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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일막걸리 May 31. 2023

그렇다면 상가를 찾아보자

첫 번째 무작정 탐험기

올해 상반기는 조금 헛헛한 마음으로 보내야 했습니다. 아무래도 최종 목적지가 제조업이다 보니 제조 공간을 임대하는 것이 필수였는데 그 공간을 얻지 못했거든요. 대출도 제대로 신청하지 못했고, 공간 지원 사업과 사업화 자금 지원 사업은 모두 탈락했죠.


일단 공간이 있어야 상품 개발도 더 쉽게 될 것 같고, 공유 주방이 아닌 곳에서 마음 편하게 정규 체험도 열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에요. 각자의 속도는 다르다지만, 유독 해일막걸리만 가속도가 붙지 않는 것만 같아 답답함이 커졌습니다.


그래서 충동적으로 상가를 검색해 보다가 보증금과 월세가 굉장히 저렴한 매물이 있어 옆 동네 부동산에 연락을 했습니다. 공인중개사님은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을 물으시더니 다른 매물을 추천해 주셨고, 바로 방문 약속을 잡았어요.


그렇게 휴일날 총 4개의 상가를 보고 왔습니다. 첫 번째 상가는 양조장을 만들 공간이 너무 작았고, 세 번째 상가는 평수 자체가 작은 데다 이미 세팅되어 있는 집기가 너무 많아서 복잡했어요. 네 번째 상가는 양조장 공사를 할 위치가 애매했고 바로 옆집이 여관인 점도 신경 쓰였습니다.



두 번째 상가는 양조장 공간을 뺄 4평 정도의 방이 있었고, 작은 창고로 쓸만한 베란다와 단독 화장실이 있었기 때문에 그중에서 가장 나은 매물이었습니다. 상가 전면이 벽으로 가려져 있다는 점이 좀 신경 쓰이긴 했죠.


바로 그다음 날, 보증금을 더 깎아 줄 수 있다는 소식과 함께 임대인이 막걸리 양조장이 들어와도 괜찮다고 허락을 했다는 전화를 받았어요. 저는 부모님과 함께 다시 그 매물을 보러 가기로 했습니다. 저희 아버지께서 인테리어 업에 오래 종사하셨거든요. (아마 인테리어 공사의 대부분은 아버지와 셀프 인테리어로 진행하게 될 것 같아요. 언젠가 그날이 빨리 오길!)


그렇게 다시 찾은 상가에서 전면이 가벽이라 뜯어낼 수 있다는 기쁜 점을 발견했고, 전기 증설이 안되어 있다는 나쁜 점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쓱 훑어보더니 바닥 공사부터 이것저것 하다면 인테리어 비용만 2천만 원은 될 것 같다는 명쾌한 견적을 내주셨습니다.


유일한 선택지는 '포기, 다음 기회에!'였습니다. 부모님과 헤어진 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무작정 상가를 임대하는 게 답이 절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류 제조 면허가 발급되기 전까지 월세와 관리비를 내며 버틸 수 있는 확실한 무언가가 있어야 했죠. 어렴풋이 계획을 세워두긴 했지만 현실성이 반영되었나를 다시 점검해야 했어요. 사실 당연한 얘기지만 그 당시에는 조급한 감정이 앞섰던 것 같아요.


그래도 한번 매물을 보고 오니까 어느 정도의 감이 생겼어요. 이 정도의 예산에서는 이 정도의 평수를 얻을 수 있겠구나, 이 정도의 평수에서는 시설 배치를 이렇게 해야 되겠구나 하는 것들이요. 그동안 머릿속으로만 상상하다 보니 현실을 잘 몰랐는데 어떤 지식을 속 시원히 얻은 것 같아요.


이번 부동산 탐방은 섣부른 판단이었지만 결코 헛걸음은 아니었어요. 구체적인 운영 계획을 세울 동기가 되었고 (덕분에 머리가 엄청 복잡해지긴 했지만요.), 현실에 눈을 맞추게 된 계기가 되었으니까요. 이렇게 한 번 더 교훈을 얻으며 성장해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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