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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도 Feb 03. 2024

응급실의 진상

소소한 꼴불견 이야기

응급실의 솔직한 모습을 써보고자 제목을 중의적으로 지어보았다.

거짓 없는 내용, 그리고 꼴불견의 신조어인 진상.

(몰랐는데, '진상손님'의 '진상'이 신조어였다.)

병원생활의 어려움 중 극히 일부에 대해 얘기하려고 한다.


병원에 가 본 적이 있는가?

어떤 이유에서든 그리 유쾌한 경험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어릴 때부터 병원은 언제나 공포의 대상이다.

가끔은 속아서 병원에 가는 바람에 서러운 경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병원 안에서도 특히 피하고 싶은 곳이 있다.

예상치 못하게 다치거나 아파서 오는 사람들 있는 곳.

응급실이다.


이곳에서의 경험은 좋을 수 없을 거라 생각한다.


큰소리로 불평하는 사람.

아파서 끙끙 앓는 사람.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는 사람.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응급환자.



응급실은 응급진료를 위해 존재하는 곳이다.



 “응급환자”란 질병, 분만, 각종 사고 및 재해로 인한 부상이나 그 밖의 위급한 상태로 인하여 즉시 필요한 응급처치를 받지 아니하면 생명을 보존할 수 없거나 심신에 중대한 위해(危害)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환자 또는 이에 준하는 사람으로서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사람을 말한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2조 1항




응급실에서 진료가 빨리될 줄 알고 오는 사람이 있다.

혹은 평일에 병원 갈 시간이 없다며 응급실에 왔다고 한다.

이런 사람 특징, 빨리 봐주지 않는다며 소리를 지른다.


'응급해서 왔는데 왜 빨리 봐주지 않나요?'

'응급실인데 왜 이렇게 늦냐구요.'

(존댓말 하면 다행. 보통 반말과 짜증 섞인 공격적 말투.)


너무 자주 듣는 레퍼토리라 이젠 좀 식상하다.

식상하긴 해도 진료에 방해되니 진정시켜야 한다.

팔자 눈썹을 만들고 미안한 표정으로 설명한다.


난동 환자가 생기면 다른 환자에게 미안하다.

대부분의 소리 지르며 불만을 표하는 사람들은 비응급, 경증 환자다.

경증 환자의 난동으로 응급환자의 진료와 처치가 늦어진다.

난동 환자를 말리느라 중환자에게 갈 인력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난동 환자 때문에 내 가족이 처치를 빨리 받을 수 없다면 얼마나 화나겠는가?


난동 환자는 도미노 효과도 불러온다.

조용히 기다리던 경증환자들이 빨리 집에 보내달라고 아우성이다.

난동이 난동을 부른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날 것의 응급실을 말하려면 위험한 발언도 많지만 (당연히) 생략한다.




확실히 10년 전보다 일명 '진상'환자는 확연하게 많아졌다.

강산이 변한 만큼 사람도 변하나 보다.


사람들이 점점 이기적으로 변해간다는 게 느껴진다.

내가 먼저, 내 새끼 먼저.

다른 사람은 돌아보지 않는다.



실제로 내가 응급실 간호사로 근무하며 겪은 일이 있다.


넘어져 무릎이 까진 청소년이 어머니과 함께 응급실을 방문했다.

당시 심폐소생술을 하는 환자가 소생술 구역에 있었다.

10분쯤 지났을까?

청소년의 어머니가 나에게 왔다.


보호자 : '저희 아이 무릎 소독은 언제 하나요?'

나 : '보호자분, 지금 심폐소생술을 하는 환자가 있어서 진료가 늦어지고 있어요.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보호자 : '그 사람은 죽은 사람이지. 그 사람은 그 사람이고, 제 아들 소독부터 먼저 해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나 : '네...?'


주변에 다른 환자와 보호자들도 있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말한다고?

인터넷에서만 볼 법한 말을 실제로 듣다니.

예상치 못한 보호자의 말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아마 표정관리가 안 됐을 것 같다.



병원에서 무조건 불만제기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단지 궁금한 것을 물어보면 된다.

물어본다고 진상취급하거나 화낼 사람은 없다.

물론 부당한 일이 있다면 병원 고객의 소리로 불만, 고충을 상담하면 된다.

요즘 고객서비스가 없는 병원이 없다.



누구나 언제든 아플 수 있다.

아플 때는 바로 병원으로 달려가야 한다.

그 병원에서의 경험이 적어도 나쁘지는 않았으면 한다.


병원도 사람 사는 곳이다.

서로 뾰족하지 않게, 둥글게 대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나 또한 병원에 방문할 미래의 당신에게 꽤 괜찮은 경험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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