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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e in 노르웨이 Aug 23. 2020

나는 코로나를 얻고, 회사는 부도가 났다.

코로나 후유증, 그리고 갑자기 사라진 회사

요새는 노르웨이 디자인 여행 연재가 좀 뜸했다. 사실은 여러 일이 있었다. 5월경 중순경 목이 살짝 따가웠고, 혹시 몰라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황당하게도 결과는 양성이었고 나는 거의 무증상에 가까운 양성이었다. 그 전후로 이상한 일이 이어서 일어났다. 코로나 검사 전주부터 시작된 단기휴직 그리고 코로나 자가격리..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회사에서 점심 식사하는 곳. 햇살이 유난히 잘 들어와 너무나도 좋았던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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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말: 코로나로 진행 중이던 모든 전시 프로젝트가 취소되었다. 한 개당 10억-20억 하는 프로젝트가 줄줄이 취소되면서 회사에서 직원들의 단기 휴직이 시작되었다.


(다행히 4월 첫 주부터 모두 자택 근무를 했기에 회사에는 나로 인한 감염의 가능성이 없었다.)


5월 중순: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고 약 5주간 집에서만 칩거했다. 증상이 별로 없고, 열도 없었기에 집에서 자가 격리하고 2-3일에 한 번씩 오슬로 코로나 관리팀 간호사들과 전화로 컨디션 리포트를 했다.


6월 둘째 주: 코로나 검사 2번 모두 음성이 나왔다. 하지만 면역 항체 검사도 함께 음성이었다.


7월 말: 회사의 사장님께서 전화가 왔다. 회사의 부도로 8월 초까지 회사에 와서 짐을 가져가 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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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주 동안 집에서 칩거하는 동안 나는 그래도 이 병에 지지 않고자 브런치 한식 일러스트 공모전에 공모하여 일러스트 부분에서 장려상도 탔고, 그동안 하고 싶었던 전시 기획도 준비하여, 한국에서 '기획전'이라는 전시에 참여하게 되었다. (물론 작업은 이메일로 파일만 보내는 형식이었다.) 또한 디자이너 친구의 요청으로 일러스트 작업도 해서 주었다. 코로나로 인해 나는 나의 생산성을 짓밟혀 버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았다.


6인용 거실 식탁을 작업대로 만들고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싸울 준비 완료를 했다. 뭐라도 해야 큰 불안감과 걱정을 떨쳐 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5주 정도 시간이 흐른 후 6월 중순 새로 한 코로나 검사에서 두 번 다 음성이 나왔다. 뭐랄까 애벌레에서 변태를 하여 나비가 되는 과정처럼 이제 홀가분하게 이제 아름다운 정신과 몸으로 돌아갈 줄만 알았던 내게 Post Viral Syndrom이라는 게 찾아왔다. 다시 말해 바이러스로 인한 후유증 같은 것이다. 여러 영문 기사를 찾아보니, 양성일 때 증상이 없었던 사람일수록 코로나 후유증이 더 오래간다고 하던 기사도 읽게 되었다.


나의 후유증 증상들은 새로운 알레르기, 건조한 피 부질화 느 소화불량 불면증 등이 있었다....


이 긴 여정을 코로나를 극복 후 이제 몸을 좀 추스르고 기운을 차려보려 했더니 회사의 부도 연락이 왔다. 사실 좀 황당하기도 했지만 어느 정도 예측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코로나 그리고 회사의 부도로 인해 나에게 분명해진 게 하나가 있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걸 하루하루 하며 살아가고 싶다는 욕망은 예전보다 훨씬 더 강렬해졌다. 돈보다 본능을 쫒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진 것이다. 노르웨이로 온후 노르웨이에 있는 디자인 회사를 경험해보고 싶었었고, 경험하고 나니 어느 나라나 남의 밑에서 일한다는 건다 똑같다는 사실이었다. 이곳에서의 일은 한국 대기업 디자인 일보다는 150% 이상 재밌던 건 사실이지만, 결국 어디나 회사의 디자인 업무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어렸을 때부터 창문이 큰 1층에 놓인 개인 작업실에 자전거 타고 출근을 하는 것이 꿈이었다. 지금 이 꿈에 다가가려고 하는데, 아직 그 문을 열면 어떤 작업이 있는지 사실 희미해서 잘 안 보이긴 한다. 점차 찾아나가려고 한다. 나는 코로나로 후유증도 얻고 결코 경험하지 않아도 될걸 경험하고 있지만, 이것을 기회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 눈에 안경알을 하나 더 장착한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내가 나를 제일 잘 또렷하게 볼 수 있는 안경알 말이다.


지금 돌이켜 보면 회사의 부도, 코로나 양성 모두 내가 변태 하기 위한 단계였던 것 같기도 하다. 사실 회사에서의 연봉과 복지도 괜찮았었고, 새로 여는 뭉크미술관에서 여는 오프닝 전시 디자인에도 참여를 했다(10월 오픈 예정). 이 일이 아니었으면, 또 다른 굵직한 프로젝트의 욕심 때문에 쉽게 떠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나만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나를 제일 많이 들어주고, 내 머리에 있는 나만의 것들을 만들어 보려고 한다.


사실 난 코로나보다 나 자신이 가장 두렵다. 한번 준비 땅 하고 달리기 시작하면 멈추지 않는 성격이기에... 너무 빨리 달리지 않고, 실수하지 않고, 천천히 곱씹으면서 코어 중심을 부여잡고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해야 할 것이다.



노르웨이 디자인에 대해 얘기하고자 인스타그램 열었습니다. 블로그 글보다 저 자주 올릴 테니 팔로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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