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합창단
몸 구석구석 모든 모공으로 열기가 스며드는 듯한, 숨 막히게 뜨거운 여름이었다.
비조차 찾아오길 꺼린 채,
오직 더위와 ‘맴맴’ 울어대는 매미 소리만이 계절을 가득 채우던 때.
여름은 원래 더운 법이지만,
“이제 그만 좀 더워라.” 하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짜증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날이 있었다.
그 더위가 마치 매미 탓인 것 같았다.
맴맴
매앰
맴맴맴 매앰
집에서 불과 십여 미터 떨어진 산자락.
그곳에 매미들이 매달려 울어대는 탓에, 우리 집 안은 온통 매미 울음으로 뒤덮여 있었다.
난닝구(민소매 내의를 우리는 그렇게 불렀다)와 팬티 차림으로
여름과 온몸으로 맞서던 나는 방안에 오래 있으면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아 얼른 옷을 갈아입었다.
땀에 젖은 옷을 대충 걸치고, 한 손엔 잠자리채, 다른 손엔 채집통을 들고
곧장 산으로 뛰어올랐다.
집 앞 산은 오후 햇볕이 내리꽂아 공기마저 뜨겁게 달궈져 있었다.
풀잎 사이로 훌쩍! 뛰어들었다.
휭! 하고 귀 옆을 스치는 바람과 함께
‘맴~’ 하고 길게 울어대던 소리가 뚝 끊겼다.
“내가 왔다!”
이상하게도 내가 온 걸 아는 듯 산 전체가 조용해졌다.
그 잠시잠깐의 적막이 오히려 어린 사냥꾼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의기양양해진 나는 나무기둥을 퉁퉁 발로 차며 산을 훑었다.
바스락! 풀잎이 흔들리고, 나뭇가지 끝에서 푸드덕거리는 소리가 났다.
재빠르게 잠자리채를 휙 내리치니 매미 한 마리가 그물 속에서 바둥거렸다.
두 번째 녀석은 나무껍질에 붙어 있어
눈을 부릅뜨고 가까이 다가가서야 겨우 발견했다.
놓쳐버릴까 봐 숨까지 참으며 잽싸게 잠자리채를 휘둘러 가뿐히 낚아챘다.
마지막 세 번째는 제법 고수였다.
내 머리 위 가지에서 매앰!!!!! 하고 시원하게 울어대더니,
내 발구르기에 놀라 훌쩍 날았다.
그 궤적을 따라가며 채를 한 번, 두 번 휘두르다
운 좋게 우왕좌왕하는 녀석을 채 안에 가둬버렸다. (세상에, 어찌나 빠른지..)
채집통은 매미들의 날갯짓으로 바스락거리기 시작했다.
날갯짓의 미세한 떨림이 뚜껑까지 울려 손바닥을 간질였다.
그 사이 내 몸은 땀으로 흠뻑 젖고, 팔과 다리에는 산모기들이 새긴 붉은 점들로 가득했다.
산을 내려오니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바닥에 드러누웠고, 어느새 눈이 감겼다.
매미는 까맣게 잊은 채였다.
그날 밤... 지옥이 시작됐다.
대충 던져놓은 채집통 뚜껑이 열려 있었던 것이다.
그 틈으로 매미들이 빠져나가 집안 구석구석으로 흩어졌다.
맴맴~~
매앰~!!
맴맴맴~~ 매앰!!!!!
한밤중 그 울음소리는 천장을 뚫고 귀에 쏟아졌다.
소방차와 구급차가 동시에 달려드는 듯한 굉음.
나는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썼지만, 그 얇은 천 너머로 들리는 매미의 합창은 마치 내 귀 옆에 바짝 붙어
확성기를 틀어놓고 부르는 것 같았다.
부엌 쪽에서 한 마리가 퍼덕거리자 엄마가 “이게 집이야, 산이야!” 하고 소리를 질렀다.
아빠는 빗자루를 들고 거실을 휘저었고, 나는 잠자리채를 들고 장롱 밑과 창틀, 커튼 속을 뒤졌다.
그러다 머리카락에 툭!!!!
무언가 닿는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휘익!!!!!
날개 치는 소리와 함께 매미가 날아가 전등갓에 매달렸다.
거기서 또 “매앰!” 하고 얄밉게 울어댔다.
마치 어디선가 나를 바라보며 나에게 메롱을 날리는 것 같았다.
그날 밤 우리 집은
산속보다 더 산속 같은 곳이 되어 있었다.
밤새 온 가족이 매미와 전쟁을 치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결국 새벽녘쯤, 지친 우리는 반쯤 체념한 채 거실과 방, 부엌까지 퍼져있는 매미 소리를 들으며 눈을 붙였다.
(아니, 기절했다)
아침 햇살이 창으로 스며들 때쯤
거실 바닥엔 뒤집혀 날개를 파르르 떨다 조용해진 매미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엄마는 “이제야 조용하네” 하며 커피물을 올렸고,
아빠는 빗자루 끝에 매달린 매미 사체를 들고 마당으로 나갔다.
그런데 갑자기 부엌 찬장 안에서
“매앰!!!!”
엄마의 눈치부터 살폈다.
척추부터 땀이 타고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살금살금 살짝 벌어진 찬장 문을 열자,
거기에는 아직 살아 있는 마지막 매미 한 마리가 떡 하니 매달려 있었다.
녀석은 밤새 찬장 속에서 혼자 살아남아, 이제야 세상에 나왔다며 기세 좋게 울어댔다.
그걸 본 엄마가 한숨 섞인 웃음을 터뜨렸다.
“야, 얘는 진짜 집까지 점령할 기세네.”
그날 나는 채집통 뚜껑을 ‘꽉’ 닫는 법부터 배우게 됐다.
온 몸을 태워버릴 듯한 더위가 극성이더니,
어느새 가을의 문턱을 넘어선 날씨가 되었네요.
코끝에 닿는 아침 찬바람이 참 기분 좋게 만듭니다.
이 글은 진작 여름이 한창일 때 올리려고 했었지만,
욕심이 많은 탓에 이 것, 저 것 잔뜩 올리다 보니 가을이 되어서야 올리게 되었네요.
지나가버린 여름, 다가온 가을을 기념하며
매미 소리 투척합니다!
혹시 여러분들도 곤충채집이나 매미에 관한 추억이 있으신가요?
이번 여름엔 매미 소리를 얼마 듣지 못한 것 같네요.
(어쩐지 아쉽다면, 이해 되시려나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