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 중첩된, 야마시로의 료칸 II 저녁

금각사와 같은 화사한 분위기의 료칸

by 해달 haedal


한 나절 캔 버스 관광을 마치고

오전에 체크아웃을 한 료칸에 들러 맡겨둔 짐을 찾아서는

몇 걸음 근처에 있는 두 번째 료칸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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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묵은 료칸은

밖에서 보는 수수한 인상과 달리 고급스럽다.


이 료칸은 조금 넉넉하게 책정한 예산 내에서 K가 고심해서 고른

료칸 후보 둘 가운데 하나.


둘 중 어느 곳을 갈까 고민을 했던 것이,

전날 갔던 료칸 I은 기품 있어 보였고

오늘 온 료칸 II는 고급스러워 보여

두 곳 다 좋은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한 곳에서 숙박할 때의 장점을 경험했기에 한 곳으로 정하려고 하다 보니

둘 다 좋아 보여 선택이 어려웠다.


그때는 인터넷 예약이 안 되던 때.

일본어로 전화 예약을 도와주기로 했던 K의 후배가

하루 씩 숙박을 하면 어떠냐고 조언을 해 주었다.


고민은 해소되었고

야마시로 여행의 초점은 관광에 있지 않고 좋은 료칸에 묵는 것이었기에

신비 전략을 구사하는 료칸 I을 첫날 숙소로,

좀 더 고급스러워 보이는 료칸 II를 두 번째 숙소로 정했다.


그리고 그 결정은

그때도 참 잘한 일이라고 여겨졌지만

한국에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면서 중첩된 우연을 발견했을 때,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러 일본 문화 전반에 관심을 가지게 된 지금 다시 돌이켜 볼 때

더 좋아 보이는 결정이었다.



료칸에 들어가면

수수한 외관과 달리 은은하고 화사한 분위기가 펼쳐진다.



기모노를 곱게 차려입은 직원이 달려나와

무릎을 꿇고 인사하면서 정중하게 맞이해주었다.


황송해서 나도 같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휴... 무릎까지 꿇다니...


고구려 삼족오 같은 그림이 시선을 끄는데

요리가이자 예술가 로산진이 그린 그림일 듯하다.




오른쪽에 병풍 등... 로산진의 예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때는 몰랐고, 지금 사진을 보니 보인다.


전날 료칸은 1층에 묵었다.

1층은 정원으로 바로 걸어 나갈 수 있어 값 차이가 많이 났다.


이유를 처음엔 몰랐는데 아침에 해가 뜨자

1층이 얼마나 좋은지,

정원에 소복이 쌓여있는 눈을 바로 눈 앞에 보면서 실감했다.


이 료칸에서는 2층에 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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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 작은 좌식 서재가 있다.


테라스로 나가면 뒤 쪽 숲의 맑은 공기를 호흡할 수 있고

새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깰 수 있다.


최대한 쇠나 콘크리트 등을 배제하고

되도록 나무나 짚 등의 자연 소재로 실내를 마감해서 더 아늑하게 느껴졌다.



도코노마.

바닥의 단만 높여놓은 개방형 도코노마.


깨끗한 천으로 덮어놓은 차도구.

이렇게 덮어놓은 곳은 처음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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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와 찻잔.

보온병의 따뜻한 물은 항상 준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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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등의 문양이 벽에 무늬를 만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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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바구니 하나도 아무거나 갖다 놓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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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와 그릇의 조화에 무척 신경을 쓴 것 같다.

요리가이자 도예가 로산진의 철학이었다고.


구운 생선 한 조각과 놓인 그릇이 특히 그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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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눈이 가던 이 접시와 절인 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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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가 유명한 지역이라...


미니멀한 실내 장식에

가이세키 요리 그릇은 하나의 색으로 통일하지 않고

여러 가지 색과 형태 무늬의 그릇을 써서 변화를 준다.


복잡함은 단순함이 바탕이 되어야 어지럽지 않다.


턱이 없는 쟁반.

도코노마와 일체감이 있다.

아트 디렉터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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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맛있는 밥.

해외여행에서 일본 음식이 편안한 건 한국과 가장 유사한 밥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시간이 꽤 걸리는 저녁을 먹고,

쉬었다가 온천.



구석 구석 놓여있는

귀엽고 아름다운 등이 발밑을 밝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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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데군데 쉴 수 있는 다다미 벤치가 있고


가공을 거의 하지 않은 듯한 나무 장식장 위에는

저녁이면 미니 캔 맥주 같은 가벼운 알코올 음료나 시원한 생수가 놓여있었다.

온천 전이나 후에 갈증을 풀어주려는 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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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에는

같은 그 자리에 맥주가 사라지고 우유가 놓여있었다.


이 모든 것이 사람이 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일어난다.

마법, 생활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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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늦어서인지 아무도 없다.

평소에도 많은 인원을 수용하는 규모는 아닌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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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풍기와 등을 빼고는 모든 것이 나무. 짚. 종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동글동글 예쁘게 말려있는 수건부터

무엇 하나 허투루 되어 있는 게 없었다.


관리가 쉽지 않을 텐데...

이런 감각과 정성과 노고에는 그에 상응하는 값을 치르는 게 맞다.




야마시로 여행을 다녀와서 사진을 정리할 때까지

두 번째 묵은 이 료칸이

그 전 해에 캔버스를 타고 가면서 잠시 정차했을 때 사진 찍은 곳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 -> 야마나까 여행 다음날 오전, 캔 버스를 타고 )


가가 온천향 캔 버스에는

야마나까와 야마시로를 경유하는 산 코스가 있다.

그 전 해에 야마나까에서 야마시로를 지나 나타데라와 유노쿠니모리 등을 갔는데

야마시로를 지날 때 옛날 공중목욕탕인 고소유라는 정거장이 있고

정차하는 사이 혹은 지나가면서 이 료칸의 전통가옥에 소박한 노렌이 마음에 들어

그때 아마 사진을 찍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 코스에는

일본을 대표하는 채색 도자기 쿠타니야키의 미술관도 있고

발상지인 계곡에 고쿠타니 가마터도 있고

한때 사라졌다가 그 이후 부흥하여 야마시로로 옮긴 재흥 쿠타니야키 가마터도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지역 온천향에 머물면서 료칸 문화에 일조한 로산진의 거처가 있다는 것을 몰랐다.


로산진은

일본의 유명한 만화 맛의 달인의 모델이라고 하는데

서예가이자 도예가, 요리가로 자유롭게 자신만의 취향을 추구한 인물.


그리고 그 로산진이 상호를 써 준 것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료칸이 있다는 것

이 모든 것을 전혀 알지 못한 채, 그 료칸을 사진에 담고, 그 이듬해에는 우연히 묵었다는 것을

글과 사진을 올리면서 알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을 알았다면

이 료칸에 묵으면서 로산진을 생각해보고 전시해 둔 이 료칸 내 작품들을 관람하고

캔 버스를 타고 가면서 로산진 거처에 내려 둘러봤을 것이다.


이 지역을 방문하게 될 사람들을 위해 기록해두는 것도 의미 있고

언젠가 나 역시 다시 이 지역을 방문하게 될 수도 있는 일.


그때는 꼭 쿠타니야키 가마터와 미술관, 로산진 거처 등을 둘러보고

여러 가지 공예 체험도 해 보고 싶다.


그리고 첫날 묵은 료칸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한 번 가보고 싶기는 한데

다른 비용을 아껴 큰 맘먹고 정한, 두 곳 다 가격이 만만치 않은 곳이라 쉽지는 않을 듯하다.


좋은 경험을 제대로 한 번 해보는 것이

풍요로운 세계의 문을 여는 길이라는 생각.

갈수록 더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