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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면 나는 설탕을 뿌린다.

아버지 머리 위에서 피어오르던 열기

by 해이



어릴 적, 우리 집 주변은 온통 열매들 천지였다.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 일곱 식구인 우리집은

먹을 것이 늘 모자랐고, 그래서 부모님은 부지런히 과일을 심었다.


하지만, 그 이유 따위는 어린 나에겐 아무래도 상관 없는 일이었다.


그저 문만 열면 눈앞에 펼쳐지는 복분자, 앵두, 딸기, 토마토등의 풍성한 과일밭에

마음이 뛰었고, 배가 불렀으니 그걸로 충분했다.


가운데에 있는 우리집을 중심으로 양옆과 뒤편이 모두 밭이었다.


양옆으론 밤나무, 복분자, 딸기, 앵두가 지천이었고

뒤편으론 방울토마토, 땅콩, 개암나무, 잣나무,

사과나무, 배나무, 매실나무, 참외, 수박까지 계절을 따라 다투듯 열렸다.


그 시절 과일들은 시간을 따라 익어가며 내 입을, 내 배를, 그리고 어쩌면 마음까지도 살찌웠다.






토마토가 붉어지면 설탕을 수북이 뿌려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숟가락으로 푹 떠먹으면 어느 아이스크림과도 비교할 수가 없는 훌륭한 여름 간식이 되었고,

야외화장실 옆을 채우던 딸기는 유난히도 크고 통통해 내 주먹과도 크기가 비슷했다.

줄기를 쏙 뽑으면 땅속에서 우르르 딸려나오던 땅콩은

그해 겨울, 우리 집의 티브이 앞을 장식하는 단단하고 고소한 간식이 되었다.


그 열매들은

부럼이 되고, 쨈이 되고, 아이스크림이 되어

나의 키를 키웠고 내 기억을 장식했다.



어느 해 ,

땅을 뚫으려는 듯 맹렬한 더위를 자랑하던 여름.

논일을 마치고 돌아오신 아버지 머리 위에 뜨거운 열기가 가득했다.


9살쯤이었나,

서툰 손놀림으로 냉장고 속 오이를 꺼내 씻고, 설탕을 뿌린 토마토를 내어 드렸다.

열기에 녹아내린 아이스크림같은 구부정한 허리를 얼른 펴며 차가운 토마토를 얼른 떠 드시던 아버지는 그당시 나에게 별다른 말씀은 하지 않으셨었다. 하지만 순삭간에 대접 가득하던 것을 모두 비우신 그 모습이야 말로 진정한 칭찬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버지는 그 후로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나고나서야 가끔 그날의 일을 말씀하신다.

그날의 토마토는 마치 천사가 내민 손길 같았다고.

무더위에 지쳐있던 몸으로 차가운 계곡 물에 풍덩 빠져든 것 같았다고.






나는 지금도 여름이면 버릇처럼 냉장고 속 토마토에 수북이 설탕을 뿌려둔다.

익숙한 그 맛을 떠올리며, 그날의 아버지를 떠올리며.





복분자를 으깬 후

요거트나 요구르트에 섞어 먹으면 그것도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어요.

(지금은 소주나 막걸리에 그렇게 마시면 맛이 있.. 히히..)



젊었던 아버지는 어느새 70을 바라보는 연세가 되셨어요.

인슐린을 맞을 정도로 심해진 당뇨와

스무번이 가까워오는 암수술을 버티시느라 잃어버린 입맛은

그 어느 음식으로도 돌아오질 않네요


그때 조금 더 열심히 토마토를 드릴걸, 하는 후회가 벌써 여러번이지만

짙어가는 병세와 세월에 무력감이 가득합니다




어느새 뜨겁던 여름이 지나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되었지만
여름 간식,
여러분은 어떤 걸 드시며 자라오셨나요?
가을 간식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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