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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광 Feb 11. 2022

강박증에서 벗어나기

내가 겪은 강박증4

엘리베이터에 4 대신 F라고 쓰여져 있는 엘리베이터가 많다. 우리나라에선 4를 죽을 사死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어서, 4라는 숫자를 피한다고 했다. 그러나 4와 죽을 사가 발음이 같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어떤 유사성이나 비슷한 점이 있는 건 결코 아니다.

강박증이란 게 그런 것 같다. 자신이 그 강박증에 걸려야만 하는 어떤 이유도 없다. 유튜브를 보다가 선사 시대의 인류는 생존하기 위해 불안이나 강박이 있었어야 할 것이다, 라고 설명하는 의사를 봤는데, 여담으로 한 건지 진담으로 한 건지 몰라도 나는 그 의견에는 반대다. 물론, 어느 정도의 불안, 강박은 어느 정도의 적당한 스트레스, 긴장감으로 사람을 활발하게 해주지만, 중요한 건 선사 시대고, 현대 시대고 간에, 강박증이라고 할 정도의 심한 강박을 겪게 되면, 일상 생활 또는 생존에 불리하고 위협이 되며 너무 불편해서 견디기 힘들 수도 있다. 강박증이 심하면, 삶의 고통이 너무 심해서 이렇게 살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고 생각할 만큼의 우울증도 동반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강박증을 자기 합리화하려는 생각은 좋지 않은 것 같다.

자기 합리화는 합리화하려는 대상의 내부에까지 들어가서 세부적인 것들을 만져보고 하며 연관 관계를 만들어 놓는 일이다.

강박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건 오히려 강박증에서 <거리>를 두는 태도, 또는 자세이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기 위해서는 적어도 그 강박증의 바깥으로 나오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사실 그렇게 바깥으로 한 발자국 나오는 것조차 쉽지 않을 수 있다.

강박증은 잘 만들어진 커다란 미로 같다. 강박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러 가지 다른 생각의 길로, 방향으로 가봐도 강박증에서 잘 벗어나기 힘들다, 라는 생각에 다다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자기가 자기에 대해서 거리를 두는 방법이 여러 가지 있을 수 있는데, 내가 선택한 방법은 메모를 하는 것이었다.

강박증을 잘 만들어진 미로라고 했는데, 그러면 막다른 길에 자꾸 도달해서 벗어나지 못하는 미로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표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걸 실천에 옮겼다. 기본적으로 미로이기 때문에 벗어나기 힘든 건 당연하다. 그러나, 벗어나기 위해서는 같던 길에 또 가보고 똑같은 실수를 또 하는 것은 적어도 방지해야 하지 않겠는가?

막다른 길에 다다르고, 실패하는 것은 무의미한 고통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것을 기록해두는 방법을 통해 그 시도는 아주 의미 있는 결과물이 된다.

사티Sati라고 하는 것이 있다.

알아차림, 이라고 하는 것인데, 그와 비슷한 것 같아 사티에 대해서는 인터넷에 검색해 보면 나올 것이다.

자신이 강박적인 생각의 통로를 따라갈 때에 자기 자신의 머릿속에 드는 생각이나 심장의 두근거림이나 미묘한 감각이나 마음 상태, 기분 상태, 감정 상태, 생각, 주변 사물에 대한 해석, 그런 모든 것을 일단 적는 것이다.

옮겨 적게 되면, 옮겨 적은 결과물과 나 사이에 거리가 생기고, 나는 그것에 대해 객관적으로 생각해 볼 여지가 생긴다.

강박증은 매우 주관적인 증상이기 때문에, 이렇게 좀 떨어져서 객관적인 거리를 연습하는 것이 매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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