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료칸
아침.
날이 밝았다.
창호지 문을 열고 보니
소복하게 쌓여 있는 눈.
1층 료칸을 선택하면
이렇게 정원으로 걸어나갈 수 있다.
쪽마루에 마련되어 있는 방석에 앉아
가만히 정원을 감상할 수도 있다.
알루미늄 강철 샷시가 아닌
나무와 돌.
저녁 온천이
하룻 동안 쌓인 피로를 시간을 충분히 두고 느긋하게 풀어내어
한껏 이완하는 것이라면
아침 온천은
세수하듯 말갛게 정신을 상쾌하게 한다.
방 왼쪽에 달린 작은 공간.
나무로 만든 작은 욕조에 앉으면
눈쌓인 정원의 나무와 하늘이 보인다.
작은 창을 열고
작은 나무 욕조에 물을 받고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면
창 밖의 풍경과 시원한 공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달다.
창호지에 드리운
아침 햇살.
복도의 냉기를 데워주고 있는 난로.
방을 나와
2층 식당으로.
조반.
말린 생선 한 두 개와 절인 채소.
하얀 쌀 밥과 된장 국.
밥이 예술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이름난 초밥집에서는
10년간 밥만 하고 나서야 초밥을 만든다는 얘기가 있던데
밥 하는 것 하나에도 높은 경지를 추구할 수 있겠다 싶었다.
쌀 알 하나 하나가 살아 있는데도 촉촉했다.
참 맛있는 밥이었다.
쌀이 좋아서 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시카와현, 특히 가나자와는 황금 못이라는 뜻인데
쌀이 맛있기로 유명하다고. 그래서 쌀로 만든 지방주도 발달해있다고 했다.
창 밖으로
공중 목욕탕이 보인다.
사람들이 더러 오가는 것이 보이고
오전의 평화롭고 풍요로운 분위기가
창 밖으로 내려다보이는 동네와 료칸 아침 식당을 흐르고 있었다.
고소유. 소유 そうゆ [総湯]는 공중 목욕탕
옛날 소유를 복원한 고소유.
식사를 도와주시는 나이 지긋하신 분이 우리 식사가 끝날 때까지 한 켠에 기다리고 서계시다가
밥을 더 먹고 싶다 싶은 적절한 시점에 밥을 더 갖다 주셨다.
우리를 안 보고 있는 듯한데 필요한 부분을 채워주는 감각.
방해를 하지 않지만 불편한 부분이 없도록.
매너와 서비스도 높은 경지를 추구하는 듯.
식사가 끝나고 바로 옆,
차와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따로 준비된 공간으로 나왔다
우리 식사를 도와주시던 그 분은
인사를 하고는 들어가셨다.
식사도 예법을 가진 하나의 과정으로 인식이 되었다.
여기서는 각자 마시고 싶은 차를 마시면 된다
료칸이면 어김없이 있는 족자와 꽃병을 놓아두는 도코노마( とこのま 床の間 )
이 공간도 예전에는 좌식 다다미였을까.
차를 마시는 곳에는 항상 도코노마나 정원이 있는 것 같다.
차를 마실 때 관조할 수 있는 시각적 대상이 필요한 거구나...
이제 알겠다. 일본의 감각.
일본 커피는 대체로 맛있었다.
물이 좋아선지...
꽃 무늬 유리창을 통해
아래 1층이 보인다.
건물 기둥은 매우 오래된 것이라고.
일본은 목조 가옥이 많아 화재로 소실되고 재건되기를 반복한다.
문이라든가, 기둥이라든가 일부가 남아서 견뎌온 시간을 알려주는데
그런 것이 각 건물의 자부심이 되는 것 같다.
금각사 경우는 전소되어 명성에 비해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높지는 않다고 하는 것을 보면
오래 지켜온 것에 대한 이 사람들의 자부심은 대단한.
아래층으로 내려와 실내를 둘러보았다.
도자기와 기념품을 전시해 둔 것 같은데
이 때에는 관심이 없어서 둘러보지 않았다.
역시 관심이 있어야
풍부한 세계가 열린다.
사람도 거의 없고
료칸 분위기가 가라앉아있어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정원 풍경을
가려도 주고 열어도 주는 블라인드.
좌식 위주의
선적인 분위기.
이 료칸은 선적인 기품이 주된 분위기였는데
요소 하나하나가 그 분위기를 다같이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는
쉽게 모방할 수 없다.
정원을 바라보면서 차를 마실 수 있는
둥근 좌식 테이블에 방석.
마루가 옻칠이라도 한 양
반들반들.
조각 작품 종이 등
독특한 스타일 의자.
마음 한 조각,
이 곳, 마루에 두고 왔다.
이 료칸은
이후 주인이 바뀌었다.
이때에도 식당은 따로 분리되어 있는 등 현대적인 감각을 수용하는 듯했는데 일본의 큰 호텔 체인에 인수되었고 몇 차례 개축되어 재오픈한지 한 달 정도 된 것 같다. 구글에도 개축되고 있는 모습이 스트리트 뷰에 잡혀있다. 그때 요리와 식사 진행을 도와주신던 나이 지긋하신 분도 이후 볼 수가 없었다고 전해 들었다.
그 전에 가서 묵을 수 있어 운이 좋았다고 생각되는데
한편으로는 이런 일들은 전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 중 하나이다.
잘 보존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가치가 있는 것이
나에게는 지금은 바뀌어 버린,
바뀌기 전의 저 료칸이 가장 멋진 료칸으로 마음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몇 몇 사람에게라도 일본의 어떤 정수에 해당하는 것을 심어주었기 때문이고 그것은 지속력이 있다.
나를 포함해서 그 수가 적지는 않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