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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생 댁을 찾아서

좋은 식성은 미덕이자 축복

by 해달 haedal


일행 중 한 사람은 공자 성씨를 가졌다.

중국 역사를 연구하고 저술활동도 하기에 종종 중국을 가는 그,

한 번은 기차에서 한 중국분을 알게 되었다고.


리장에 사신다는 그분,

이번 여행에 다 함께 그분 댁을 방문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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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길을 다니다 보면 '복'자를 거꾸로 붙여놓은 걸 종종 볼 수 있는데 거꾸로 붙인다는 행위를 칭하는 한자음이, 복이 온다는 한자음과 같아서라고 동행한 중국 전문가들로부터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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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붙여놓은 곳도 있고.


골목이 많아 길 찾기가 쉽지 않다.

길 찾으며 공동주택으로 사용되고 있는 전통적인 형태의 민가도 둘러보고. 비는 오락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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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팡지에 대로와 수로변을 벗어나니

번화함이 사라진 수수하고 조용한 골목들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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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륜 자전거,

상하이에서도 본 미니 수레. 이제 눈에 익어 정겹다.

일반 자전거보다 짐을 넉넉히 실을 수 있고, 친환경적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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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역 가옥은 짚과 흙을 섞은 벽돌로 만들어

지진에도 비교적 강하다고.


강도 높은 지진에 전 지역이 무너지지 않은 것도

이런 전통적인 가옥 덕분이라고.


중국 하면, 대나무.

큰 정원이나 공원, 사찰 있는 곳이 아닌 거리에도 대나무는 어김없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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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건물도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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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생 댁


마침내 집을 찾았다.


양선생은 밀로 만든 과자 같은 빵에 설탕을 한 가득 차와 함께 대접해주셨다.

중국어를 몰라 대화 내용을 알 길이 없었으나 낯선 사람들도 흔쾌히 손님으로 환대해주시니 고마웠다.


호텔, 식당이 아닌 민가에서 중국 분과의 대화에 참석, 특별한 시간을 보냈다.

양선생께서 우리 일행이 마음에 드셨던지 역시 이 지역에 사는 조카분을 소개해주셨다.


하나의 우연한 인연이 좋은 인연으로 이어진다.

이런 게 꽌시(關係)의 시작 혹은 바탕 아닐까.


이 넓은 대륙, 누가 누군지 알기 어려운 상황.

지금처럼 연락이 잘 되던 때도 아니고...

꽌시는 가까운 가족에서 시작해 좋은 인연으로 직조해가는 사람간의 직물로 이해할 수 있을 듯.



양선생 조카


다음날 저녁.

양선생 조카 분과 연락이 닿아 같이 어울렸다.


와호장룡의 주연 배우 주윤발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던 그 조카 분과 밝고 좋은 인상의 아내. 리장이 큰 지진 이후 복구되면서 유명해지다 보니 밀려드는 관광객으로 현지 사람들의 삶에 바람직하지 않은 영향이 있다는 이야기도 듣게 되었다. 리장의 경제에 관광이 큰 자리를 차지한다는데 어떤 길이 모두에게 좋을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이런 문제. 진지한 모색이 필요하다. 요즘 활발히 제작되고 있는 르포나 다큐를 보면, 지역 공동체 방향으로 마을 단위의 실험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아 열심히 지켜보고 있다.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 것이 참 좋은 거라는 걸 알게 된 계기가 있었다.


당시 나는 밀가루 음식이나 기름진 음식을 잘 소화해내지 못했다. 중국 음식이 낯설 뿐만 아니라 소화도 잘 안되었다. 점심때 한국 음식을 먹으면서 균형을 잡아갔는데 이 날은 유독 속이 아파서 한국 식당에서 편안한 음식으로 속을 편안하게 해야 했다. 양 선생 조카분은 현지인. 당시 낮은 환율 덕에 우리는 큰 부담 없이 중국 여행을 할 수 있었는데 현지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한국식당은 가격에서 큰 부담이 되던 때였다. 한 턱 내고 싶었던 양선생 조카분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중국은 호방한 문화가 있는데 좋은 인연으로 만난 자리에서 그 호방함을 나의 식성으로 펼치지 못한 것이다. 요즘은 중국 음식을 잘 먹게 되었는데 처음부터 식성이 좋아 크게 가리지 않고 잘 먹었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텐데.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든다.

다른 곳엘 가고, 혼자서 먹고 오거나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아마 밤이고 길과 언어도 낯설고 다 같이 인사해야 했던 초면의 긴장도 작용했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 이런저런 경험이 쌓여 좀 더 유연 해지는 것 같다. 덜 예민해져서 음식도 덜 가린다.


좋은 식성은 미덕이자 축복


음식을 크게 가리지 않고 식성이 좋은 건 여러 가지로 축복이다.

그때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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