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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일막걸리 Apr 26. 2023

막걸리를 모두 버렸다

실패하고 또 실패하는 것

해일은 지난주 한가득 담근 막걸리를 모두 버렸습니다. 처음 팽화미로 담근 막걸리였는데요, 물 양을 너무 적게 잡아 너무 되직한 막걸리가 나왔기 때문이죠. 맛이라도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저 시고 쓴 막걸리가 나왔습니다. 옹기에 담았는데 제대로 소독하지 않은 옹기여서 장내와 군내도 났고요. 해일이 막걸리를 담그면서 세 번째로 실패한 술이죠.


이대로 음식물 쓰레기봉투에 버리기에는 묽고, 그렇다고 바로 하수도로 버리기에는 건더기가 많아서 샤주머니를 이용해 술지게미와 막걸리를 일단 분리했어요. 꾸덕한 막걸리를 버리는데 어찌나 잘 떠내려가지 않던지 마치 제 미련만큼 질겼습니다.


옹기를 깨끗이 씻으면서 괜히 한 번에 많은 양을 담았나, 처음에 잘 저어주지 않아서 실패한 것인가, 그때 그 곰팡이를 걷어낼 걸 그랬나 별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이전에 실패한 막걸리 생각도 났어요. 처음은 한 여름에 만들었던 막걸리였는데 너무 발효가 빨리 되는 바람에 그저 시기만 한 술이 나왔습니다. 그때는 시럽을 타고 오래 묵혀서 탄산을 만든 다음 어찌어찌 다 먹었던 것 같아요. 두 번째 실패한 막걸리는 실험 삼아 가루로 된 쌀누룩을 써 본 것이었는데 달달할 거란 예측과 달리 쓴맛만 가득했습니다. 이 때는 이양주로 담아 양도 어마어마해서, 아직도 냉장고에 이날의 술이 남아 있어요. 지금은 자연침지된 약주로 변했답니다. 얼른 맛을 봐야 하는데 선뜻 손이 가질 않네요.


아, 실패다라는 생각이 들면 처음에는 속상하고 쌀이 아깝기만 했는데요. 이젠 야속한 마음도 잠시, '다음 팽화미 막걸리를 만들 땐 물 양을 두 배 이상 잡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떠오르더라고요. 실패에서 교훈을 얻은 셈이에요. 


앞으로 저는 성공보다 더 많은 실패를 할 겁니다. 실패의 빈도가 줄어들고 성공 횟수가 실패를 앞지르는 그날, 저는 당당히 막걸리를 잘 만들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죠? 여러분들께 선보일 '해일막걸리'의 원형도 완성될 거고요.



사실 이번 주에는 양조장 대표님의 도움을 받아 팽화미 막걸리의 두 번째 시도를 하고 왔어요. 이미 덧술까지 마쳤죠. 이번엔 잡내가 나지 않도록 옹기 소독도 제대로 했어요. 밑술을 죽 형태로 빚어놨는데 맛은 없지만 사과향이 많이 나더라고요. 덧술할 때 고두밥을 많이 넣었으니 잔당이 많이 남아 있길 바라는 중이에요. 금요일에 채주 하러 가는데 과연 어떻게 발효되었을지 궁금하네요. (후기는 댓글에 남길게요!)


더 많은 실패를 하기 위해서, 그리고 더 많은 성공을 하기 위해서, 날이 더 더워지기 전에 얼른 다음 막걸리를 담아야겠습니다. 같이 막걸리의 세계를 탐구하실 분들은 언제든지 환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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