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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일막걸리 Aug 31. 2022

숨겨왔던 나의 수줍은, 사업 계획

목소리도 다리도 떨리던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 PT 심사

서류 합격을 알게 된 후, 너무 식상한 표현이지만 문장 그대로 정말 날아갈 듯이 기뻤어요! 하지만 원래 높이 올라갈수록 떨어질 때 더 아픈 법이잖아요. 저는 아프게 떨어지지 않기 위해, 그리고 이 기쁨을 계속 느끼기 위해 더욱 단단히 대비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의 지원 과정은 조금 특이했어요. 서류 합격 발표일과 최종 당락을 결정짓는 PT 심사 사이에는 약 2주의 시간이 있었는데요, 그 기간 동안 사회적기업에 관한 온라인 교육을 듣고 지원한 기관의 담당자님과 심층 인터뷰를 한 차례 나누어야 했습니다.


심층 인터뷰는 평가의 자리가 아니니 가벼운 마음으로 오라고 하셨지만,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어요. 제출한 지원 서류를 다시 한번 훑어보니 부족한 지점들이 너무 잘 보였거든요. 제가 보여줄 수 있는 건 자신감과 의지밖에 없었죠.


예상했던 대로, 심층 인터뷰에서 부정적인 의견과 날카로운 질문들을 많이 받았습니다. 공병 순환을 어떤 방식으로 할 건지, 혼자서 수작업으로 감당할 수 있는 규모인지, 일반 영리 기업과 다른 점은 무엇인지 등 제가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고 넘겼던 지점을 콕콕 짚어주셨어요. 물론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솔직한 이야기가 사업을 현실적으로 바라보고 기획을 수정할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쏟아지는 피드백을 한 글자도 놓치지 않으려 얼마나 집중했던지, 심층 인터뷰가 끝나고 나서는 두통이 왔을 정도였습니다.


집으로 돌아가서는 발표 자료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심층 인터뷰가 큰 도움이 되었죠. 막걸리에서 발견한 사회 문제가 얼마큼 심각한지 숫자를 통해 강조하고, 타깃 고객 페르소나와 결이 맞는 친구들에게 제 아이디어라는 걸 숨기고 가짜 메시지를 보내 생생한 반응을 수집했습니다. 사업 운영 계획도 3단계로 나눠 보다 현실적으로 다운사이징했고요. 막걸리 잔 두 개가 '짠~!' 부딪히는 모양을 본 따 임시 로고도 만들어 넣었어요. 조언을 받은 대로 모호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풀어 적어보니 조금 더 이해하기 쉬운 사업 계획서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발표 시간은 단 5분만 주어졌기 때문에, PPT에 넣은 모든 내용을 다 언급할 수는 없었어요. 가장 중요한 부분만 남기려 대본을 줄이고 또 줄였습니다. 그다음엔 타이머를 켜 두고 외우고, 또 외웠죠.


그래도 PT 심사 당일은 정말 떨렸어요. 목이 칼칼해질 때까지 연습을 했는데 말이에요. 큰일이 아니라고 억지로 생각해봐도 긴장은 여전했어요. 심사장에 빼곡히 앉아계신 심사위원 여섯 분을 마주하니 더 심해졌죠. 처음엔 다리가 떨리고, 그다음엔 말하는 목소리가 덜덜 떨렸습니다.


떨리는 몸과 마음을 간신히 붙잡고 발표를 마치고 나니 곧바로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다양한 관점의 질문들이 가득했고, 나름대로 대답은 했지만 제대로 말하지 못한 것 같아 더 초조해졌어요. 1시간 같았던 10분이 지난 후엔 '사업 PT가 이렇게 어렵구나!', '이렇게 떨어져도 뜻깊은 경험을 하긴 했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그렇게 PT 심사는 진한 아쉬움을 남긴 채 끝났고, 저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퇴사 후 오랜만에 느껴보는 느긋함을 즐길 차례였죠.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놀랍게도 최종 합격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저 운이 좋았다고 밖에는 할 수 없었죠. 만약 합격하지 못했다면 저는 창업을 시작하지도 못했을 거고, 해일막걸리 역시 탄생하지 못했을 거예요. 여러분에게 이 이야기를 전할 수도 없었을 거고요. 이 글을 빌어 해일막걸리의 처음을 만들어준 모든 분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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