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쓰레기를 줍게 되었을까?

그 괴물

by 해관

밤이 깊어질수록 집 안의 소리는 하나씩 사라졌다. 거실에서 들리던 TV 소리, 부엌에서 물이 흐르던 소리, 문을 여닫는 소리까지 차례로 멎었다. 그런데도 몸 안은 전혀 조용해지지 않았다. 심장은 귀에 닿을 만큼 크게 뛰었다. 어깨는 스스로 올라가 있었고, 숨은 끝까지 내려가지 않았다. 다음 날, 아무도 모르게 한국을 떠난다는 생각이 머릿속보다 몸에 먼저 닿아 있었다. 이 일을 알고 있는 존재는 많지 않았다. 우리 집 강아지 슈우와 마쓰, 그리고 하늬뿐이었다.


이름 이하늬. 얼굴은 늘 하얗게 밝았고, 말을 하지 않아도 주변을 밝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상황을 전부 알고 있었지만 묻지 않았다. 그럼에도 곁에 남아 있었다.

- 하늬야. 내일 LA로 가려고. 부모님 몰래.

잠시 숨을 고르는 소리가 들렸다.

- 응. 차라리... 부모님과 조금 떨어져 있는 게 나을 수도 있어.

- 미안, 도착하면 연락할게.

전화는 길지 않았다.


달빛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또렷해졌다. 그 아래에서 한국에서의 마지막 밤이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다. 슈우와 마쓰는 그날따라 곁을 떠나지 않았다. 발치에 앉았다가, 옆으로 붙었다가, 다시 따라왔다. 마치 내 마음을알고 있는 것처럼.


아침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왔다. 아버지는 평소처럼 일찍 나가며 내게 말했다.
- 밥 잘 챙겨 먹어.

목소리는 늘 하던 그대로였다.

비행기 시간은 오후 두 시 반. 그런데 엄마가 집에 있었다. 평소라면 열 시쯤 나갈 시간인데, 그날은 움직이지 않았다. 시계의 긴 바늘이 15라는 숫자를 가리킬 때까지 집 안은 그대로였다. 시간이 제자리에 걸린 느낌이었다. 그때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 밥 먹고 약 꼭 챙겨 먹고 있어.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자마자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엘리베이터는 그날따라 유난히 느렸다. 누군가 줄을 붙잡고 있는 것 같았다.


차 문을 열고 짐을 옮겼다. 택시를 불렀고, 바로 잡혔다. 기사님이 캐리어를 트렁크에 넣으며 말했다.

- 멀리 가시나 봐요. 짐이 많네요.

대답 대신 짧게 웃었다.

차가 움직이자 불안은 더 선명해졌다. 누군가 뒤에서 달려올 것 같았고, 신호에 멈출 때마다 붙잡힐 것 같았다. 기사님의 뒷모습도 괜히 의심스러웠다. 공항에 도착하기 전까지, 그리고 비행기에 오르기 전까지, 몸은 계속 수축돼 있었다. 혹시 부모님이 알아채고 신고했다면. 혹시 공항에서 멈춰 세운다면. 그 생각이 머릿속에서 계속 돌아갔다. 그래서 인스타그램에 사진 하나를 올렸다. 강원도로 잠깐 바람 쐬러 간 것처럼.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공항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한꺼번에 눈에 들어왔다. 소리도 함께 밀려왔다. 캐리어가 바닥을 긁는 소리, 안내 방송, 서로를 부르는 목소리가 겹쳐 공기를 채웠다. 줄에 서 있는 동안 시선은 계속 앞사람의 등에 머물렀다. 고개를 돌리면 누군가와 눈이 마주칠 것 같았고, 그러면 모든 게 들킬 것 같았다. 체크인을 마치고 보안 검색대로 들어갔다. 가방을 내려놓고 주머니를 비웠다. 몸을 스캔하는 기계 앞에서 잠시 멈췄을 때,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따라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사실이 오히려 낯설었다. 게이트 앞 의자에 앉아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땀이 나 있었지만 닦지 않았다. 닦아도 다시 젖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탑승 안내가 나왔을 때 몸이 먼저 일어났다. 생각은 그 뒤에서 따라왔다. 걸음을 옮기면서도 계속 뒤를 신경 썼다. 누군가 이름을 부를 것 같았다.


비행기 안은 생각보다 좁았다. 좌석에 앉자마자 안전벨트를 맸다. 손은 자연스럽게 그 위에 올려졌고,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창가 자리를 선택한 건 의도하지 않은 선택이었다. 다만 밖을 보고 있으면 사람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엔진 소리가 커지면서 몸이 다시 굳었다. 심장은 아까보다 빠르게 뛰었고, 숨은 짧아졌다. 활주로를 달리는 동안 잠깐, 멈추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비행기는 멈추지 않았다. 기체가 땅에서 떨어질 때 어깨에 들어가 있던 힘이 조금 풀렸다. 아직 도착한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붙잡히지는 않았다. 창밖으로 건물들이 점점 작아졌다. 도시가 아래로 내려앉았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얼굴로,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내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도 앉지 않았다. 안전벨트는 접힌 채 그대로였고, 그 자리는 비행이 끝날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창밖을 보다가 잠시 그쪽을 바라봤다. 누군가 앉아 있을 것처럼 괜히 시선을 주었다가 다시 돌렸다. 사람이 없다는 사실보다 그 자리가 너무 익숙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비행기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고, 좌석 사이의 공기는 고요했다. 하지만 그 고요함 속에서 완전히 혼자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내 곁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여전히 외로움의 괴물만은 함께 있었다. 그건 처음 만난 것도, 새로운 존재도 아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자리를 옮겨 다니며 곁에 남아 있던 것이었다. 비행기가 흔들릴 때도, 엔진 소리가 커질 때도 그 존재는 조용히 따라왔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지만 떠나지도 않았다. 그렇게 빈 좌석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는 다시 그와 함께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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