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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는 사랑할 수록 T가 된다.

by 해담

나는 분석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이다.


사람들은 내게서 따뜻함도 본다고 말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정한 거리를 둔 관계 안에서의 이야기다. 가까운 사람, 특히 가족이나 연인 앞에서는 내 안의 T, 즉 Thinking 타입의 성향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감정에 공감하기보다 문제를 해결하려 들고, 위로보다 조언을 앞세운다.


허나, 이런 모습은 가까운 관계에서 잦은 충돌을 일으킨다. 내가 전한 방식은 말 그대로 내가 바라던 방식이었을 뿐, 상대가 원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나의 해결 중심 커뮤니케이션은 누군가에게는 위안 없는 판단처럼 느껴진 듯 했다.


처음엔 잘 몰랐다. 내 방식은 사랑하는 이들에게도 최적의 효율을 이끌어주는 방법이라 믿었다. 하지만 사람은 각자가 가진 성향이 있는 법. 나의 이성적인 선의가 누군가에겐 정서적 거리감으로 느껴졌고, 때론 상처가 되기도 했다. 관계에서 반복되는 오해와 서운함은 나에게 물음을 던졌다.


“내 방식이 상대에겐 사랑일까"


이 질문의 답을 찾는 과정은 쉽지 않았고, 스스로가 내린 답변은 생각보다 더 이기적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그동안 나의 방식이 얼마나 '나'에게만 최적화되어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여전히 문제 해결을 지향하지만) 그 T가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연습이 필요했다.


최근의 나는 아주 조금씩 변화 중이다. 내 안의 T가 관계 속에서 조금 더 부드럽게 작동할 수 있도록, 내가 하는 말이 상대의 마음에 어떻게 닿을지 조금 더 고민하여 말의 방향을 바꾸고, 반응을 다듬어가고 있다.


본질적으로 가진 성향을 억지로 바꾸려 하진 않는다. 다만, 내가 추구하는 이타적인 삶과 유연한 사람의 모습으로 조금씩 리디자인하고 있다. 스스로의 성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다정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


예전이라면 ‘난 원래 이런 사람이야’를 외치며 나를 고정시켰을 테다. 지금은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며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를 질문한다. 관계 속에서 서로에게 최적화된 방향으로 성향을 조율하고 있다. 공감이란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된다는 걸 이젠 알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내 방식이 틀린 건 아니지만 모든 상황에 맞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됨으로 시작되었고, 연인 덕분에 더욱 강화되었다. 인생은 결국 혼자라고 외치던 내가, 인생은 함께 살아내는 것이라는 걸 되뇌이고 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켜켜이 버터를 바른 페이스트리 같다. 겹겹이 쌓인 감정과 이해, 오해와 배려, 부딪힘과 화해의 층들이 쌓일 때, 더욱 바삭하고 풍미 깊은 삶을 만들어낸다. 혼자만의 논리와 기준으로 결코 느낄 수 없는 맛은 생각보다 다층적이다.


그래서 난 오늘도 나의 관점으로 1차 분석하고, 상대의 마음으로 2차 해석한다. 내 안의 진심을 좀 더 부드럽게 전하기 위한 노력을 말이다.


나는 여전히 T지만
관계를 통해 F의 언어를 배우는 중이다.

조금 서툴러도, 진심으로.

번외. 관계 속에서의 밸런스

모든 사람은 복합적인 성향을 지녔다. 중요한 건 성향 자체가 아니라, 그 성향이 관계 안에서 어떻게 작동하느냐다. 감정에만 머물지도, 이성만을 앞세우지도 않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균형을 잡아가는 것.


사랑할 땐 우리는 모두 조금씩 T가 되기도, F가 되기도 한다. 중요한 건 진심을 잃지 않는 것. 나의 언어가 너에게 닿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배우고, 시도하고, 성장하는 것. 그게 성숙이고 사랑의 기술이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나는 사랑을 택했다.

그 선택이 나를 조금 더 부드럽고 따뜻한 사람으로 익혀주고 있다. 정성을 다해 오랜 기간 구워낸 페이스트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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