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뚜기
라떼는~ 학원을 가는 아이들은 두 가지 경우였다.
너무 못해서 학원으로 보충을 해야 하는 경우와 너무 잘해서 정규 교육과정만으로는 학습량이 부족한 경우다.
그리고 보통 이에 대한 판단은 학교를 다니면서 하게 된다.
초등학교부터도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보았기 때문에 너무 성적이 안 좋으면 학원에서 보충을 받고 너무 성적이 좋으면 더 깊은 공부를 하기 위해서 학원을 다녔다.
하지만 지금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학원을 간다.
문화센터 프로그램부터 집으로 오는 방문학습까지 돌도 안된 아기들이 다니는 학원이 있다.
변화된 교육 문화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을 것 같다.
학원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예전처럼 집 밖에만 나가면 하루 종일 놀 수 있는 문화가 아니기 때문에, 일정 부분은 학원이 놀이를 대체해 주고 있다. 아이들이 학원을 일찍부터 다니지만 모든 학원이 공부를 위한 곳이 아니고 놀이미술, 여러 체육활동, 음악 등 예전에 놀이로 하던 것들이 학원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가계의 교육비 부담이 늘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학원을 안 보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수학만 예로 들어도, 수학적 능력이 뛰어난 아이가 과거라면 그 능력을 사교육 없이 펼칠 기회가 주어졌지만, 지금은 어릴 때부터 여러 학원을 다니면서 시간과 노력을 오랫동안 투자한 친구들이 많아서 그저 뛰어난 능력으로 혼자 공부해서는 그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다.
지금처럼 넘치는 교육정보와 학원의 홍수 속에서는 무엇보다 부모의 가치관이 중요하다.
불안에 압도되어 그릇된 판단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부모가 교육에 대한 확고한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1. 공교육이 제일 중요하다
학교생활을 성실히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학교에서 보는 시험에서 좋은 결과를 받는 것이 최종 목표이고 이에 방해되는 학원은 안된다. 학원 수업이 먼저여서는 더더욱 안된다. 이러한 태도는 아이가 학교를 다니는 12년간 많은 결정에서 기준이 된다. 인식과 태도의 문제이기 때문에 어쩌면 처음 교육기관을 다니는 시기인 유치원부터도 이러한 태도가 당연히 아이 안에 자리 잡게 해줘야 학교를 다니는 동안 등교 거부 등의 불필요한 갈등을 안 겪게 된다.
2. 친구 따라 강남 가지 말고 아이의 필요에 따라 학원을 선택하자
학원이 필요한지, 어떤 학원이 필요한지는 온전히 내 아이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 다른 아이들이 한다고 우르르 학원을 보내기 시작하면 일주일 내내 학원만 다니다가 시간이 다 간다. 실력이 부족해서든, 탁월함이 필요해서든, 아이한테 필요가 생긴 후에 움직여야 한다. 좋은 학원을 알게 되었더라고 마음속에 담아만 두고 필요해질 때 움직여야 한다.
3. 학원을 자주 바꾸는 것도, 그냥 한곳만 오래 다니는 것도 안 좋다
아이 성적이 안 나오면 바로 바꾸고, 좋은 학원을 들으면 바로 바꾸는 가벼움은 안된다. 그렇다고 전혀 발전이 안되는데 버틸 필요도 없다. 이를 위해 우선 학원과 아이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필요하다. 이 학원의 강점과 약점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 학원을 갈 때는 아이한테 필요한 것이 그 학원의 강점이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의 장단점과 학업 성취도를 지속적으로 관찰해야 한다. 각 과목의 특성을 알아서 과목마다 어느 시기에 어느 부분이 필요한 것인지도 파악하고 있어야 종합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 이러한 파악이 안되면 휘둘리기 쉽다.
아이가 A 수학 학원을 2년쯤 다녔는데, 수학 문제를 모두 문제집에 풀고 있었다.
식 전개도 뒤죽박죽이었고 풀이를 확인할 수가 없었다.
학원에 이야기를 했지만 학원에서는 깨끗하게 푸는 연습은 조금 더 있다가 해도 된다고 했다.
그래서 학원을 바꿨다.
처음 그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을 때는 어렸고 문제가 간단해서 책 위에 풀이를 하는 것에 문제가 없었지만 2년이 지난 후에는 아니었다. 이미 6학년이었고 변화가 필요했다.
B 수학학원은 노트에 풀이를 깨끗하게 쓰는 방법으로만 문제를 푸는 학원이었다.
금방 개선되었고, 6개월 정도 지났는데 기본 난이도 정도의 문제에서 오답률이 너무 높았다.
학원과 상담을 했고 선행이 부족해서 그렇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학생의 공부 부족으로 탓을 돌리는 장삿속으로 보였다.
횟수를 늘려서 선행의 속도를 더 높이면 자연스럽게 오답률이 떨어진다고 했다.
그것이 원인도 해결책도 아니다.
그래서 C 학원으로 옮겼다.
A에서 B로 학원을 옮길 때는 분명한 문제와 목적이 있었다.
그리고 B 학원이 마음에 안 들었지만 그래도 옮겼던 목적은 충분히 달성하고 다시 필요한 부분을 줄 수 있는 학원으로 갔다.
나는 학원을 선택할 때마다 메뚜기의 모습을 떠올렸다.
학원을 옮기는 것은 메뚜기가 한 곳에서 풀을 다 먹고 뛰어올라서 다른 풀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는 것과 같다.
우선 앉은 자리의 풀을 말끔히 다 먹고, 힘차게 뛰어올라서, 다시 싱싱한 풀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다.
자유시장경제에서 생산자들은 선택을 받기 위해 경쟁을 한다.
학원마다 다 좋은 점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완벽한 학원은 없다.
그래서 각 학원의 장점을 최대한 학습하고 새로운 필요를 위해 적당한 시기에 이동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앉은 자리의 풀을 말끔하게 먹었는지는 아이의 책을 살펴보거나 대화를 하면서 알아차려야 한다.
간섭하거나 캐묻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모르게 지켜봐야 한다.
섣부르게 옮기면 아이가 적응을 못할 수 있다.
시기를 놓치면 공부의 흐름이 깨질 수 있다.
옮길 때는 갈팡질팡하지 말고 감사한 마음과 그동안 성장시켜준 힘을 바탕으로 힘껏 뛰어올라야 한다.
그리고 아이의 새로운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곳에서 다시 열심히 하면 된다.
(단순히 레벨이 높은 반이나 더 어려운 학원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다.
레벨에 집착하다 보면 아이가 전혀 이해하지 못하면서 몇 년을 허송세월하게 될 수도 있다.)
이러한 판단이 쉽지는 않다.
그래서 아이에 대한 예민한 관찰이 필요하다.
옆집 아이 얘기 듣는 시간, 아직 한참 남은 대입을 알아보는 시간, 정보가 많아 보이는 사람과 친해지기 위해 보내는 시간. 엄마의 시간을 이런 곳에 쓰면 안 된다.
입시가 변해도 공부해야 하는 본질은 똑같다.
우선 본질적은 것들부터 제대로 하고 전략을 세워도 늦지 않다.
당장 중학교 내신에서 반에서 중간도 못하는데 5년 후 서울대 입시 전략을 연구하는 것은 의미 없다.
아이에게 입은 닫고 눈은 떼지 말고 제대로 아이를 관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부모가 흔들리지 않고 일관된 기준을 가지고 아이의 길잡이가 되어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