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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 haedal Jan 25. 2021

Day8 자리이타의 마음

& The Origin and Benefit of Donation

자리이타(自利利他)라는 말을 좋아한다. 


어려서 성당에 다녔던 내가 불교를 접하며 알게 된 말이다.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겠지만 너에게 이로운 것이 나에게도 이롭다.로 이해하고 있다. 나에게도 너에게도 이롭게. 마음에 큰 부담이 되지 않아 그리 이타적인 타입은 아닌 나의 마음에 꼭 드는 말이다. 개인적이면서도 공적인 함의도 있어 또한 마음에 든다.


한국인의 대부분은 이 말과 무의식적으로 친근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예를 들어 마스크 착용. 한 기관에서 한국인에게 마스크 착용에 대해 여론조사를 했더니, 많은 사람들이 내가 감염되는 것을 막는 것도 있지만 내가 다른 사람을 감염시킬까 봐 마스크를 꼭 착용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자발성에 근거한 참여이다. 


서구권에서 개인의 자유를 앞세워 공동체에 위험을 초래하는 배타성을 드러냈다면, 한국은 언뜻 보면 집단주의적 문화로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개인의 자발성에 기초한 공동체를 위한 마음, 그것이 실체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며칠 전 시청했던 이와 관련한 한 유튜버의 분석도 매우 공감이 갔다. 


한국인의 마스크 착용이 대표적인 자리이타의 실천 사례라고 생각한다. 금 모으기 운동, 유조선 기름 유출로 인한 해안 오염 제거 자원봉사, 도로 한가운데서 넘어진 운반 트럭 물건 주섬주섬 같이 치워주기, 사고차량에서 운전가 구해내기, 차바퀴에 낀 사람 차 들어서 꺼내기 등... 그 사례는 셀 수도 없을 정도이다. 


인터넷과 SNS, 결정적으로 유튜브가 생활에 밀착되기 전에는 우리나라에서 유독 이런 자발적 선의가 많이 베풀어진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로 집콕이 길어지며 온라인으로 콘텐츠와 소식이 많이 소비되면서 이런 차이가 서서히 드러나게 된 것 같다. 


미국 등에서 후원은 보편적인 것 같아 보였다. 이는 후원이 장려되는 제도적, 종교적, 문화적 배경이 작용했을 것이다. 이를테면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아내와 함께 엄청난 재산을 털어 자선단체를 세웠다. 미국의 세금 제도를 배경으로 두면 그것은 매우 스마트한 기획이라고 한다. 그곳에 살아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지만 이런 사회제도적 배경이 후원을 문화로 만들어 자연스럽게 시민들의 생활에 스며들었을 것같다. 


한국의 경우 자발적 봉사활동은 특히 적극적으로 포교하는 교회 등을 통해 많이 일어나지만 기금 후원은 그렇게 일상화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자발적 행동으로 다른 이를 돕고 쿨하게 자리를 뜨는 한국인의 심성이 소액 정기 후원과 만날 날도 머지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의 경우 처음 '정기' 후원을 시작한 시민단체는 한국 내셔널트러스트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최순우 옛집 등 보존할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을 시민들이 십시일반 조금씩 돈을 모아 매입해서 관리하며 보존하는 시민단체이다. 


서울은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들기에 개발의 파도를 피해 가기 어렵다. 자본주의 방식에는 자본주의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한국 내셔널트러스트. 최순우의 '나는 우리 것이 아름답다'를 읽고 매료되어 있던 차에, 또 한옥을 좋아하는 터라 최순우 한옥 가옥을 개발로부터 지켜내고자 하는 이들의 뜻에 동참하고 싶었다. 


이후 법륜 스님을 존경하여 법륜 스님께서 마련하시고 불자와 시민들이 함께하는 자원봉사단체, 민생 관련 정책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시민단체, 거대 자본의 영향을 받지 않는 독립언론, 국내외 환경단체 등에 '정말로' 소액을,  매월 정기 후원하고 있다. 한 개인도 수입과 지출 균형을 맞춰가며 하루, 일주일, 한 달, 일 년 등 살아가듯이 이들 시민단체도 예산 계획과 집행을 하므로 소액이어도 정기적으로 후원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코카콜라가 대단한 것은 일국의 대통령도 동네 꼬마도 마시는 그 엄청난 양(휴... 그 많은 플라스틱 병과 뚜껑과 라벨과 운송차량.. 잠깐 플라스틱 삼천포로 빠져버렸네 ) 양에 있다. 그 양으로 인해 전 세계에서 모르는 이가 없다. 코카콜라는 천 원, 이 천 원 수준이지만 그 양이 주는 규모의 경제와 브랜드 파워는 대단하다.


내가 한정된 재정사정에 소액으로 여러 단체에 정기 후원을 하는 것은 여러 가지 함의가 있다. 먼저 그 단체와 해당 이유에 관심을 지속시키기에 좋고, 후원자의 수를 늘려주어 활동가분들에게 응원의 마음을 전할 수 있고, 시민단체는 후원 금액에는 부침이 있더라도 계속 후원자 수가 일정 수준 유지되고 나아가 더 늘어나는 든든함을 가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액을 하면 꾸준히 지속하기 좋다. 부담이 안되기 때문이다. 어쩌다 조금 큰 수입이 생기면 추가 일시 기부를 하면 된다. 오천 원, 만원을 기부하면, 10년도 할 수 있다.


내가 후원하는 금액은 커피 한 잔 값에서 동네 짜장면 한 그릇 가격, 가성비 좋은 집의 스파게티 한 그릇 정도이다. 후원 이후 아쉬운 것은 동네 소상공인이 운영하는 소규모 가게 대신 대기업 인스턴트 상품의 매출에 더 기여한다는 점.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동네 중국집에 가는 대신 농심 짜파게티나 팔도 이연복 셰프 짜장면을 끓여 먹고, 동네 카페에 가는 대신 이마트에 가서 원두커피 홀빈을 사 와서 갈아 내려먹고, 동네 분식집에 가서 라면을 먹는 대신 오뚜기 진라면 매운맛을 끓여먹고, 반찬가게에서 반찬을 사 와 마트에서 사 온 쌀로 밥을 해서 동네 맛있는 밥집을 덜 가는 그런 것이다. 


또한 동네 미용실에 가는 대신 머리를 집에서 자르고, (반곱슬이라) 파마를 하지 않고, 염색도 한살림 친환경 염색약을 사서, 최근에는 유튜브를 보고 천연 재료로 집에서 한다. 


동네 미용실, 동네 밥집, 동네 카페, 동네 분식집, 어쩌다 먹는 스파게티집에 쓸 돈이 시민단체로 향한다. 가게 대신 인스턴트 식을 이용하니 농심, 오뚜기, 팔도, cj 등 대기업에만 매출을 보태주고 있다. ㅠㅠ 코로나로 더 심화되었다. 아이러니.


그러니 나의 소중한 돈을 받고 있는 그 기업이 환경문제에 관심이 있는지, 어떤 행동을 하는지를 유심히 본다. 동네 소상공인에게 갈 물줄기를 대신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쫑긋 귀를 기울여 이런저런 동정을 지켜본다. 정규직 채용을 늘리는 등의 노력을 하는 오뚜기 같은 기업, 하지만 스팸에 노란 플라스틱 뚜껑으로 환경에 부담을 주는 오뚜기. 그런데 라면은 맛있는 오뚜기. 이런 복합성이 한 브랜드에 와글와글 저마다 소리를 내고 있다. 


자신의 생활과 마음에 부담이 되지 않을 정도의 흔쾌한 소액 정기 후원은 그 누구보다 후원자의 마음을 밝게 하고, 나아갈 길을 선명하게 해 준다. '액'수(도 받쳐주면 금상첨화이긴 하겠으나)가 아닌 (더 중요하게는 그리고 서명 시 큰 힘을 발휘하는) 한 명, 두 명의 '명'수로 현대의 히어로들인 활동가분들께 보내는 현대의 주인공들인 시민의 지지와 응원일 것 같다.


이렇게 후원은 '나'에게 좋다. 좀더 규모있게 돈을 쓰고, 혹 어디선가 금전적 손해를 봐도 후원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하다. 사람의 심리란 그렇다고 한다. 얻은 것이 주는 기쁨과 효용은 오래가지 않지만, 잃은 것이 주는 불쾌함은 오래간다고 한다. 그러니 잃은 것에 대한 마음을 잘 추스리는 것이 중요한데 후원을 하면 잃은 것에 대해 쿨한 태도를 갖게 된다. 좀 손해 보고 사는 것이 마음 편하고 좋다는 평소의 생각에 후원은 더 날개를 달아주워 만족스럽다. 


후원은 또 '당신'에게 좋다. 시민단체는 공익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시민단체를 지지하는 것은 나의 공익적 측면을 그분들을 통해 도모하는 것. 그리하여, 후원은 '우리'에게 좋다. 그래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은, 시민단체를 후원해도 성립한다. 


그러니 자리이타, 너를 이롭게 함으로써 나에게도 이롭다. 너도 좋고, 나도 좋고. 너에게도 이득, 나에게도 이득. 에브리바디 해피!


나는 이번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여러 매체 방송 특히 유튜브 등을 통해 지켜보면서 한국인이 특히 자리이타가 무의식에 장착되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평소에는 서로 갈등을 일으키다가도,  때가 되면 어김없이 행동으로 자연스럽게 표출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 중의 한 사람인 것이 매우 기쁘다. 


국난국복이 취미라는 한국. 한국인의 자리이타 심성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고 본다. 자리이타는 너를 이롭게 함으로써 내게 이로움을 가져오는 어마어마한 지혜. 많이 보도되는 갑질은 이런저런 근현대사의 질곡으로 쌓인 강한 사회적 위계로 인한 부작용이 표출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런 점을 개선해나가면 자리이타의 큰 지혜를 내장한 한국인들이기에 우리는 점차 좋은 사회를 만들어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자발성에 기초한, 내가 관심가는 이슈와 시민단체를 향한 한 시민 시민의 후원은, 자신이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향한 사랑, 팬심, 그리고 같이 만들어가는 공연이라는 생각, 갈수록 짙어진다. 그래서 마련한 감동적인 그리고 코로나 사태가 끝나고 다시 경험하고 싶은 뜨거운 공연의 현장.


https://youtu.be/HosW0gulIS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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