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키지 않게, 아무도 모르게.
며칠이 지났고, 부모님을 설득해 다른 병원으로 옮기자고 말했다. 다니던 병원의 진료실은 유난히 깔끔했다. 의자도, 책상도, 조명도 괜히 믿음이 갈 만큼 정돈돼 있었다.
하지만 병실은 달랐다. 침대는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고, 문은 끝까지 닫히지 않았다.
샤워기에서는 물이 고르게 나오지 않았다. 하나같이 오래된 것들이었다. 그런 것들을 하나씩 꺼내 부모님을 설득했다. 이곳은 아닌 것 같다고, 조금 더 나은 곳에서 다시 확인해보고 싶다고. 침대가 삐걱거린다는 말부터 꺼냈다. 엄마를 설득하기 위해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다시 반복했다.
수화기 너머에서 엄마는 한동안 말이 없었고, 숨 쉬는 소리만 들렸다.
- 여기 좀 이상해.
잠시 뒤, 엄마가 물었다.
- 뭐가 이상해?
기다렸다는 듯 수화기에 몸을 더 가까이 붙였다.
- 겉은 멀쩡한데, 안은 아니야.
- 여기 말고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
수화기에서 작은 잡음이 났다. 엄마가 자세를 바꾸는 소리였다.
- 대학병원 말하는 거야?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 거기서 다시 진료 보면 안 돼?
- 여기 말고.
이번엔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보다 조금 낮고 느렸다.
- 지금 병원이 많이 안 좋아?”
- 어.
짧게 대답했다. 설명은 더 하지 않았다.
수화기 너머에서 말소리가 잠시 이어졌다. 웅성거리는 소리만 있고 단어는 들리지 않았다. 잠시 뒤 아빠가 말했다.
- 한 번 다른 병원으로 가보자.
그 말로 통화는 길어지지 않았다.
며칠 뒤 대학병원 예약을 잡았고, 또 다른 의사 앞에 앉았다. 양옆으로 가늘게 찢어진 눈, 안경 너머의 시선. 표정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고 말도 많지 않았다. 검사가 다시 이어졌다.
검사 결과를 보기 위해 다음 날 병원을 다시 찾았고, 의사는 부모님을 보며 물었다.
- 입원시키실 건가요?
엄마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숨을 고르지 못한 채 말이 먼저 나왔다.
- 저는... 입원시키고 싶어요. 너무 불안해요.
의사는 잠시 고개를 들었다.
- 부모님 두 분 다 동의하셔야 합니다.
시선이 아빠에게 옮겨졌다. 그 순간 아빠의 오른손을 꽉 잡았다. 처음 잡는 아빠의 손이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입원하기 싫다는 마음을 그 손에 실었다. 아빠는 잠시 침묵하다가 의사를 보며 말했다.
- 아니요. 조금 더 지켜보겠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 몸에 들어가 있던 힘이 조금 풀렸고 굳어 있던 근육이 천천히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의사의 눈빛은 달라지지 않았다. 다음번에 다시 오면 분명히 다른 선택을 요구할 것 같은 눈빛이었다.
- 그럼 집에서 약 잘 드시게 하시고, 다음 주에 봅시다.
그날 이후 조용히 준비가 시작됐다. 집에 아무도 없을 때 캐리어 두 개를 꺼냈다. 소리가 나지 않게 지퍼를 올리고, 필요한 것들만 넣었다. 짐은 사람들을 피해 지하 주차장에 있는 차로 옮겨졌다. 밖으로 나갈 수는 없었다. 사람만 마주쳐도 다시 붙잡혀 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병원으로 끌려가던 그날의 공포가 몸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아무도 보지 않는 시간에, 아무도 모르게 한국을 떠날 준비를 했다.
들키지 않게, 아무도 모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