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제품 포장
우유갑 vs 우유곽
'곽'은 물건을 담는 작은 상자에 쓰이는데, 표준어는 '갑'이라고 국립국어원에서 풀이하고 있다. 이를테면 담뱃갑은 담뱃곽이라고 하기보다 '담뱃갑'을 더 많이 쓰는 걸 보니 형태가 영향을 미치나보다.
예전에 S대 교정에서는 여기저기 삼삼오오 청춘들이 모여 우유곽(이때는 '곽'이 조금 더 어울리려나)의 모서리를 둥글게 한 다음, 제기나 공인 양 우유곽 차기를 하곤 했다. 요즘은 거의 보기 힘든 풍경. 이렇듯, 우유갑은 제기차기의 대안이 되기도 하고, 재활용되어 화장지로도 재탄생되기도 해서, 동물복지 낙농이라면 더 좋고, 큰 마음의 부담 없이 사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유목민처럼 동물의 젖에 크게 의존해야 하는 생활이 아닌데 굳이 우유를 그렇게 많이 먹을 필요가 있을까 싶다. 어쩌다 차가운 우유의 신선한 맛이 강렬하게 떠오를 때가 있다. 혹은 좋아하는 팥빙수를 집에서 만들어 먹을 때도 있다. 그때만 우유갑에 든 우유를 가끔 사 먹곤 한다.
우유갑처럼 종이에 든 걸 찾지 못해서 요구르트는 키위 소스를 만들 때를 제외하고는(플라스틱 일기 Day 9 키위 편) 거의 사 먹지 않고 있다. 가끔 요구르트 아줌마들이 신문물 요구르트 배송차량을 타고 지나가시면, 혹 그때 갈증이라도 나면, 사 먹을까 하다가도 나와 있을 때는 더더욱 깔끔한 처리가 안 되는 요구르트 용기를 어쩔 건가 싶어 관두게 된다. 떠먹는 요구르트는 플라스틱 숟가락까지 필요해서 더더욱 놉! 정 갈증이 나면, 유리병에 든 것을 사 마시거나, 투명 팩에 든 생수를 사 마시는 등, 요구르트처럼 되도록 플라스틱 용기에 든 것은 피하려고 한다.
예전에 생각 없이 플라스틱에 든 대용량 우유를 사거나, 외국에서 난리가 났다는 한국의 통통한 바나나 우유를 많이 사 먹기도 했다. 바나나 우유가 노란 건, 바나나 껍질의 노란색 이미지를 차용한 거라고. 아차 싶었고 웃음이 나왔다. 이렇듯 나는, 우리는 이미지에 넋을 빼앗기곤 한다. 외모보다 내면인데. 참, 과학의 발달과 함께 요즘은 과일 야채 껍질도 주목을 많이 받고 있어, 껍데기는 가라(물론 메타포이지만)라고 무시할 수 없는 것이 껍질이긴 하다.
'친절하게' 빨대가 부착되어 있는 팩에 든 우유나 음료도 많이 사 먹었다. 아... 내가 마셨던 그 많은 음료와 유제품... 빨대와 재활용 힘든 복합재질의 팩, 다 어쩔...ㅠㅠ
분리배출과 자원 순환이 잘 이루어지는 외국에서는, 생수 병과 같은 투명 페트병, 우유갑 등은 따로 배출한다고 한다. 우리 아파트에는 플라스틱과 생수 병을 분리하지 않아서 생수병을 모아서 양이 많아지면 따로 내놓는다. 우유갑 또한 종이와 분리 배출하지 않아서, 양이 조금 모이면 가까운 한살림 매장에 가져다준다. 여의도 이마트 매장에 갈 일이 생길 때, 차곡차곡 펴서 씻어서 말려둔 우유갑을 지척에 있는 여의도 한살림 매장에 가져다주고 휴지를 받아온다. 물물교환.
한살림은 그렇게 조합원이 가져다준 우유갑을 우유갑으로 재생 화장지를 만드는 업체에 넘긴다. 한국의 우유갑 회수율이 저조해서, 이 업체는 캐나다 등에서 우유갑을 수입한다고 한다. 한국의 경우, 시민들이 열심히 분리 배출을 해도 재활용되는 비율이 너무 낮아서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그 실망감이란... 이런 와중에 내가 아는 한, 확실히 재활용이 되는 것은 내가 펴서, 씻어서, 말려서 모아 한살림 매장에 가져다주는 우유갑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폭증하는 일회용 플라스틱이 제대로 재활용되지 않고 산처럼 쌓여 있다고 한다.
#플라스틱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