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프랑스 조계지 쥐루루(巨鹿路) 아이선화위엔(爱神花园)
거록로(쥐루루 巨鹿路)를 산책하던 중
한 건물의 아치형 입구가 눈에 들어왔다.
기웃거리며 사진을 찍고 있는데
때마침 안으로 들어가려던 한 분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 왔다.
잠깐의 대화,
그 분이 흔쾌히 안으로 들어가서 구경하라고 하셨다.
정원 입구, 넝쿨 아래 놓여있던 곡선의 석조 벤치도 멋스러웠다.
건물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그 분.
고대 그리스 조각을 모방한 조각이나 분수대는 조악한 경우가 많다. 키치.
그런데 이 조각은 보기 드물게 우아함과 높은 완성도를 갖추고 있었다.
또 본관 기둥, 천정과 기둥 접합 부분 양쪽 귀가 안으로 말려들어간 형태.
그리스 고대 건축 양식 중 이오니아식 기둥을 조악하지 않게 잘 구현해내고 있었다.
작은 것이 많은 것을 말해 줄 때가 있는데
바로 이 건물이 그랬다.
외관에서 이미 우아함과 높은 완성도, 건물에 흐른 시간이 느껴진다.
외벽에 작은 벽돌 패턴이 있지만 과하지 않다.
현관 입구 흰 천정과 검은색 철제 프레임과 흰 색 등 샹들리에
가는 넝쿨 식물의 조화도 훌륭하다.
그런데,
이 정원과 현관의 우아함은
시작에 불과했다.
현관 문을 열고 들어서니
이렇게도 우아한 나선형 계단이라니.
화려하고 섬세한 보석을 보는 듯한 샹들리에.
창문과 난간도 예사롭지 않다.
부분 스태인드글라스와 색유리.
노란 빛은 조명 때문일 듯. 흰 색 벽일 것 같다.
검은색 철제 난간과 흰 색 벽. 입구의 천정과 같다.
넝쿨 잎처럼 유기적이고 우아한 곡선의 장식.
아르데코 스타일 아닌가 싶다.
난간에 영문 이니셜 -
이 건물은 리우지성(刘吉生)이 아내에게 선물한 것으로
이에 아내는 남편 이름의 영문 이니셜을 계단 난간에 새겼다고 한다.
그리고 정원의 조각상은 그리이스 신화에 등장하는 프쉬케와 큐피드를 형상화 한 것으로
부부의 사랑에 감동한 이 건물의 설계자가 이탈리아에서 조각가를 초빙하여 만들어 선물한 것이라고.
가구도 천정도 계단도 창도... 일관된 스타일을 구현하고 있고
샹들리에가 시작되는 천정 부분도 샹들리에의 형태와 조화를 이룬다.
이런 디테일, 정말 좋다.
네 모퉁이에서 중앙의 샹들리에를 향해 점점이 그려진 저 원을 도안한 감각.
현관의 검은색 철제 프레임과 흰색 등의 배합이 계속 반복되면서 변주되고 있다.
훌륭하다. 예술의 경지에 이르런 장식.
이런 공간에 살면 우아함이 절로 몸에 밸 듯.
조금 다른 분위기. 부분 스태인드 글라스, 이번엔 포도 넝쿨.
창의 형태와 가구의 형태, 스타일을 조화시켰다.
집 전체가 절제되면서도 우아한 아름다움으로 가득차있다.
결코 과하지 않은 장식미.
아래쪽 좌우 모퉁이에 겹쳐놓은 초록잎 두 장,
플라타너스 잎일까.
책에서 보던 아르데코 스타일로 보이는 조형미를 눈 앞에서. 유럽에 가지 않고도.
아니 중국, 상하이의 분위기와 융합된 아르데코인지도 모른다.
유럽에서라면 이런 스타일이 구현되지 않았을지도.
건축을 완성하는 건 조명이다 라고 말하고 싶어질 정도로
샹델리에에 공을 들였다. 등이 달려있는 천정면의 마감조차도 아름다운 도안으로.
애플을 향한 전세계적인 애정에는 디테일에까지 깃든 스타일이 큰 역할을 한다.
하루아침에 되는 감각은 아닐텐데, 이 건물에서 나는 그런 감각을 본다.
호텔 등에서 모방하고 있는 유럽 근대식 실내 인테리어.
높은 수준으로 구현이 된다면 이런 형태가 되겠구나...
얼마나 아름다운 건축인지, 그리고 인테리어인지 사진을 보면서 다시 감탄.
이런 아름다운 집을 선뜻 구경하게 해준 그때 그 분의 호의에 새삼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당시, 지난 해 베이징에서 구입한 중국 전통의상을 모티브로 한 옷을 입고 있었다.
해당 지역의 옷을 입고 있자니 낯선 여행지임에도 그 공간과 문화의 일부인 듯 친숙한 기분이 들어 좋았는데
외국인이 중국 전통 의상 스타일의 옷을 입고,
한 사람은 중국인처럼 중국어를 잘 하고 매너 또한 좋으니 좋은 인상을 준 듯했다.
덕분에 마음에 꼭 들던 아름다운 건물을 둘러보고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이 곳은 1950년대 이후로 상하이시 작가 협회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예술에 대한 탄압과 파괴가 일어났던 문화혁명 때,
이 건물을 사용하고 있던 작가들이 정원의 프쉬케 조각상을 숨겨놓았다가
10여 년이 지나고서 다시 제자리에 복원했다는 이야기도 이 저택은 정원 한 켠에 품고 있었다.
이 건물의 별칭은 그 프쉬케 조각상에서 유래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