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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보단 김밥에 진심이었다.

먹어보았는가, 분홍쏘세지가 들어간 김밥을?

by 해이



느티나무 이파리가 하나둘씩 연갈색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하면,

애착 이불 속이라도 자꾸만 몸을 뒤척이며 잠들지 못하는 밤들이 있었다.

곧 다가올 소풍이라는 기대감에 저절로 올라가는 입꼬리가, 졸음도 함께 밀어내는 듯했다.

눈을 감으면 학교 운동장에 세워져 있을 커다란 대절버스의 모습과

친구와 서로의 도시락을 교환하며 깔깔대는 상상이, 마치 이미 소풍날이라도 된 듯 생생하게 스쳐 지나갔다.


머릿속으로는 이미 엄마가 말아주실 김밥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차있었다.

만화캐릭터가 그려진 양은 도시락에는 몇 알의 김밥이 들어갈지,

사이다는 흔들지 않고 잘 가져갈 수 있을지, 치토스를 가져갈지, 바나나킥을 가져갈지.

온통 도시락에 대한 혼자만의 열띤 회의를 거치며 기대감은 점점 부풀어 올랐다.

사이다가 아닌 환타라 해도, 치토스나 바나나킥이 아닌 빠다코코넛이라고 해도 나는 이미 행복했다.

그렇게 뜬 눈으로 꼬박 새벽을 맞이하기도 했다.


그리곤 어김없이 "탁탁탁" 일정한 리듬감으로 들려오는 칼과 도마의 소리로 소풍날의 아침이 밝았다.

미등만 켜둔 주방의 공기는 차가웠지만,

갓 싸둔 김밥에서 풍기는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쌀쌀한 새벽 공기쯤은 아무것도 아닌 듯 뿜어져 나왔다.

그 소리와 냄새에 이끌려 주방으로 들어가면

어깨에 매달려있는 뒤늦은 졸음쯤은 금세 없어져 버리곤 했다.


둥그런 은색 쟁반 위로 쌓아 올려진 김밥 더미는 일곱의 식구들에게 전해질 양이어야 했기에

이미 하나의 언덕처럼 꽤나 높은 높이를 자랑하고 있었다.

우리 집의 소풍은 김밥부터가 "적게"라는 개념을 허락하지 않은 채였다.

고급스럽진 않아도 무조건 "많아야"했다.

두툼하고, 조금은 부실하더라도 단단해야 했으며, 무너질 틈 없이 힘 있게 말려야 했다.


김밥의 속은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소박했다.

유난히 진한 노란색을 띠는 단무지가 주력 멤버이자 메인이었고, 그 뒤를 싸구려 맛살이 따라왔다.

"이 계절엔 시금치도 비싸다"라며 사 오신 구색 맞추기용 시금치와

얇게 채 썰어진 당근, 김밥의 체면을 위해 들어간 계란지단까지.


우리 집 김밥용 밥에는 소금과 참기름으로 간이 되었고,

접 농사지어 수확한 깨소금으로 장식되었다.

그 덕에 김밥말기를 다 마치기도 전에 밥만 틈틈이 집어 먹어도 충분히 맛이 있었다


마주칠 때마다 쟁반 위로 김밥들이 집 뒤켠의 동산처럼 점점 쌓여 갔다.

그 산이 자라날수록 나도 모르게 '소풍의 시간이 다가온다.'라는 생각도 덩달아 자라났다.



소풍 당일 학교에서는 도시락 가방이 출석부만큼이나 중요한 존재가 되어 등허리에 당당하게 매달려 있었고, 친구들은 서로 도시락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를 간접 확인하듯 귀띔을 주고받았다.

"너네 엄마는 김밥에 햄 넣어줬어?"라는 질문은

마치 숨겨진 재산을 확인하는 질문처럼 묘하게 긴장감이 있었다.

그 말이 나올 때마다 내 눈앞엔 친구들 도시락에서 반듯하게 잘린 햄이

빛을 반사하며 누워 있는 장면이 자동으로 재생되었다.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김밥 속에 무엇이 들어갔는지를 확인하며,

괜히 부럽기도 하고 괜히 으쓱하기도 했다.


우리 집 김밥 속에는 햄 대신 분홍소시지가 들어갔고,

그 탓에 때로는 밥이 은은한 분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처음에는 그게 조금 창피했다.

왜 우리 김밥은 꼭 밥까지 분홍색일까.

다른 친구들 김밥 속 햄은 유난히 맛있어 보이는 반면,

우리의 분홍소시지는 볼록하니 둥글어서 어쩐지 진짜 김밥 속 '손님' 같지가 않았다.

하지만 발칙한 그 감정은 늘 김밥의 첫 입이 입안에서 터지는 순간 처참히 무너졌다.


두툼한 단무지가 '아작'하고 부서질 때,

부실하다고 생각했던 맛살과 시금치가 밥 사이를 슬며시 감싸며 어우러질 때,

어쩐지 그 분홍빛마저 더 맛있어 보이는 순간이 찾아왔다.


버스에 올라타면 창문 너머로 스치는 은행나무가 노란 잎을 흔들며 아이들의 들뜬 마음을 더 부풀렸다.

버스 엔진 소리와 친구들의 고함이 뒤섞여 가을 아침 공기를 흔들었다.

주머니에 넣어둔 간식들이 부스럭거리며 심장 박동에 맞춰 들썩였다.


오랜 시간을 달려 가을 하늘이 청명한 어딘가에 도착하면 각 반별로 돗자리가 펼쳐졌다.

그 순간부터는 김밥이 도시락통 안에 있는 것을 더는 참기가 어려웠다.

도시락통 뚜껑이 열리고 쟁반 위에 차곡차곡 쌓였던 김밥 언덕은

이제 은색 돗자리 위에서 내 앞에 트로피처럼 놓였다.


햄 들어간 김밥, 나도 하나만 줘



김밥을 한 알 집어 들고, 친구 옆에 앉아서 "나 하나, 너 하나"를 외치는 그 짧은 순간은

그렇게 진지할 수가 없었다.

내가 분홍소시지가 들어간 김밥을 내밀었을 때 친구가 햄김밥을 내놓으면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한입 베어 물면 결국은 우리 둘 다 웃고 말았다.

"야, 너네 집 김밥 되게 맛있다?"라는 말 한마디면 모든 부끄러움이 단숨에 사라졌다.


치토스 봉지를 뜯으며 양손을 주황색으로 물들이는 동안,

사이다는 톡 쏘며 김밥 사이를 맑게 씻어 내려갔다.

그러다 보면 누가 더 좋은 재료를 넣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서로 도시락을 바꾸고, 김밥 모양이 조금 찌그러져도,

그 안의 맛은 어쩐지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생각해 보면 그때 우리를 행복하게 했던 건 단무지의 두께도, 소시지의 종류도 아니었다.

누군가의 손으로 우리를 위해 만들어진 김밥이라는 사실.

"소풍 가서 먹을 김밥"이라는 기대감 하나만으로도 밤을 설치게 했던 마음.

버스 안에서 겪었던 멀미마저도 즐거움의 일부가 되었던 기억.

친구와 나눠 먹으면 김밥 한 알이 즐거운 잔치가 되던 시간.


그런 모든 것들이 분홍소시지와 함께 말아져 있었던 건 아닐까.




이제는 가을이 올 때마다 김밥 그 자체보다도,

전날 밤 이불속에서 눈을 비비며 '내일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라는 기대감을 가졌던 순간이 떠오른다.


어쩌면 우리가 어른이 된 지금에도, 가끔 이유 없이 마음이 들뜨는 순간이 찾아오는 이유는,

그때 이불속에서 설렘을 말아 넣던 어린 내가 아직 마음속 어딘가에 남아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문득 그 시절의 가을 운동장과 김밥 한 줄을 떠올렸다면

아마 그 추억 안에도 아직 소풍 전날 밤을 기다리는 어린아이가 눈을 뜨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김밥 한 알보다 더 그립고, 분홍소시지보다 더 예쁜 분홍빛 마음 하나를 꼭 쥔 채로.






자연농원 앞에서 씩씩하게 도시락 가방을 들고 찍었던 단체 사진,
드림랜드 회전목마 앞에서 어색한 브이를 그리며 웃었던 날,
그리고 용인 민속촌 돌담 앞에 둘러앉아, 김밥을 입에 넣으며 웃던 친구들.


그때 김밥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소풍의 즐거움 + 친구들의 웃음 + 엄마의 정성"을 함께 말아 넣은 기억의 타임캡슐이었지요.


이제는 편의점에서 언제든 살 수 있는 흔한 음식이 되었지만,
그래도 마음속 '내 소풍 김밥'만은 여전히 귀하고 따뜻한 맛으로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김밥을 기억하고 있나요?
혹시 여러분 집만의 특별한 김밥도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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