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이 앞에서 부부 싸움??

Yes or No

by 해든


아이 앞에서는 부부싸움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된다는 것이 불문율처럼 여겨진다.

과거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폭력적인 부부 싸움을 목격했던 자녀들이

그 시절 두려움을 고백하는 내용이 방송에서 많이 다뤄지면서 이러한 인식이 보편화된 것 같다.

너무 극단적인 예로 부부 싸움에 대해 지나친 죄책감을 심어주고 있다.



우선 부부 싸움이라는 것이 아주 특이하고, 살면서 쉽게 경험하기 힘든, 기현상이 아니다.

사람 사이에는 정상적인 관계라면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고 부부 사이는 더 자주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당장 아이가 성인이 되어서 결혼을 하면 매일같이 마주할 현실이다.

부부 싸움이라는 것을 아예 모르고 자란 아이가 결혼을 한다면 "잘" 싸울 수 있을까?



부부 싸움은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아이들도 가족의 일원으로서 그 상황을 같이 헤쳐나가는 경험이 필요하다.

부부 싸움은 어떤 일상적인 상황에서 두 사람이 다르게 반응하면서 시작된다.

이 반응에는 개인의 성격과 살아온 배경 등 각자가 원래 갖고 있는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해서 더 악화되기도 한다.

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이해와 인생에 대한 통찰이 필요하다.

아이들도 부모와 함께 생활하기 때문에 오랜 시간 부모를 지켜보면서 수집한 아이들만의 자료가 있다.

아이들은 이 자료를 바탕으로 부모의 싸움을 관찰하고 판단하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이 아이가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 바탕이 될 수 있다.

더 나아가서 엄마가 부부 싸움을 하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엄마는 이때 이것을 못한 걸 후회해. 그래서 가끔 어떤 것은 비수로 와서 꽂히는 것 같아",

"엄마가 어릴 때 집안 사정이 이러이러해서 운동회 때 이런 일이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지금도 운동회만 보면 눈물이 나."라고 아이에게 솔직하게 말해주고 소통한다면 아이들은 부모에 대해 깊이 이해하게 되고 더 단단한 가족이 될 수 있다.

이제는 아이가 성인이 되고도 길게는 80년 이상을 같이 살게 된다.

부모 자식으로 시작된 관계지만, 결국은 성인 대 성인으로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가족 간에 서로의 삶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면 더 편안한 관계가 될 수 있다.



아이들은 또한 이 과정을 통해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도 배우게 된다.

갈등이 생기기만 하면 회피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태도는 평생 누군가와 건강한 관계를 맺지 못하게 만드는 걸림돌이 된다.

부부 싸움은 서로 사랑하고 기대하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를 풀어나가는 과정이다.

부모가 어떤 일이 생기고 서로 서운함이나 문제점을 이야기하면서

그것을 예의를 갖춰 대화로 풀어나가고

그 결과 다시 부모가 편안해지는 과정을 옆에서 본다면

아이들도 친구들과 갈등이 생기거나

조별로 과제를 하면서 의견 충돌이 생겼을 때

천천히 그 과정을 풀어나갈 수가 있다.

말로 듣고 책으로 보는 것보다

직접 갈등의 발생부터 해결까지의 건강한 갈등해결 과정을 보는 것은

아이들이 사회생활을 잘 해나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의 부부 싸움은 물건을 던지고 욕을 하는 막장 드라마 같은 싸움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폭력물에 노출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아이에게 보여주면 안 되고

부부 사이에도 아무리 갈등이 생겨도 그 정도까지 간다면 그것은 더 이상 부부 싸움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부부 싸움이 그 원인을 떠나서 싸움 자체로 서로에게 상처가 되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인간이 어른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비단 수학 문제를 잘 푸는 지적 능력의 성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능력만 자란다면 반쪽자리 어른이 된다.

아이들은 부모품에 있을 때 많은 것을 경험해야 한다.

직접 경험하지 않아도 부모의 경험을 지켜보며 느끼는 간접경험들이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어른으로 잘 살기 위한 밑거름이 된다.



pexels-august-de-richelieu-4259140.jpg



나는 어릴 때부터 집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부모님과 함께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은행에 입금과 출금 등 부모님의 은행 업무 심부름을 했고

이사하며 가구를 고른다거나 계약서를 쓸 때도 그 자리에 같이 있었다.

중도금과 잔금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어릴 때부터 들었다.

그래서 성인이 되어 집을 구할 때도 부모님 도움 없이 내가 알아보고 계약까지 잘 처리했다.

어른이 되고 하는 실수들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아직 부모 품에 있는 때, 실수해도 될 때 아이에게 최대한 많은 것을 알려 주어야 한다.

부부 싸움도 그중 하나이다.



아이는 무균실에서 평생 사는 것이 아니다.

아이에게 갈등도 알려줘야 한다.

아이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는다고 나쁜 것들이 아이만 피해서 지나가지 않는다.

오히려 나이에 맞는 노출이 필요하다.

나쁜 것이 나쁘다는 것을 미리 알아야 거기에 빠지지 않고 스스로 피할 수 있다.

보여주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과거에 비해 공부를 많이 하는데 학업성취도는 더 낮아지고 있다고 한다.

그 원인 중에 하나가 공감 능력이 떨어져서다.

문학작품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삶을 다루고 아이가 전혀 겪어보지 못한 일들은 공감할 수 없다.

어른들의 희로애락을 나이에 맞게 간접경험하는 것이 아이에게는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자산이 된다.

평범함 사람들에게서, 평범하게 일어나는 일들을, 평범하게 겪으면서, 아이에게 인간에 대한 보편적 공감대가 형성된다.



부모에게 가면을 쓰고 자신의 감정을 완전히 숨기는 연기를 요구하는 것은 과도하다.

그게 가능하지도 않다.

아이 앞에서 싸우지만 않았지 냉랭한 분위기로 있으면 그 상황이 오히려 아이를 더 불안하게 할 수 있다.

무조건 숨길 것이 아니라, 잘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부모만이 해줄 수 있는 교육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학원 선택 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