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식품, 그 참을 수 없는 유혹
90년대를 초등학생으로 지내온 나는 말 그대로 불량식품의 천국에서 살았다.
셀로판테이프처럼 투명했던 일명 "테이프", 혀까지 파랗게 물들이던 "페인트사탕",
어른 흉내를 내며 씹어 삼키던 "맥주사탕",
볼 안이 터질 듯 불룩해지던 커다란 "눈깔사탕",
빨강/노랑/초록 알록달록했던 "신호등사탕"까지.
입 안이 얼얼하고 이가 시릴 만큼 달았지만,
그 시절만큼은 그야말로 불량식품의 전성시대였다.
내 하루 용돈은 200원, 많아야 300원.
아빠의 기분에 따라 운이 좋으면 500원, 아주 드물게 1000원이 손에 쥐어졌다.
집에 손님이라도 와야 가능한 일이었다.
낯가림이 심했던 나였지만, 손님이 오길 은근히 기다리던 건 오직 그날만큼은 “큰돈”을 쥘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슈퍼도, 난전도 없던 우리 마을에서 불량식품은 쉽게 구경할 수 없었다.
그래서 평일을 기다렸다. 학교에 가야만, 학교 앞 문방구 "미영이네"에 갈 수 있었으니까.
(엄마, 미안. 선생님, 죄송해요. 히히.)
수업이 끝나자마자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책가방을 덜그럭거리며 미영이네로 달려갔다.
호주머니 속 동전들도 우리 발걸음에 맞춰 요란하게 짤그락거렸다.
운동에 영 소질 없던 나는 늘 뒤처졌고,
먼저 달려간 친구가 흘리고 간 동전을 몰래 주워 담은 적도 있었다.
(인승아, 미안!)
두 평 남짓한 미영이네는 전교생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난리통이었다.
80여 명의 아이들이 매대 위를 휩쓸고 지나가면, 남는 건 몇 개 없었다.
그래도 그 속에서 불량식품을 움켜쥔 자는 환호했다.
입안 가득 전리품을 욱여넣고, 씩 웃던 그 순간!
그게 어린 날의 승리였다.
하지만 그 달콤한 전성시대에도 대가는 있었다.
불량식품으로 배를 채우느라 밥을 걸렀다가, 엄마의 등짝 맴매에 호되게 혼이 난 적도 있다.
입이 달아진 탓에 젓가락만 움켜쥔 채로 깨작거리는 모습을 본 엄마는,
“밥을 굶고 그딴 걸 먹어?” 하며 눈을 부릅떴다.
그 사자후에 놀라 꾸역꾸역 밥을 삼키던 장면은 지금도 선명하다.
가장 굴욕적이었던 사건은 동생과의 공모였다.
며칠 동안 아껴 모은 용돈을 합쳐, 드디어 검정 봉지 가득 불량식품을 쓸어 담았다.
백만장자라도 된 기쁨에 씩 웃으며 집으로 가던 길,
마당에서 콩을 털던 엄마에게 딱 걸리고 말았다.
“이게 뭐야?!”
엄마는 봉지를 낚아채더니 그대로 압수해 버렸다.
순식간에 세상은 무너져 내렸고, 동생과 나는 꺼이꺼이 울다가, 곧바로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했다.
“네가 지금 들어가면 된다고 했잖아!”
“아니, 누나가 그랬잖아!”
결국 울음은 싸움으로 변했고, 그날 하루는 불량식품 없이도 배가 부를 만큼 울었다.
또 한 번은, 딱딱한 밭두렁을 먹다가 이가 툭 빠져버린 적도 있다.
수많은 밭두렁들 사이에 있는 이빨을 들여다보며, 나는 세상이 끝난 줄 알았다.
“불량식품을 너무 많이 먹어서 이가 빠진 걸까?”
겁에 질려 펑펑 울어댔지만, 사실은 그냥 이가 빠질 시기였을 뿐이었다.
어른들이 아무리 달래도, 나는 한참 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엄마도, 아빠도 불량식품을 못 먹게 했다.
용돈은 늘 부족했고, 나는 늘 결핍 속에서 달고 끈적한 것들을 찾아 헤맸다.
그래서 어린 나는 하나의 다짐을 했다.
“어른이 되면, 돈을 벌면, 꼭 불량식품을 마음껏 사 먹고야 말 테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었고,
첫 월급을 받던 날 나는 곧장 ‘추억의 간식 세트’를 파는 곳을 찾아 불량식품을 한 아름 사들였다.
손끝이 떨릴 만큼 설레는 마음으로 포장을 뜯어, 그때처럼 입안 가득 털어 넣고 우걱우걱 씹어 삼켰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때의 그 맛이 아니었다.
내 입맛이 변한 건지, 아니면 그 시절엔 늘 친구들과 함께여서,
그리고 늘 모자라서 더 맛있었던 건지.
입안 가득 퍼지던 달콤함 대신 가슴속 어딘가에서부터 허전함만 잔뜩 느껴질 뿐이었다.
이제는 그때의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없는 그 시절의 불량식품들.
몸에는 안 좋았을지 몰라도, 그때 내 하루는 그 작은 봉지에 달려 있었다.
달고 끈적하고 때로는 아프기까지 했던 그 맛은
여전히 내 기억 속에서 반짝이고 있다.
혹시 여러분은 어떤 불량식품을 가장 좋아하셨나요?
또 어른이 되어 다시 사 먹어보신 적은 있으신가요?
여러분의 추억 속 맛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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