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시선, 아빠의 시간. 에필로그
어릴 적, 아빠는 내 옆보다는 위에 있었고, 그의 존재는 크고, 무거웠다.
나이가 들수록, 나는 아빠를 인생의 선배로, 삶의 동반자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에게 아빠는 세상 가장 묵직한 이름이 되었다.
1부는 딸이 알게 된 아빠라는 이름의 무게에 대한 이야기다.
아빠와 가까워진 것은 생각보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내가 살아온 인생의 삼분의 일, 어쩌면 그보다 조금 더.
어린 시절, 아빠는 늘 내 위에 계셨다. 때로는 단단하고 엄격한 모습으로, 때로는 몇 걸음 앞에서 나를 이끄는 기둥 같은 사람. 그러나 결코 나와 나란히 걷지 않는 존재라 생각했다.
그의 존재는 크고 든든했지만 동시에 무겁고 멀었다. 아빠의 얼굴에는 항상 책임감이라는 단어가 서려 있었고, 그의 어깨에는 가족의 생계를 짊어진 무언의 무게가 드리워져 있었다. 어린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깊이 이해하지 못했다. 내게 아빠는 그저 ‘아빠’였다.
우리 집은 시장길 한가운데에서 쌀가게를 운영했다. 하루 종일 무거운 쌀포대를 들고, 배달하고, 다시 가게로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그의 모습은 나의 일상이었다. 가게는 단순히 우리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는 장소였고, 아빠는 그 안에서 늘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그 모습이 내 기억 속에서는 어렴풋이 남아있다. 굵고 거친 손으로 쌀포대를 옮기던 뒷모습, 계단을 오르내리며 땀을 훔치던 그의 모습. 그 때는 몰랐던, 그 속에 담긴 그의 무게와 외로움. 철없던 아이는 그 모습이 때론 부끄러웠고, 일찍 철이 들어버린 어느 날은 그의 웃음이 안쓰러웠다. 어린 시절의 난, 아빠의 일상이 고단하다는 것을 느끼기엔 너무 어렸다.
시간이 흘러 내가 어른이 되면서, 아빠가 보였다. 돈을 벌고, 사회생활을 하며, 세상의 무게를 온몸으로 느끼면서야 비로소 아빠의 삶을 마주하기 시작했다. 나 하나 살아가는 것도 벅찬 이 세상에서 아빠는 어떻게 그 모든 것을 견디고, 가족을 지탱하셨을까.
나는 어른이 되어서야 아빠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 그리고 그가 감당해야 했던 무게를 감히 상상해보았다. 나보다 앞서 삶의 어려움을 경험했고, 그 속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묵묵히 걸어 온 아빠. 한없이 커다랗고 엄격해 보였지만, 아빠의 모습 뒤에는 수없이 많은 고민과 고독이 숨어 있었다. 그는 내게 단순한 부모라는 존재를 넘어 내 삶의 거울이자 선배로 다가왔다.
나는 지금에서야 아빠라는 이름을 조금씩 이해해가고 있다. 어릴 적에는 멀게만 느껴졌던 그의 존재가 시간이 지나며 곁으로 다가왔고, 이제는 내 안에서 스며들었다. 그 이름 속에는 사랑과 책임, 그리고 희생이 담겨 있다. 동시에 그의 삶은 나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다.
나는 어떤 딸로 살아왔는가?
아빠에게 나는 어떤 존재로 기억될까?
그리고 나는 어떤 어른으로, 딸로, 부모로 살아가야 하는가.
이 글은 인생 선배인 아빠의 삶 속에서 딸이자, 후배가 발견한 것들을 담으려는 기록이다. 어쩌면, 그 때는 말하지 못했던 나의 고백이자, 지금이라도 그에게 전하고 싶은 작은 헌사일지도 모른다.
이세상에서 제일 묵직하고 위대한,
나의 아빠, 나의 영웅.
존경하는 담윤님께 이 글을 바칩니다.
아빠라는 이름은 늘 묵직했습니다.
그 무게를 가늠하지 못했던 어린 날부터, 조금씩 그를 이해하게 된 지금까지.
위로만 느껴지던 아빠의 존재는 어느새 곁으로 다가와 내 안에 스며들었습니다.
시장 한가운데 쌀가게에서 시작된 아빠의 삶.
딸의 시선으로 바라본 그의 시간 속에서 발견한 사랑과 희생, 그를 통해 배운 것들.
그리고 전하고 싶은 아이의 고백.
이 이야기는 아빠와 나, 그 사이의 시간과 사랑의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