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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 haedal Mar 27. 2016

해남, 이화에 월백하고

해남엔 동글동글한 산들과 탁 트인 바다가 있다



해남엔

둥글둥글한 산들과




넓          은


들판이 있다.



탁         트인


바다가 있다.




그리고

매화





벚나무는 늠름하고

하지만 올려다봐야 하고



이 꽃나무는  나지막해

바로 곁에서 볼 수 있다.





어지러운 눈발


벚꽃은 눈 같고

매화도 눈 같고





"가지 위에 눈이 쌓여 빛나는가 했더니 / 初疑枝上雪黏華

맑은 향기 풍겨오매 꽃인 줄 알았네 / 爲有淸香認是花"


이 규보




잔가지와 작은 꽃들이 많이 달려있는 꽃나무.  

눈길 주었더니, 다른 꽃잎들을 배경으로 작디작은 꽃잎 몇몇이 아낌없이 자기자랑을 한다.







국어 교과서에 실려있던 시조가 생각난다.


"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

일지춘심을 자귀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양하야 잠못들어 하노라 "

   


해남에서 하얀 매화를 풍성하게 보고나니


월백(月白),

은한(銀漢),

일지춘심(一枝 春心) ...


묵은 시조의 시상이 새롭게, 더 은은하게

마음에 내려 앉는다.






한 시 두 수 인용하며

봄 날, 해남

사진 산문집 연재를 마칩니다.


국어 교과서에서 글자로만 보던

'동문선',  '동국이상국집' ... 등의 문집에 실려있는

고려 후기 문신, 학자, 문인 이규보의 한시인데요,

채보문이라는 문신, 문인의 시를 차운하였습니다.


'차운'... 운을 빌린다는 말인데

어감이 좋아 이 단어를 만날 때마다 반갑네요.


시적, 문학적, 예술적 네트워킹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많이 단순화시켜 태깅의 아취 깃든 버전이랄까요.


한국고전번역원에서는

한문으로 기록되어 있는 글들을 한글로 번역하는 프로젝트를

꾸준히 하고 있는데요, 요즘 사극이 풍성해진 데에는

묵묵히 이 어려운 작업을 하시는 분들의 노고가 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옛날분들은 맥락context를 중시하는 분위기에 익숙했기에 그런 관습에서 쓰여진 글 해석은

시대적 배경, 문맥, 글이 쓰인 상황, 대화 상대 등을 파악해야 하기에 상당히 어렵습니다.


작가들과 함께, 또 독자들과 함께, 

문화 저력을 만들어 가는 분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래 시 번역 중 68년도 번역이 개인적으로 조금 더 마음에 드네요.

그러고 보니 번역을 감상하는 즐거움도 있군요,

나라면 이렇게 했을 텐데하는 마음도 얹어가며... 원문에 기반해서요, 물론.




살아 있다면,

매 년 어김없이 만나는 봄.



우리보다 앞서 살다 가신 분들의 시들을 읽어보며

조금 다른 아취로 재서술하는 봄맞이 하려구요.


전쟁을 미개시하는 요즘과 달리 전쟁도 많았고,

시민의식이 커져가는 요즘과 달리 신분에 얽매여 있었고,

더 춥고, 질병에 무력했고, 더 가난했지만...


밤 하늘에는 별이 더 많았고,

길러오기가 힘들긴 하지만 생수를 사 먹지 않아도 되었고,

새 제품 출시나 봄맞이 세일보다

새싹과 봄 꽃에 기뻐하며 마음 설레며

시를 지어 벗과 나누던 시대에 사시던 분들의 서정과 기백을

봄과 함께 맞이하려구요.


즐봄 하시기를요.




이규보(李奎報)의 이화시(梨花詩)


가지 위에 눈이 쌓여 빛나는가 했더니 / 初疑枝上雪黏華

맑은 향기 풍겨오매 꽃인 줄 알았네 / 爲有淸香認是花

겨울 매화 능멸하듯 구슬 뺨이 깨끗하고 / 鬪却寒梅瓊臉潔

화사한 행화의 붉은 꽃잎 비웃는구나 / 笑他穠杏錦跌奢

푸른 나무에 날아오르니 보기가 수월하고 / 飛來易見穿靑樹

흰 모래에 떨어지니 분간하기 어렵구나 / 落去難知混白沙

예쁜 여인 비단 소매 걷고 흰 팔 드러내고서 / 皓腕佳人披練袂

방긋방긋 웃는 듯 마음 몹시 녹여주네 / 微微含笑惱情多



동국이상국전집 제10권

옥야현(沃野縣) 객사(客舍)에서 현판 위의 학사(學士) 채보문(蔡寶文)의 이화시(梨花詩)차운하다


한국고전번역원 이상형 () 1980 (원문 링크)




채보문(蔡寶文)의 이화시(梨花詩)


3월의 온갖 꽃이 다 지려 하는데 / 三月芳菲看欲暮

담 옆의 배나무는 비로소 꽃을 여네 / 墻東梨樹始開花

싸늘한 것이 싱겁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 人言冷艶淸無味

꽃다운 마음 소탈함을 나는 못내 사랑하네 / 我愛芳心静不奢

원에 가득 향긋한 바람은 발을 스쳐 오고 / 滿院香風動簾額

가지를 누른 흰 눈은 사창에 흩날리네 / 壓枝殘雪拂窓紗

세상의 분홍 자주는 내 짝이 아니로세 / 世間紅紫非吾偶

네 앞엔 내 흰머리도 과히 숭없지 않아라 / 對此誰嫌白髮多


동문선 제13권

고산현 공관의 배꽃[高山縣公館梨花]


한국고전번역원 신호열 () 1968 (원문 링크)



이규보

채보문





https://youtu.be/3JPylwNDF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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