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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일막걸리 Jan 25. 2023

네 번째 인턴 생활 중입니다

양조장으로 출근하는 길

저는 인턴에 관한 기억과 추억이 많은 편입니다. 고심 끝에 거절하긴 했지만 첫 회사 면접에 붙은 것도 정규직 전환형 인턴십이었고요,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도 인턴으로서였습니다. 회사를 옮겨가며 총 세 번의 인턴 생활을 거쳤고, 한 번만 더 인턴이 되면 내가 이 비정규직 삶에 대한 에세이를 쓰리라! 자조 섞인 다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제가 네 번째 인턴십을 시작하게 될 줄은, 창업을 하기 전까진 전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양조장을 만들겠다고 당찬 포부를 말씀드릴 때마다 돌아오는 건 '양조장에서 직접 일해보셨어요?'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지고 왜 양조장을 창업하려는지 모르겠는 의문에서, 힘든 양조일을 진짜 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에서 나온 말이겠지요.


저 스스로도 확신할 수가 없어서, 기회가 되면 양조장에서 일해보고 싶었습니다. 상업 양조의 현실이 궁금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들로 인연은 쉬이 닿지 않았고, 올해 안에 양조장에서 일하리라는 목표는 달성하기 어려워 보였습니다.


그러다 한 대표님의 소개로 용인에 있는 양조장 대표님들을 소개받았고, 첫 만남 자리에 버스를 놓쳐 지각까지 하는 실수를 범했지만 그 해 남은 운을 다 쓴 덕인지 같이 일해보자는 기쁜 답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요즈음 저는 다시 인턴이 되어 일주일에 두 번 양조장으로 출근하고 있습니다. 의외로 재미있는 생활이라 일주일의 활력이 되어요. 시외버스를 타고 도착해야 하는 곳이라 버스표를 모으는 새로운 취미도 생겼고요. (표를 모으겠다고 모바일 탑승권 대신 꼬박꼬박 현장 발권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도착하면 먼저 오리엔테이션 시간을 가집니다. 오늘은 무슨 할 일이 있는지, 지난번 해오기로 한 숙제는 다 해왔는지 점검하는 것이죠. 그러고 나면 대표님이 만들어주시는 간식과 함께 탁약주개론 공부를 합니다. 늘 먹을 것을 챙겨주시는 대표님들 덕분에 출근이 기다려지고요, 매번 감사함을 느끼면서 일하게 됩니다.


공부가 끝나면 점심을 먹고 본격적으로 일을 하는데요, 병입이나 포장을 주로 합니다. 친환경 전통주를 지향하는 곳이라 사람의 손길이 많이 필요해요. 예를 들어 비닐 라벨과 접착제 대신 한지 라벨과 끈으로 라벨링을 하는데 사람이 하나하나 일일이 매듭을 묶어야 하지요. 정말 오래 걸리는 작업이지만 다 마치고 나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답니다.


가끔씩은 상품 촬영을 하기도 합니다. 빛이 잘 드는 스튜디오가 3층에 있거든요. 아래 사진은 제가 직접 찍었는데요, 너무 잘 나와서 볼 때마다 스스로 감탄하곤 합니다 :) 

 


인턴십을 하면서 주류 분석에 대해서도 배우고, 단양주도 담가 보고, 친환경 패키지에 대해 고민해보기도 하고 체험 프로그램 구성을 어떻게 짜야할지 궁리하기도 합니다. 발이 넓으신 대표님들 덕분에 다른 양조장 대표님들을 만나 뵙기도 하고요.


이 모든 게 행운과 행복으로 가득 차 있어서 그저 감사하기만 해요. 이곳에서 배운 모든 것들을 꼭꼭 기억해서 해일막걸리에도 적용시켜야겠죠. 벌써부터 시그니처 막걸리는 어떤 제조법을 택해야 할지, 어떤 병을 쓸 것인지, 라벨링은 어떻게 할 것인지 틈 날 때마다 고민하고 검색하곤 한답니다.


주류 면허가 나올 때까지 인턴 생활은 계속될 것 같고요, 그러면 춥고 눈 내리는 양조장이 아니라 새싹이 돋는 봄날의 양조장에서 일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언젠가는 제가 받은 따뜻함을 되돌려 줄 날도 오겠죠? 이런저런 미래를 그리며 저는 오늘도 양조장으로 출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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