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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일막걸리 Aug 24. 2022

하지만 창업할 돈이 없는걸요?

아무것도 없이, 지원 사업부터 도전한 이유

다시, 퇴사하기 전으로 되돌아 가볼게요.


막걸리를 만들겠다는 꿈을 이루려면 무엇보다 돈이 필요했습니다. 적합한 공간에 설비를 채워 양조장을 만들고 허가를 받아야 하니까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꿈 대신 현실로 시선을 돌렸고, 가장 먼저 통장을 봤습니다. 300만 원 남짓한 돈이 들어있었어요. 소중하긴 하지만 아주 작은 가게의 보증금도 될 수 없는 돈이었죠. 그래서 미래를 계산해 봤어요. 3개월만 회사를 더 다닌다면 300만 원의 조기취업수당을 받을 수 있고, 거기서 6개월만 더 버틴다면 퇴직금을 받을 수 있던 시점이었거든요. 그 사이 월급도 받을 테니 조금씩 더 모을 수도 있을 거고요. 하지만 여전히 부족할지도 모른다는 점과 그만큼 회사를 오래 다닐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어요.


다행인 건지, 이런 걱정은 금세 그만둘 수 있었습니다. 제 예상보다 빠르게 퇴사가 결정되었거든요. 통장에 든 300만 원에서 다시 새로운 셈을 시작해야 했죠.


도대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창업을 하는 건지 그제야 궁금해졌습니다. 잠들기 전 처음으로 '창업'을 검색해봤어요. 그동안 창업을 상상하긴 했지만, '나도 정말 창업할 수 있을까?'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행동한 것 역시 처음이었죠. 수많은 프랜차이즈 모집 광고와 성공한 창업가의 인터뷰가 실린 기사를 지나쳐, 여러 지원 제도를 소개하는 블로그 포스트를 읽었습니다. 거기에서 창업 지원금과 전문가 멘토링을 제공해주는 다양한 지원 사업이 아주 많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자본도 경험도 없는 저에게 딱 필요한 거였죠.


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소개된 대부분의 사업이 이미 모집을 마감한 상태였어요. 너무 늦은 건 아닐까, 곧바로 불안해졌습니다. 초조하게 클릭을 반복하고 계속해서 스크롤을 내리다가 다행히 아직 지원할 수 있는 사업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2022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 예비창업팀 공고였죠.


저번 글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지속가능한 막걸리를 만들겠다는 목표가 사회적기업과 잘 맞는 것처럼 보였고, 이미 제품과 서비스가 준비된 창업팀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발전시켜나갈 예비창업팀 모집이라는 점에서 부담스럽지 않았습니다. 또 사회적기업에서 첫 인턴십을 시작했던 터라 조금 익숙한 분야이기도 했어요. 망설임 없이 모집 요강과 지원서를 다운로드했습니다.


그런데 지원을 하려면 사업 계획서를 제출해야 하더군요. 지금까지 한 번도 사업 계획서를 적어본 적이 없어서 크게 당황스러웠죠. 하지만 한 번도 안 해봤다는 이유로 쉽게 포기할 수는 없었어요. 지금 엉망으로 완성하더라도 하나 더 배우는 과정이 된다고 생각하며 한 글자 한 글자 채워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사업 계획서 쓰는 법을 검색하고, 막걸리에 대해 조사하면서 새롭게 배우게 된 것들이 많았어요. 비즈니스 모델 캔버스가 어떤 요소로 이루어지는지 공부할 수 있었고요. 또 전국의 양조장에서 만드는 다채로운 막걸리가 얼마나 많은지와 막걸리 빚기 문화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는 것도 알 수 있었죠. 물론 수익률 계산처럼 막히는 부분도 있었지만, 매일 밤 틈틈이 빈 곳을 채워나갔습니다.


부족하지만 진심을 담아 적어 내려갔던 해일막걸리의 첫 번째 사업 계획서!


어느새 서류 접수 마감일이 다가왔고 혹시나 빠뜨린 서류는 없는지 두세 번 더 확인하며 제출을 마쳤습니다. 그래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어요. 떨어져도 실망하지 말자고 다짐했죠. 다른 지원 사업이 모집을 시작할 때까지 막걸리를 배우면서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서류 합격 발표는 예상보다 이틀 정도 밀렸습니다. 놓친 연락은 없는지 괜히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이메일을 계속 새로고침 하면서 발표를 기다렸어요. 그러다 심사 결과 안내 문자를 받게 되었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링크를 클릭했더니 합격자 명단에 적힌 '해일막걸리'를 발견할 수 있었어요. 겨우 첫걸음을 뗀 것뿐이지만 그때는 정말 '창업'이 손에 닿는 기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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