다.
사람들이 한 지역에서 누대에 걸쳐 살아온 흔적을 바라보고 차이와 공감을 느껴보는 것이니까.
마음을 끄는 인상이나 풍경 혹은 사물과 조우하면 그 경험이 내면화되어
그 기쁨은 순간을 넘어 이후 내내 지속된다.
중국의 전통적인 문화와 예술, 사람들이 연출하는 풍광들을 무심히 바라보다가
한국에서 떠나와 있고, 이 곳이 낯선 중국이라는 사실을 문득 환기하게 되는 몇몇 순간들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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