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dybrown Mar 19. 2019

창문.


이전의 집에는 창문이 많지 않았다.


심지어 일층이었는데, 내 방 창문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에 위치해 

누가 들여다볼까 커튼을 칠 수도 없어 정말이지 암흑 속에서 대부분의 날을 보냈다. 


심지어 부엌과 화장실에는 창문이 없었다 (..)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창문의 존재에 대해 난생처음 감사와 갈망을 느끼게 되었던 나는,

이사를 가게 된다면 꼭 창문이 많은 집이었으면 좋겠다- 라는 바람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지난여름, 사방이 창문인 집으로 이사 오게 되었다. 

(덕분에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더워지긴 했다만)


어느 가을날, 침대에서 바라본 창 밖 풍경



심지어 4층 (한국식 5층)에 위치하고 있어, 

창 밖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게 되었고

계절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나무의 자태가 마치 한 폭의 풍경화처럼 창 밖을 수놓는 

정말이지 멋진 방을 갖게 되었다.


내 침실에는 큰 침대와 TV 뿐인데, 

퇴근 후나 주말 아침에 침대에 누워 창 밖을 바라보는 게 또 하나의 취미가 되었다. 

건물 하나 없는, 오로지 나무와 하늘만 가득한 창 밖을 바라볼 수 있는 그 순간들이 

얼마나 큰 평안을 선사하는지 모른다. 


원래도 멍 때리는 것을 좋아했지만, 

이 취미로 인해 멍 때리기 레벨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었달까... 

고층 건물 없는 독일이 새삼 감사한 순간.



어느 겨울날, 해 질 녘을 바라보며



그러다 한국 집에서의 창 밖 풍경을 떠올리게 되었는데, 

13층으로 지금보다 고층이었지만 창 밖 풍경은 온통 아파트 - 정확히 말하자면 건너편 동 - 들과 그 안의 사람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아파트 단지 특성상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조금은 숨이 막히고 답답했던 기억.




독일에 살다 보면, '너무 휑하다', '너무 썰렁하다'라는 류의 느낌을 자주 갖게 되곤 하는데

그 휑함이 주는 여유로움으로 시선을 돌리면

완전히 다른 느낌을 받게 된다.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독일인들의 특성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편안해야 하는 공간인 집, 

그리고 내 방.

그곳에서 바라보는 창밖 풍경이 내게 얼마나 큰 영향을 줄 수 있는지 깨닫는 요즘


자꾸 생각한다.


창문은 그저 창문이 아님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