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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 haedal Oct 18. 2016

호텔 코튼 가운과 목욕용품

지난 여름, 깜박 잊고 두고 온 호텔 미니 비누를 생각하며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6성급 호텔이 생겼다. 두바이에는 7성급 호텔도 있다만서두 4성급 호텔만 되어도 상당히 깨끗하고 괜찮데 5성급을 넘어 무려 6성급이라니... 그 호텔을 예약하려고 할 때 '어메니티'라는 어휘가 보였다. amanity는 검색해보니 편의시설, 편의물품 등을 지칭한다고. 크게는 잔디가 깔린 넓은 산책로나 수영장, 콘퍼런스 홀, 레스토랑 등... 에서 작게는 욕실에 배치된 세안용품 등 범위가 넓었다. 관습적으로는 후자를 주로 지칭하는 것 같다. 6성급 호텔에서는 자신들이 어메니티에까지 고급스러움을 추구하고 있음을 예약 시 옵션 선택에서 드러내고자 했다. 덕분에 이 어휘를 처음 알게 되었다.


몇 년 전 여름에도, 국내든 해외든 여름휴가를 여유 있게 갈 시간적 여유가 (나 말고 동반자가) 나지 않아 간혹 그랬듯이 시내 호텔로 휴가를 갔다. 국내의 멋진 호텔은 평소 가기엔 부담이 되지만 여름휴가를 위해서라면 먼 거리 왕복의 피로와 비용을 고려할 때 훌륭한 대안이 된다. 산책로가 나 있는 숲 근처이거나 한강 조망이 시원하다거나 이 정도만으로도 괜찮지만 수영장과 음식점, 시원한 객실과 라운지, 곳곳에 놓여있거나 걸려있는 예술작품, 객실 포함 곳곳의 공간 디자인, 객실 내 요모조모, 매너 좋은 스텝들의 미소와 응대 등이 여름 무더위를 잠시나마 잊게 해주어 재충전을 가능하게 해준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6성급 호텔의 어메니티는 내겐 향이 너무 강해서 그 화려한 색상의 용기에 비해 만족도가 많이 떨어졌다. 비누 위주의 내 생활 스타일 변화도 작용했지만 이후로 나는 어메니티라 불리는 이 일회용 목욕용품들에 관심을 잃었고 사용하지도 챙겨 오지도 않게 되었다. 하지만 호텔은 내겐 여전히 여유가 된다면 휴가때 시내이든 시외이든 국내든 국외든 가고 싶은 정갈하고 쾌적하며 멋진 공간이다. 


객실


호텔 객실은 쾌적함을 지상 최대의 목표로 삼은 듯 모든 것이 객의 편의를 위해 준비되어 있고 질서 있게 배치되어 있다. 손님들은 하루를 묵고 갈 때도 있어 우아한 일회용품들이 알맞은 자리에 정갈하게 놓여있다. 키를 받아 객실 문을 열고 들어가 가방을 내려놓고 외투를 걸기 위해 옷장 앞에 서면 본격적으로 객실 탐사가 시작된다.


옷장


옷장을 열면 툭툭한 상당한 두께의 하얀 면 타월 가운이 반들반들 표면을 다듬은 질 좋은 목재 옷걸이에 다소곳이 걸려있다. 아래로는 간이 다림판이 있기도 하고 옷걸이만큼이나 고급스러운 원목 옷솔과 구두의 먼지를 털어낼 부직포, 세탁물 주머니 등이 또한 가지런히 놓여있다. 비즈니스 출장도 아니고, 세탁물을 맡길 일이 거의 없었지만 옷을 간편하게 한 벌 정도의 여벌만 가져갈 경우 이용해도 좋겠다 싶은 마음이 들지만 여간해선 그럴 일이 생기지 않았다. 여행 자체가 짧으니까 대체로. 옷장은 밀어서 열면 안에 전구가 달려있어 켜졌다가 닫으면 꺼진다, 냉장고처럼.




호텔 코튼 가운


현대판 신데렐라 스토리의 재서술 영화 <프리티 우먼 Prettry Woman>에서 줄리아 로버츠는 그 큰 키에 그 큰 미소로 호텔 코튼 가운을 입고 객실에서 아침을 먹는다. 그 어떤 의상 못지 않게 멋져 보인다. 


호텔 코튼 가운은 참으로 근사하지만, 내겐 다소 거친 촉감이고 많이 크다. 일본 도쿄의 작은 호텔 옷장에 걸려있던 가볍고 얇은 면 가운이 오히려 더 좋았다. 호텔 문화 자체가 서양에서 온 것이니 호텔의 공간과 편의시설, 물품 등은 (요즘은 한국인들도 체격이 크지만) 서구인의 체형과 생활문화에 맞춘 것 같다. 목욕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 가운을 입는 건 촉감이 좋지 않고 샤워나 목욕 후 착용하기엔 호텔의 질 좋고 큼직한 수건으로도 충분해서 나로선 쓸 일이 없다. 


하여, 옷장 안 멋진 코튼 가운은 손대지 않고 얌전히 처음 그 모습 그대로 둔다. 그럼 이 가운이 잘 쓰일 수 있는 사람에게 잘 쓰일 수 있을 것이므로.



호텔 스텝들의 야무진 손매로 단정하게 걸려 있던 이 가운. 호텔을 찾을 때마다 또 볼 수 있겠지.

가운(gown, robe)을 소재로 회화 작업을 하는 짐 다인이라는 예술가의 작품이 생각난다. 



호텔 어메니티


물론 호텔 객실료엔 이런 물품을 준비한 것에 대한 비용이 청구되어 있다. 이 물건을 사용하지 않으면 손해일까? 아니, 전혀 그렇지 않다. 내가 이 물건들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세제가 덜 들고, 물 사용이 조금이라도 줄고, 전기도 줄 것이다. 



내가 이 세련되고도 심플한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샴푸, 린스, 바디샤워, 바디로션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한번 쓰고 버려질 물건이 줄고 물이 덜 오염되고, 그 물을 정화하기 위한 상하수도 처리 비용이 줄어든다. 그 물은 내가 집에서 사용할 수돗물이다. 발전소 가동 중단하게 할 수 있고, 물 정화를 위한 비용을 줄일 수 있다. 그러니 손해가 아니다. 계속 사용하지 않으면, 그런 사람이 다수가 되면, 앞으로는 사용하는 사람에게 비용이 청구되는 것으로 바뀔 것이다. 그러니 장기적으로 보면 이익이다. 




호텔 수건은 툭툭하니 두꺼워서 몇 개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래서 타월도 최소로만 사용하고 나머지는 아름답게 개어 있는 그 상태 그대로 감상하고 둔다. 필요한 다음 사람이 쓰기를 바라면서. 정리를 잘 못하면서 잘 정돈된 것을 좋아하는 내겐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 가지런히 놓인 저 용품들 - 하얀 캔버스 위에 놓인 현대 추상 미술 혹은 설치 미술 같아 보일 때가 있다. 내겐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내가 가져간 친환경 제품을 사용하거나 저 중에 일부 혹은 비누만 있으면 되니까. 


지난여름, 수도권의 한 호텔에서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두고 온 호텔 코튼 가운 두 벌과 목욕용품, 꼭 필요한 다른 사람을 위해 잘 쓰였기를. 아 그러고 보니 호텔 미니 비누를 사용하고는 깜박 잊고 가져오지 않았다. 다음엔 꼭 가져와서 마저 써야지. 이 호텔의 비누는 정 사각으로 크기도 제법 컸는데 그냥 버려지지 않았기를 바랄 뿐.


이런 일회용품은 사용하지 않지만, 전기 주전자에 제공된 생수를 부은 후 플러그를 연결하고 끓여 곱게 놓여져 있는 차는 꼭 마신다. 차의 포장 디자인도 감상하면서...  너무 더워서 버티다 버티다 결국 소비전력1등급 에어컨을 사고 말았던 여름이 가벼운 여운을 남기고 물러갔다. ( 소비전력1등급 전자제품은 환급금을 주어서 10%에 해당하는 금액을 벌은 셈이다. 게다가 전기료가 이후 내내 지속적으로 적게 나오니 또 벌은 셈이다. )



그리고 이제, 가을이 왔다. 

차를 마시기에, 커피를 마시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이 왔다.


맹렬하게 싹을 튀우고

화사화게 꽃을 피우고 

왕성하게 열매 맺기보다


단풍들고 낙엽지고 눈 내리며

수확 후엔 안으로 안으로 

침잠하고 몸을 줄여갈


커피 향에 글도 절로 써질 것 같은 가을이 

깊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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