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이 진담으로 변하는 순간
"회사를 그만두고, 막걸리를 빚고 싶어요."
"사실 이름도 벌써 정했어요. 해일막걸리."
올해 초여름까지, 편한 동료들과 친한 친구들에게 농담처럼 던졌던 말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정말 회사를 그만두고 막걸리를 빚고 있거든요.
저는 그동안 달리는 기차처럼 살아왔습니다. 가끔 속도를 줄일지언정 앞만 보며 달렸고, 목적지는 명확했죠.
제 첫 번째 목적지는 '괜찮은 회사의 정규직 마케터'였습니다. 비록 세 번의 인턴십을 거쳐 멀리 돌아오긴 했지만, 이 어려운 시기에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어요.
입사하던 월요일에 느꼈던 설렘과 행복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그리고 그 주 금요일부터 차올랐던 불안과 불행도요. 그땐 목적지에 꼭 정착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알지 못했습니다. 마음을 다잡기 위해 지난날 써놨던 일기를 다시 읽어보기도 하고, 먼저 사회생활을 시작한 어른들과 친구들을 만나 응원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두 달을 보냈어요. 하루는 어떻게든 지나갔지만 여전히 확신은 생기지 않았죠. 줄어들지 않는 의심은 노력과 사랑을 키워낼 자리를 대신 차지했고요. 결국 수습 종료를 앞둔 채로, 회사에서 세 번을 울고 나서야 퇴사가 결정되었습니다.
퇴사일을 확정하고 난 후에는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직 준비와 휴식 사이에서 무엇을 할지 결정해야 했어요. 그때 제3의 선택지가 아주 흐릿하게, 정말 아주 희미하게 떠올랐습니다. 창업이었죠. 잠들기 전, 스마트폰을 쥐고 '창업'을 검색했습니다. 확신보다는 호기심이었고요. 그러다 한 지원 기관에서 예비 창업팀을 모집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저는 대학교에서 경영을 전공하긴 했지만, 오로지 취업만 준비해왔기 때문에 창업은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영역이었습니다. 하지만 진짜 내가 원하던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과 '재밌겠다!'는 두근거림이 찾아왔어요. 퇴근 후 틈틈이 지원 서류와 사업 계획서를 작성했고, 처음이니 탈락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으로 제출했습니다.
회사 생활을 마무리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지원 사업 합격이라는 좋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럴싸한 경력도 경험도 없이 오직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적어 낸 사업 계획서와 PT 발표가 운 좋게 통과된 것이죠.
이러한 사연으로 저는 막걸리 양조라는 미지의 세계에 들어오게 되었어요.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술, 가장 빨리 기분 좋게 취하는 술, 항상 친구들에게 먹으러 가자고 조르던 그 술을 이제는 직접 만들어야 합니다.
기차는 늘 똑바로 달리지만 기찻길은 구불구불한 법이죠. 너무도 빠르게, 그것도 너무나 크게 꺾어버린 방향에 가끔은 어지럽기도 해요. 하지만 온몸으로 느껴지는 이 굴곡이 나름 새롭고 즐겁답니다. 다행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