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제일시장 사고와 장기기증을 다시 생각하게 된 이유

by 해이

어제인 2025년 12월 17일, JTBC <한문철의 블랙박스 리뷰>에서 부천 제일시장 차량 돌진 사고를 다뤘다. 이미 한 차례 접했던 사고였지만, 블랙박스 영상과 당시 상황이 다시 화면에 등장하자 쉽게 넘길 수가 없었다. 방송을 보는 내내 사고의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더욱이 부천 제일시장은 내가 자주 찾는 곳이기에, 사고 이후 침체된 분위기를 직접 겪어왔다는 점에서 그 장면들은 더 낯설지 않게 다가왔다.



방송이 끝난 뒤, 나는 자연스럽게 그 사고를 다시 검색해 보게 됐다. 사고 경과와 피해자 소식, 이후 전해진 이야기들을 하나씩 읽어 내려가던 중, 그날 사고로 숨진 이들 가운데 한 명이 뇌사 상태에 빠진 뒤 부모의 동의로 장기기증을 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와 동시에 오래전 내가 해두었던 장기기증 신청이 떠올랐다.



나는 2009년 사후 장기기증과 각막기증을 신청했다. 그 선택을 크게 의식하며 살아오지는 않았지만, 주민등록증에 붙은 장기기증자 스티커가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스티커는 닳고 바래 있었고, 그만큼 기억에서도 조금씩 멀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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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소식을 계기로, 나는 장기기증 신청을 했던 사이트에 다시 접속했다. 16년 전의 기록은 여전히 유효했다. 개인정보는 안전하게 보관되고 있었고, 신청 상태 역시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변경된 주소지를 수정했고, 오래돼 손상된 장기기증자 스티커를 다시 신청했다. 운전면허증에도 장기기증 여부가 조회되도록 연계 신청이 가능하다는 안내를 보고, 그 절차까지 마쳤다. 화면을 몇 번 클릭하는 데 걸린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생각은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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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사이, 나는 가족들의 투병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있다. 아버지는 방광암과 폐암으로 17번의 수술을 받았고, 완치 판정을 받지 못한 채 여전히 치료를 이어가고 있다. 작은삼촌은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외삼촌은 췌장암으로 먼저 떠났다. 고모 역시 갑상선암 수술을 받았다. 지인 중에는 가족 간 간이식을 경험한 사람도 있다.



외삼촌은 생전에 골수기증을 했고, 신장기증도 한 차례 했다. 자신의 몸을 내어주는 선택을 반복해서 했던 사람이었다. 이 과정 속에서 병과 치료, 그리고 이식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일상이 됐다.



장기기증은 늘 의미 있는 선택 혹은 영웅 서사쯤으로 이야기되지만, 막상 개인의 문제로 다가오면 쉽지 않다. 죽음을 전제로 해야 하고, 남겨질 가족의 감정과 결정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필요성을 알면서도 결정을 미룬다. 나 역시 대단한 신념으로 장기기증을 신청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혹시라도 내가 세상을 떠난 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전부였다.



나는 세상을 살며 옳은 일을 많이 하며 살아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간의 삶이 찬란하거나 행복했다고 단정 짓기도 어렵다. 하지만 연말을 앞두고, 그리고 새해를 기다리며 지난 세월을 다시 돌아보게 됐다. 조금 더 세상에 도움이 되는 선택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누군가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그 기다림이 얼마나 길고 고단한지, 가까운 이들의 병상 앞에서 지켜보며 실감했다. 나의 선택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쓰일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 선택이 누군가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한 방송을 계기로 다시 떠올린 주민등록증 위의 스티커 두 개는, 나에게 삶을 대하는 태도를 다시 묻게 했다. 연말과 새해의 경계에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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