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일막걸리 Aug 18. 2023

아빠와 셀프 인테리어합니다

뚝딱뚝딱 양조장 겸 매장 만들기

아빠는 열아홉 살 때부터 인테리어 일을 하셨습니다. 저는 아빠의 공구와 목재, 벽지 등 자재와 함께 자랐죠. 제가 여덟 살 때부터 쓰던 책상과 책꽂이도 모두 아빠가 만들어 주셨어요. 그래서 매장을 열기로 결심했을 때, 인테리어는 아주 당연하게 아빠에게 맡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매장 임대를 위해 매물을 보러 갔을 때도 모두 아빠와 함께 했고요, 계약을 하기로 난 후에도 아빠와 양조장을 견학 가고 가구를 만들 목재와 시트지도 사러 갔어요. 나중에 엄마에게 전해 듣기론, 아빠는 제가 가게 계약을 한 순간부터 당신만의 계획을 세우시곤 며칠을 고민하며 도면을 그렸다고 합니다. 7월의 어느 날에는 뜬금없이 테이블을 다 만들었다는 아빠의 문자 메시지와 인증 사진을 받기도 했죠.


좋아요


사실 8월이 시작되기 전까지 빼곡한 일정에 인테리어는 크게 신경을 쓰지 못했습니다. 저는 딱 두 가지만 정했죠. 첫 번째는 양조장과 체험장으로 쓸 홀의 면적을 나누는 것이었어요. 각각 매장의 3분의 1 크기, 3분의 2 크기로 나름 수월하게 합의를 봤습니다. 그런데 저는 수납공간으로 창고를 대체하고 양조장 크기를 더 늘리고 싶었어요. 하지만 결국 아빠의 의견에 따라 양조장 면적을 조금 줄이고 창고를 만들었습니다. 막상 만들고 보니 빗자루나 대걸레 등 기타 잡동사니를 깔끔하게 감출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어른의 말씀을 잘 들으라던 옛말이 괜히 존재하는 게 아니었죠.


두 번째는 인테리어의 컨셉을 잡는 일이었어요. 환경과 전통, 사람의 지속가능성을 생각한다는 해일막걸리의 미션이 인테리어에도 드러났으면 했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자연스러운 느낌을 살리면서 무작정 채우기보다는 불필요한 물건들을 덜어낼 수 있는 깔끔한 공간이 되면 좋을 것 같았어요. 한 번 인테리어를 바꿀 때마다 얼마나 많은 폐기물이 나오는지 알기에, 유행을 타지 않는 무난한 화이트&우드 인테리어가 딱이라고 생각했죠. 핀터레스트를 검색하면서 적당한 이미지를 골라 아빠에게 보여드렸고, 포인트 색깔이 될 나무 무늬 시트지도 직접 골랐어요. (이왕이면 원목을 사용하고 싶었지만 경제적인 부분도 있었고 실사용 시 불편할 거라는 우려에 마음을 돌려야 했습니다.) 특히 생각했던 이미지 소스 중에는 한옥의 문살도 있었어요. 그래서 많은 나무 색상 중 좀 더 단단한 느낌의 월넛 색을 매장의 포인트 색으로 결정했습니다.


잔금을 치른 후 8월이 되고, 인테리어 첫날은 이전 임차인의 흔적을 지우는 일이 주된 일과였습니다. 안 그래도 오래된 건물에, 오랫동안 하나의 사무실로 임차된 공간이라 상태가 썩 좋지는 않았어요. 퇴실하면서 두고 간 오래된 싱크대도 철거하고, 녹슨 전선도 제거했죠. 온 벽에 붙은 접착식 후크도 모두 뗐어요. 그리고 도면을 실제 바닥에 옮기는 작업을 했습니다. 먹을 튕기는 걸 처음 보았는데 너무 신기하고 멋지더라고요!



호기롭게 시작한 셀프 인테리어였지만 실상은 상상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우선 현장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어요. 기껏해야 바닥 청소나 타일 깔기, 시트지 제거, 샷시와 창문 닦기, 페인트 칠 정도죠. 남은 9할의 일은 모두 아빠의 몫이 되었습니다. 전기 공사부터 수도 공사, 가벽 설치와 가구 제작까지 전부 아빠 홀로 하셔야 했어요.


예상치 못한 비용 지출도 꽤 많았습니다. 원래는 최대한 노동력과 비용을 아끼기 위해 양조장 천장만 새로 공사를 하려고 했는데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상가의 모든 전선이 다 삭아서 전기 공사를 새로 싹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천장이 그냥 시멘트 천장이라 결국 전체 천장을 새로 만드는 공사를 해야 했답니다. 그나마 이때 대출이 나와서 부담이 조금 덜어졌어요.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매일 같이 울리던 폭염 경보의 더위도 이른 아침 기상 시간도 아닌 아빠와의 갈등이었어요. 사소한 의견 차이로 시작되었지만 어느새 크게 싸우게 되었고, 그 후 냉랭해진 분위기가 꽤 오래 지속되었거든요. 하하호호 농담하며 즐겁게 일할 줄 알았는데 그러지 못해서 많이 속상했죠. 그래도 지금은 은근슬쩍 풀려서 다행이에요.


한창 공사 중이던 어떤 날


매장 크기가 작아 공사도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하나하나 챙겨야 할 게 매일 같이 생기다 보니 인테리어 기간 역시 점점 길어지고 있습니다. 보름의 렌트 프리를 받았는데, 진작 지나가 버렸네요. 아무래도 둘이서 하는 작업이다 보니 하루에 할 수 있는 일의 한계가 있어 이제 겨우 절반 완성한 것 같아요. 이번 주에는 카운터 겸 바를 조립하고 왔고요, 양조장에 방수 페인트 덧칠까지 완료했습니다. 참, 미루고 미루던 가게 간판도 달았어요!


아마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실 것 같은 양조장은 조금 특이하게 완성될 것 같아요. 우선 저는 혼자 근무하는 소규모 양조장을 계획 중이라 공간 자체도 많이 작고요. 처음부터 무리하게 죽마고우를 들이는 대신 작은 스테인리스 통을 최대한 활용할 거라 바닥도 건식으로 작업했습니다. 다른 기물들은 조건부 면허가 발급되면 차차 채울 예정이라서요, 양조장이 완성되면 그때도 잊지 않고 경험을 공유하러 오겠습니다. 저처럼 작은 양조장을 준비하시는 분들께 도움이 되길 바라요.


인테리어를 하면서 감사하게도 많은 배려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나무와 철판을 자르는 일이 많다 보니 기계 소리가 꽤 시끄러운데 이해해 주시는 이웃분들부터 쉬는 날마다 나와서 도와주시는 외삼촌, 지나가다 무슨 가게가 들어오냐며 관심 주시는 주민분들까지. 저도 가게를 운영하면서 이러한 선심을 주변에 베풀어야겠다고 매일 생각합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개업일은 점점 미뤄지지만, 여러분들과 함께할 재미있는 일들을 마구마구 기획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부터 채무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