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색창연 기요미즈데라
경주에 기림사가 있다.
절이 이렇게 멋있을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을 처음 갖게 해 준 곳이다.
그때 안내를 맡으셨던 택시 기사님이
신라의 왕이 동해 행차시에 들르는 곳이라고 말씀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왕의 행차에는 대규모 수행 인원이 같이 움직였을 것,
기림사는 그만큼 크고 넓다.
단청이 칠해져 있지 않아서 천 년을 견뎌온 나무결이 그대로 보였고
기품있는 절 입구의 대나무 숲도 운치를 더했다.
주홍색의 건축물이 주는 첫인상이 가벼운 충격을 주었던 청수사(清水寺 기요미즈테라),
조금 더 걸어가니 기림사에서 보았듯 색을 거의 입히지 않은 목조 건축물들이
그 웅장한 풍모를 드러냈다.
기모노를 입은 분들도 꽤 있다.
현판의 절도 있는 글씨체가 엄격한 수행의 의지를 담은 것 같아 보인다.
돌기둥에 새겨져 있는 '낙양',
중국 지명에서 따온듯하여 찾아보니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예로부터 교토는 중국 고대 왕조의 수도였던 뤄양(洛陽)에 빗대어 교라쿠(京洛), 라쿠츄(洛中), 라쿠요(洛陽)라고 하였다. 헤이안쿄의 동서를 나누어 서측 우경(右京)을 장안(長安), 동측 좌경(左京)을 낙양이라고 불렀다. 우경인 장안은 습지대가 많아서 시가지는 좌경인 낙양에 형성되었고 때문에 교토를 낙양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위키백과 교토 교토와 명칭 부분 )
거대한 대륙 중국을 향한 일본의 동경이
교토의 지명에도 그 흔적이 남아있는 듯하다.
혹은 이런 도시계획의 틀을 그 당시에는 관습처럼 공유했을지도.
문을 천정으로 걷어 올리는 것은
한국 소쇄원 등 한옥에서도 많이 본 모습.
조심스런 몸짓의 아이
어려서부터 지진대피 훈련과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교육을 받으면서
일본의 전통과 현대적 문화를 모두 흡수하며 자라는 일본의 아이들
왠지 더 조심스러워 보인다.
남녀노소
많은 사람들이 신년 소망을 기원하기 위해 찾는다.
먼발치서 보았던 인상적인 아이
다시 마주쳤다.
이런 장식에서 일본을 본다.
기요미즈테라의 유명한 장관만큼이나
나는 이런 창틀의 세부에도 매료되었다.
기요미즈데라의 많은 목조 건물이 못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테두리의 장식은 접합 부분을 단단이 고정시켜주는 역할도 잘 수행해낼 것 같다.
장식과 기능의 탁월한 조화.
게시판으로 보이는데 그 다리도 모양을 냈다.
색을 드러나게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절제된 가운데서도 스타일을 살리고 있다.
일본의 미의식.
한국의 산사나 한옥의 창틀과는 달리
더 절도가 느껴진다.
'절도의 미'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
구성의 아름다움이 대단하다.
현대 추상화를 보는 듯한 창문.
문득, 김환기 화백의 그림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가 떠오른다.
태양 빛과 음영,
카메라 필름의 색,
출력 잉크의 색,
인화지(이 사진들은 모두 필름, 현상, 인화를 거친 아날로그 사진이다)의 색감을 고려해도
자연스럽게 부분 부분 바래기도 한 색이 멋있다.
많은 사람들, 그만큼 많은 소망들...
청수사(清水寺).
맑은 물이 있는 사원.
산에서 내려온 그 맑은 물은
세 개의 물길로 흘러내려 연못으로 떨어져 내린다.
각 물줄기는 삶의 좋은 측면들을 상징한다고 하는데
재미있는 것은 일설에 세 개를 다 받아마시는 것은 좋지 않다고.
자신이 현재 가진 것에 만족하고
삶의 다양한 측면을 보라는 메세지로 들린다.
경주 기림사의 웅장함을 떠올리게 해주었던 교토의 청수사를 떠나
은각사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