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를 넘기던 그 손끝에는, 나의 사춘기가 있었다
내가 초등학생이던 90년대 초반, 그 시절엔 어린이용 잡지가 참 많았었다.
"소년 챔프", "아이큐 점프"처럼 인기 만화를 연재하던 잡지부터
그때 가장 핫했던 연예인들이 표지를 장식한 연예 잡지까지.
지금이야 중고 거래나 수집용으로 남아 있지만,
그 시절 잡지는 말 그대로 아이들의 필수템, 아니 생존템이었다.
종이 끝이 헤지고, 책장이 너덜거릴 때까지 수십 번이고, 수백 번이고 펼쳐보던 보물 같은 존재였다.
어린이용 만화잡지엔
"나루토", "원피스", "김전일", "명탐정 코난",
그리고 내가 특히 좋아했던 "검정고무신", "짱구는 못말려" 등이 연재됐다.
그중에서도 "검정고무신"은 지금 내 글에 영향을 줬을 만큼 마음 깊이 새겨진 작품이었다.
그 안엔 재미와 유행, 동경과 꿈이 다 들어 있었고, 우리는 책장을 넘기며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쳤다.
덕분에 "만화가"라는 꿈을 꾸는 아이들도 꽤나 많았다.
친구와 한 권의 책을 나눠 읽으며
"나 아직 다 안 봤어!"
"야, 나 다 봤으니까 빨리 넘겨!"
하는 실랑이는 기본이었다.
가끔은 친구가 책을 빌려갔다가 라면국물을 흘린 채로 돌려줘서 싸움이 나기도 했고,
결국 선생님한테 걸려 책도 뺏기고 단체로 혼이 나기도 했다.
뺏긴 만화책을 돌려받기 위해 화장실 청소를 일주일간 도맡았던 적도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아빠가 시내에 나갔다가 만화책을 한 권 사다 주시던 날이었다.
그땐 한 권에 2천 원쯤 했던 것 같은데, 그 책을 학교에 가져가 친구들 앞에서 으스대며 빌려주곤 했다.
여럿이서 빙 둘러앉아 함께 보기도 했는데,
사실 속으론 '찢지 마라 제발...' 하고 기도했었다. (ㅎㅎ)
만화잡지 뒷면엔 늘 독자 코너가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나만의 캐릭터 공모전'에 응모를 해본 적도 있다.
나는 사람의 머리카락을 형상화한 캐릭터를 색연필로 정성껏 그려 엽서를 채웠다.
그 모습을 본 오빠가 "그게 뭐냐"며 놀려댔고, 결국 우리는 싸움이 났는데
늘 그렇듯, 엄마에게 등짝을 맞고서야 끝이 났다.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 응모한 결과는... 보기 좋게 탈락.
지금 같으면 다시 응모했을 텐데, 그땐 그 한 번의 실패가 너무 크게 느껴져 다시 도전하지는 못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관심은 자연스럽게 연예잡지로 옮겨갔다.
"미스터케이", "팝틴", "아이돌" 같은 잡지들이 서점 진열대를 장식하던 시절이었다.
잡지를 사면 안쪽에 있던 연예인 포스터를 방 벽에 붙이는 건 국룰이었다.
부록으로는 브로마이드나 사진이 따라왔고,
우리는 다행히 친구들과 좋아하는 연예인이 겹치지 않아 부록을 교환하기도 했다.
각자 다른 잡지를 사서 부록을 교환하던 그 정겨운 거래.
어떨 땐 잡지보다 부록이 더 기다려질 때도 있었다.
가수 "신화"의 브로마이드를 얻는 날이면
학교 끝나자마자 집으로 달려와 방 벽 가득히 붙여두었고,
엄마는 못마땅해하셨지만 나는 그게 그렇게도 행복했다.
잡지 속엔 연예인의 화보, 인터뷰, 팬레터,
그리고 지금 생각하면 너무 귀여운 "연예인 애장품 응모 이벤트"도 있었다.
나는 신화의 열혈 팬이었고,
꼬깃꼬깃한 용돈을 모아 팬클럽 '신화창조'에도 가입했었다.
(지금도 여전히 팬심 가득한 40대 주황공주다. 신화산!)
신화의 애장품을 갖고 싶어서 사서함 전화응모를 하루에도 수십 번씩 눌렀고,
결국 전화요금이 수만 원이 찍힌 달엔 며칠을 엄마에게 등짝이 희생당했었기(?) 때문에
엄마의 눈을 피해 다니기에 바빴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간절히 원했던 신화의 애장품은 못 받았고,
전혀 팬이 아니었던 '량현량하'의 소품함이 당첨됐다.
그 작은 나무함을 나는 인생 첫 당첨 선물처럼 소중하게 책상 위에 오래 두었다.
그 시절의 잡지들은 그냥 '책'이 아니었다.
우리가 사랑하고, 설레고, 기대하고, 기록하고 싶었던 모든 감정들이 들어 있던 세계.
모든 것이 아날로그였던 그 시절에는
책장을 손수 한 장 한 장 넘기고, 가위로 잘라 스크랩하고, 연필로 낙서하고,
동그라미로 마음을 표시 했었다.
어쩌면 그때의 잡지들이, 그 잡지 속 이야기들이,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잡지 한켠의 펜팔 코너를 통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지역의 친구와 편지를 주고받기도 했고,
잡지 속 연예인 사진을 오려 교과서 표지를 꾸미기도 했었죠.
그렇게 소중히 모아왔던 만화책과 연예 잡지들은
몇 년 뒤, 예기치 못한 수해로 모두 사라지고 말았지만
그 페이지들만큼은, 아직도 제 기억 깊숙한 곳에서 선명히 살아 숨 쉬고 있답니다.
여러분도 잡지에 대한 추억,
많이 갖고 계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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