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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얼스, 내 안의 여름에게

내가 살아낸 여름, 그리고 다시 살아갈 나에게

by 해이



여름은 언제나 목이 마르다.
작렬하는 태양은 숨을 조이고, 바람조차 뜨겁게 불어온다.

길 위에 늘어진 그림자조차 지쳐 있는 계절.


하지만 신기하게도 여름은 또 언제나 우리의 기억 속에서 가장 선명하게 빛난다.

땀방울에 젖은 얼굴, 매미의 고막을 찌르는 소리, 저녁 하늘을 가르며 날아오르는 불꽃놀이의 환희.

여름은 유난히 소란스럽고, 그래서 더 잊히지 않는다.


올여름 나는 그 뜨거움 속에서 글을 썼다.

그냥 흘려보내기만 하던 계절이 아니라, 펜을 들고 붙잡은 여름이었다.

그리고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오랫동안 숨겨두었던 나를 마주해야 했다.

수없이 정리하고 정리하는 문장들 사이로 불쑥 고개를 내미는 건 다름 아닌 내 상처들이었다.

내가 외면하고 싶었던 결핍, 남에게 들키기 싫어 감춰두었던 어리석음들이 문장 틈새에서 스스로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에는 부끄러웠다. 이런 이야기를 굳이 꺼내도 되나, 누군가 읽으면 비웃지 않을까, 망설였다.

하지만 글은 묘하게도 정직했다. 솔직해질수록 더 자연스럽게 흘렀고, 고백할수록 조금은 가벼워졌다.


결국 나는 글을 쓰며 나 자신에게 치얼스를 외치고 있었던 셈이다. 잘 버텨냈다고, 여기까지 와줘서 고맙다고, 더는 숨기지 않아도 괜찮다고.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나는 여러 번 잔을 들었다.

그 잔은 유리도, 도자기도 아니었다. 때로는 습기 가득한 노트였고, 때로는 한밤중 휴대폰 화면의 희미한 불빛이었다. 잔을 부딪칠 상대는 없었지만, 나는 내 안의 여름에게 축배를 들었다.


뜨겁게 흔들리던 마음에도 치얼스를.
늘 부족하다 여겼던 나의 결핍에도 치얼스를.
어리석어서 더디게 걸어온 지난날에도 치얼스를.


그렇게 스스로를 인정하고 나니, 오래전 깊숙이 접어두었던 꿈이 다시 내 품으로 와 안겼다.

꿈이라는 건 대단한 게 아니었다. 그저 쓰고 싶다는 마음, 내 이야기를 글로 남기고 싶다는 열망. 하지만 바쁘다는 이유로, 현실이 힘들다는 핑계로, 나는 그 마음을 깊숙이 눌러두고 살아왔다. 이번 여름은 그 눌린 마음을 다시 펼쳐보게 만든 계절이었다.


나는 여름의 땀 냄새와 열기 속에서 한 번 더 확신했다.

글을 쓴다는 건 결국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라는 걸.

숨기지 않고 드러내고, 두려워하지 않고 고백하는 과정이 곧 살아내는 일이라는 걸.


이제 여름의 끝자락에서, 나는 다시 잔을 든다. 남에게가 아니라, 내 안의 여름에게.
숨 가쁘게 달려온 날들에게도, 아무도 몰래 울던 밤들에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음을 잃지 않으려 했던 순간들에게도.

그리고 이제 다가올 계절에게도.


나는 아직도 부족하고, 여전히 흔들리겠지만, 그래도 계속 쓰고 싶다는 마음 하나만은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


치얼스.

내가 살아낸 여름, 그리고 다시 살아갈 나에게.






[여름, 치얼스를 위하여]
매거진을 마치며 -


무더운 여름 한가운데에서
함께 글을 나눌 수 있었다는 건
제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각자의 시선으로 담아낸 여름의 이야기들은
서로에게 거울이자 창이 되어,
더 깊고 넓은 여름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안에서 저 또한 잊고 있던 꿈을 꺼내어
한껏 품어볼 수 있었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
조금은 성장한 나를 확인할 수 있었고,
또 나라는 존재를 스스로에게 다시 각인할 수 있었습니다.

글을 쓰는 일이 이렇게 큰 힘이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던 계절이었습니다.


저는 본래 비겁하고, 모자란 사람이어서
마흔이 넘는 나이를 먹은 지금까지도

도망치는 데 익숙했습니다.
꿈에서 도망치고, 현실에서 도망치고,
결국 나 자신에게서도 도망치려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들을 벗어던질 용기가 생겼습니다.
그 용기는 독자님들과 작가님들께서
함께해 주셨기에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도망치지 않고,

글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그 길 위에서 또 다른 계절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음 계절 매거진에서도
또 한 번의 치얼스를 나눌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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