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림과 침잠을 통해 배운 삶의 방정식

2025년을 회고하며

by 해담

2025년, 365일.


온전히 내가 가진 숫자였음에도 나는 3살짜리 아이처럼 마냥 마음대로 가지고 놀기보단 극장의 관객처럼, 소설 속 3인칭 화자처럼 관찰하듯 시간을 흘려보냈다.


어떤 날은 안주했고, 어떤 날은 도전했고, 어떤 날은 힘을 풀고 가라앉았다. 늘 느끼는 삶의 패턴은 비슷하다. 흔들리는 지점도, 망설이는 방식도, 결심이 늦어지는 이유도.


그럼에도 다행인건지 마구잡이로 나이를 먹고 있는 건 아닌 듯하다. 올해는 같은 패턴 안에서도 분명히 달랐다. 예전에는 지반이 흔들리면 흙으로 지어진 초가처럼 그대로 무너졌다. 봄날 눈이 녹은 논밭 같았다. 차갑게 녹은 물이 많아, 따스한 햇볕도 없이 질퍽하게 젖어버린 땅. 일도, 관계도, 나에 대한 감각도 한꺼번에 흐려졌다. 그러면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인가?라는 질문으로 돌아갔다.



올해에도 흔들리지 않은 건 아니다. 다만 젖어들진 않았다. 물기를 머금은 조각들이 햇살에 조금씩 단단해졌달까. 직장인으로서의 나, 연인으로서의 나, 개인으로서의 나, 누군가의 기대를 받는 나.


예전엔 축축하게 물러버린 페르소나들이 나의 발목을 잡아끌었지만 올해는 나의 걸음을 딛게 만드는 길이 된 느낌이다. 내 안에 있는 역할들이 각자의 모난 모습들을 다듬어주며 결속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커리어도 비슷하다. 여전히 안개는 있다. 다만 이 역시도 모호하고 막연하던 갈림길 속에서 방향을 찾았다. 답을 찾아야 생각했는데, 질문을 해야 했다.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시간이 빨라지는지, 어떤 순간에 마음이 식는지, 무엇을 반복해도 덜 닳는지.


질문이 구체화되니 선택도 현실이 됐다. 방향이 또렷해지면 삶이 흔들릴 때 돌아갈 기준이 생긴다. 올해는 그 기준을 몇 개 손에 쥔 해였다.


관계에서도 나는 여전히 부족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참았고, 참다가 무너졌고, 무너진 뒤에야 말하는 일이 반복됐다. 하지만 올해는 적어도 내가 어떤 말 앞에서 작아지는지, 어떤 상황에서 지나치게 딱딱해지는지 알게 됐다. 그걸 인정하는 순간 관계가 조금 더 현실적인 온도를 갖기 시작했다. 강해져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약한 지점을 숨기지 않을 때 사랑이 오래 버틴다는 것도.



무너지는 날엔 나는 선명한 질문을 했다.

“나는 지금 무엇을 피하고 있나?”

“나는 무엇을 너무 빨리 결론 내리려 하나?”


거창한 철학도 아니다. 흔들릴 때 무엇을 기준으로 다시 설 것인지, 나를 어떤 방식으로 대할 것인지에 대한 태도에 대한 물음이다. 그 질문이 구체적일수록 삶이 선명해진다. 상처가 난 자리에 머물며 계속 파헤치는 대신 다음 장면을 만든다.


불안도 그대로 두면 알 수 없는 초콜릿 상자 같다. 포장을 벗겨야 눈앞에 보이고,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잘하는 것은 억지로 힘을 주지 않아도 남는 것들이었다. 부족한 것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공백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공백이 보이면 채울 수 있다. 채우면 단단해진다. 다만 여백도 필요하다. 여백이 있어야 숨을 쉬고, 관계가 자라고, 다시 나를 들여다볼 틈이 생기니까. 내년의 나는 여백은 남기되, 공백은 방치하지 않으려 한다.



나는 앞으로도 젖어들 것이고 헤맬 것이다. 하지만 발이 빠져 허우적대고, 앞이 안 보이는 채로 부딪히는 대신 걷는 법을 알게 됐다. 남은 건 단순하다. 그저 생각한 대로 행동하자. 생각만 하면 나는 다시 관찰자가 된다. 행동하면 내 삶의 주인공이 된다. 내가 어떤 장면을 남길지, 어떤 선택을 반복할지, 어떤 나로 살아갈지. 행동은 스스로가 쥔 편집권이다.


2025년, 365일.

그 모든 시간들이 완전하지 않았지만 그 시간들 덕분에 나는 또다시 2026년, 365일을 살아갈 방식과 방법을 알게 됐다.


생각한 대로 삶을 살게 되고,
사는 대로 내가 될 테니까.

올 한 해 제 글을 읽어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내년에는 한 뼘 더 자란 행복과 한 줌 더 따스한 햇살이 비추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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